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 농성장이 꾸려진 지 오는 4일로 150일째, 농성장은 지난 겨울의 한파를 견디고 이제 봄을 맞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삼성전자가 반도체·LCD 공장 직업병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을 약속하라며 지난해 10월 농성장을 차렸다. 

반올림은 올해 3월을 ‘삼성전자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달’로 정하고 추모행사와 토론회 등을 열어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당장 오는 6일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를 가장 처음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9주기 기일이다. 고 황유미씨 9주기 추모회를 앞두고 있는 반올림은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150일 동안 풍찬노숙을 하며 삼성전자와 싸워온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개해주세요.

- 황상기 : 전 유미(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노동자) 아버지 황상기입니다.

- 김시녀 : 전 '삼성 LCD'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으로 장애 1급이 된 혜경이 엄마 김시녀예요.

- 정성호(가명) : 백혈병 피해자 동생 정성호(가명)입니다.

- 김미선 :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LCD에서 일했고요. 다발성 경화증 피해자 김미선입니다.

- 손경주 님 가족 손성배, 손영배 : 삼성전자 협력업체 소장으로 일하다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손경주 님 가족입니다.

▲ 지난 3월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반올림' 사무실에 삼성전자 반도체·LCD공장 직업병 피해자들이 모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반올림이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한 지도 벌써 150일이 다 돼가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 김미선 :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눈으로 와서 눈이 잘 보여서 농성장에 가기가 쉽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 아산 병원에 가서 면역 주사 맞고 있어요.

- 손성배 : 취업 준비한다고 이주일에 세 번밖에 반올림 농성장을 못 가서 송구스러웠어요. 얼마 전 강남역 근처로 취업을 해서 앞으로는 자주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시녀 : 딸 혜경이와 농성장을 오가는 게 요즘 일상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는데, 벌써 5개월이 되었네요. 그래도 많은 이들이 그래도 찾아줘서 힘이 돼요.

- 황상기 : 정기적으로 속초에서 강남역 8번 출구 반올림 농성장에 와서 길가는 분들에게 삼성직업병 문제 아직 해결이 안 됐다고 알리고 있어요. 농성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농성장에 안 오는 날엔 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하다 짬짬이 페이스북 보며 소식을 접하고 있어요.

- 정성호 : 주말에 농성장에 나오고 있어요. 혜경 모녀랑 주로 같이 있는데, 친해져서 좋아요. 농성장 시작 전에는 반올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못 해서 미안했는데, 요즘 함께하면서 좀 해소되는 기분이에요. 힘들지만, 농성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서 뿌듯해요.

3월6일 황유미 9주기가 되었네요. 삼성직업병 문제 9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황상기 : 피해자가 우리 유미 한 사람에서 222명으로 늘었고요. 그중 76명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어요. 처음에는 백혈병도 직업병 인정이 안 되다가, 백혈병이 인정받고 세상에 알려지자 여러 가지 병에 들린 이들도 산재 신청을 해서 근로복지공단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법원이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병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동안 삼성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삼성에서는 자료를 안 주면서 산재 인정을 방해하고. 사람들이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영화를 보고, 책도 보고 기사에서도 이 문제가 자꾸 나니까 삼성도 반올림과 대화하겠다고 나서놓고도 아직 사과, 보상에 대해서 삼성은 반올림과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있어요. 문제 해결의 시간이 자꾸 길어지면 삼성만 손해가 더 커질 건데 말이지요.

- 김시녀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데, 삼성은 계속 거짓말만 하고, 피해자를 돈으로 우롱하고 있네요. 우리 혜경이가 삼성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린 거라는 걸 알고 이렇게 반올림과 열심히 알리고 있는데, 삼성은 코앞에서 농성하는 저희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언론에다가 그간 소홀했다 인정해놓고, 제대로 사과도 않아요.

그래도 피해자가 무섭긴 한가봐요. 농성장에 혜경이가 나타나면 경비들이 어디다가 바삐 보고하고 그래요. 농성장에 누가 오가나 얼마나 오나 체크하구요. 농성장에 연대를 많이 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에 긴장하는 것 같고요.

