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하청업체의 불법파견 노동자 5명이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실명 위기 및 시력 손상에 처함에 따라 총체적인 대안 마련이 촉구되는 가운데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산업 원청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가 거세게 제기됐다.

노동건강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노동계 및 보건의료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박근혜 정부와 LG·삼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메탄올 급성중독 사고는 지난 2월4일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당시 확인된 피해노동자는 4명이었으나 이후 노동자 1명이 중독되는 사고가 추가로 발생해 현재까지 확인된 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는 5명이다. 메탄올 급성중독 사고는 지난 2월4일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당시 확인된 피해노동자 4명은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에서 일했으며 모두 불법파견 근로자로 알려졌다. 지난 2월 17일에 발생한 추가 피해자는 2월부터 LG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의 불법파견노동자로 알려졌다.

▲ 노동건강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박근혜 정부와 LG·삼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사회를 맡은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피해자들 모두 20대 청년 노동자, 제조업 불법파견 노동자,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 하청업체의 노동자 등 3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사실을 삭제하고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지우려 애쓰고 있는 3가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이라 밝혔다.

노동계는 불법파견 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권 문제를 제기하며 파견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는 고용노동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최재준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55세 이상 고령자에 파견 업종 제한이 폐지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산재 위험에 노출될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며 “정부는 파견법 개정이 아니라, 불법파견 단속을 확대하고 대기업 원청에 이 책임 엄격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발언에 나서 “헬조선 청년들이 절망사회라 절규하고 있지만, 고작 정부는 이 파견을 더욱 확대해서 청년들에게 절망을 꿈꿔라 하고 있다”면서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에 일선 병원에 긴급지침·협조공문을 내리고 불법파견 점검 등 산적해 있는 문제에 대해 사전적·선제적 대응을 제안한 바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여러 가지 핑계를 들며 받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나아지는 게 없거나 어떤 조치들 하지 않으면 후속적인 투쟁으로 노동부를 압박해 갈 것”이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휴대전화 제조 원청인 삼성전자에 메탄올 급성중독 사고에 대한 책임을 공개적으로 물었다. 조대환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활동가는 공개질의서 대표 낭독에 나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부품 공급망 내 노동자 메탄올 노출 사실 인지 여부 △공급망 내 노동자들의 안전 보호 및 노동재해 예방에 대한 관리·감독 여부 △사건 발생 후 대응 현황 및 예방조치 계획 등을 공개 질의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의료계·법조계·노동계 등에서 모인 17개 단체는 권오현, 윤부근, 신종균 등 삼성전자 대표이사 3인에게 ‘휴대전화 제조 원청(삼성)의 하청업체 위험관리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작성해 발송한 바 있다.

조대환 활동가는 “삼성전자가 가입한 전자산업시민연대(EICC) 규범은 삼성전자 제품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부품 및 서비스를 설계, 판매, 제조하는 모든 형태에 조직에 적용된다고 명시한다”며 “우리가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 스스로 가입한 국제규범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전자산업시민연대는 “근로자 안전에 있어 잠재적 위험 요인에 노출되는 상황을 예측하고 적절한 설계, 예방 차원의 유지보수, 안전한 작업절차, 지속적인 안전교육을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삼성은 2007년 전자산업시민연대에 가입한 바 있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고용노동부에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에 대해 시급히 전모를 파악하고 결과를 대중에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노동건강연대 제공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10여 년간 투쟁해 온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도 발언에 나서 원청기업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유 분회장은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말대꾸했다고 해고되고 잔업 안했다고 해고되는 어려운 현실에 있다. 메탄올에 단 한 번 항의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입에 담을 수 있는 상황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현대차, 현대중공업에서 노동 산재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단 한 명의 기업주도 처벌받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기업주 처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한 가지”라고 주장했다.

메틸알코올 사업장 3100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추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의 총체적·포괄적 대응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 중독사건 전모 파악 및 이를 대중에 공개 △휴대전화 부품 공급업체 전체에 대한 화학물질 관리감독 실태 파악 △제조업 내 불법파견 근절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다.

특히 화학물질 관리감독 실태 파악에 있어 이들은 “이번 사고는 핸드폰 부품 생산업체 전체의 화학물질 취급 관리부실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이번 사건을 메탄올이라는 특정 화학물질에 대한 취급 관리부실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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