삼성 반도체공장 직업병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렸던 고 황유미씨 9주기 추모제가 지난 4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렸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3대 종교계는 이날 오후 5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종교 기도회'가 열었다.

아래는 기도회에 참여한 정수용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신부의 강론 전문이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자매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번의 계절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억울한 죽음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변하고 해가 넘어가자 사람들은 점점 이 문제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도 만들어졌고, 삼성 부회장이란 사람이 기자회견도 했고, 중재기구도 만들어졌으니 이젠 다 해결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거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자기주장을 꺾지 않는 사람들,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 욕심을 부리는 사람쯤으로 매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결코 고집쟁이도 아니고 욕심쟁이도 아닙니다. 그저 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 정수용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신부가 지난 4일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종교 기도회'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제공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려 아프게 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진심어린 사과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다쳤는지, 어디가 제일 불편한지 객관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피해 정도가 얼마인지를 때린 사람이 스스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건네는 보상도 적절하다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삼성전자에 진심어린 사과와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삼성이 마음대로 정하고 마음대로 집행하는 보상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로 세상을 떠나신 황유미 자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이 추모 말씀의 전례를 거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기도하십니다.

저 높고 화려한 삼성전자 빌딩과 이 작고 초라한 반올림 농성장의 비닐 텐트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저 빌딩 안에 있는 석사들, 박사 학위를 받은 수십 수 백 명과 이곳에 있는 우리들의 학력도 비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저들이 가진 돈, 금은보화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깔판 몇 개, 담요 몇 장 역시 같은 위치에 놓고 볼 수 없다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백, 수천 년 동안 동쪽에 있는 나라도 저 반대쪽 서쪽에 있는 나라도 어쩜 그렇게 신기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세속의 기준으로 지혜롭다는 자들, 슬기롭다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진리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철부지 같다' '어리석어 보인다' 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듣는 이들이 항상 진리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정의, 공정, 평화는 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저 높은 빌딩과 이곳 비닐 천막은 비교할 수 없을지라도 진실이 어디에 머무르는지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힘이고 아무리 많은 재물이라도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없고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우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다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다시 한 번 故 황유미 자매를 비롯한 삼성 직업병 피해로 세상을 떠난 모든 분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간직한 여기 모인 우리의 노력과 기도로 삼성전자가 하루빨리 대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길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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