- 정성호 : 저도 언론으로 반올림을 알고 이제는 농성장까지 지키기까지 했는데, 삼성이 너무나 강하고 일방적이라, 피해자 한 명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요. 언론 플레이도 많이 하고요. 아직도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나 봐요.

1월12일 재발방지대책 약속 이후에도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황상기 : 삼성이 하는 보상 내용을 보면 말이 안 돼요. 말은 치료비에 준다 하고 사인하라 해놓고, 보면 치료비에 턱도 없어요. 합의서도 주지 않고요.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이 되지 않고 있어요. 여기 계신 분들이 사과를 받은 적도 없고, 보상에 말도 없이 배제되고 말이지요.

- 김시녀 : 조정에서 1월12일 조정을 마무리하면서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합의했지만, 사과, 보상에 대해 주체들이 합의를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보도를 했어요. 반올림 농성 100일에 피해자 몇을 불러 사과했다고 직업병 문제를 다 했다고 일종의 ‘쇼’를 했는데, 내용 없는 사과예요. 저흰 여전히 길에서 삼성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절차도 투명하지 않고, 기준도 공정하지 않고, 또 집행도 모두 가해자 삼성인 보상을 저흰 인정할 수 없어요.

- 손성배 : 우리 아버지는 협력업체 소속이신데, 반올림 덕분에 협력업체도 조정위원회 권고안 보상 기준에 들어가요. 삼성이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보상위원회를 일방적으로 만들어놓고, 우리 아버지한테도 보상을 해준다는데, 우리 가족은 그런 옳지 못한 보상은 받을 수가 없다고 결정했어요. 재발방지대책 약속은 했다는데, 아직 사과도 보상도 반올림과 제대로 얘기가 안 되었어요. 그러니 농성 계속해야죠.

삼성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요?

-손경주 아들 손영배 님 :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SK 하이닉스보다 삼성이 글로벌한 기업이고 평판이 높은데, 자신들이 홍보하는 ‘또하나의 가족’이라는 것만큼 노동자에 대한 직업병을 인정한다면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이득이 될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그렇지만,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처리하는 게 아쉬워요.

- 정성호 : 정직했으면 좋겠어요. 정직을 요구하는 건 삼성한테 너무 큰 걸 요구하는 것 같네요. 최소한 중상모략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바꿀게요. 얼마 전 외신 토론회에서 삼성 교섭단이 백수하 씨가 나와서 유미 씨 일기를 보여주며 안전 교육을 잘했다며 했다는데, 전 경악했어요. 어떻게 억울하게 죽어간 딸의 아버지 앞에서 변론자료로 쓰인 일기를 들이밀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런 짓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 김미선 : 누구는 치료비만 주고, 누구는 생계비를 주고, 그것도 어떤 기준으로 주는지도 몰라요. 저 같은 피해자 배제하지 않고, 충분하게 보상해줬으면 좋겠어요. 반올림하고 대화를 다시 하고요.

반올림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 황상기 : 3월6일이 우리 유미 9주기예요. 매년 3월 첫째 주엔 유미 기일과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추모제를 하는데, 이번에는 3월 한 달을 추모의 달을 정하고, 농성장이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근처에 추모의 거리를 만들고, 추모 문화제, 기자회견도 하고, 영화제도 할 겁니다. 무엇보다 저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연좌농성을 하려고요.

- 김시녀 : 뭐라도 해야죠. 3월 6일도 그렇고 한 달 동안 피해자들이 많이 와서 삼성 너네 똑바로 해라. 반올림과 대화 제대로 해라. 해야겠어요.

- 정성호 : 3월 행사가 많다고 하는데, 일을 많이 돕고 싶어요. 영화 관련 일을 하는데 기록하는 역할을 맡으려 합니다.

- 김미선 : 눈이 잘 안 보여 자준 못 와도 3월에 몇 번은 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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