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되겠어?”라는 말과 함께 시작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억2천만 원이란 놀라운 금액이 모였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추진위원회가 미몽이라 걱정했던 ‘집 짓기’ 프로젝트는 금세 실현 가능한 목표로 자리 잡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다. 추진위원회는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여름방학 외갓집 같은 공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1차 집중 모금 기간으로 중간 목표액 4억의 절반 이상을 달성한 추진위원회는 후속 모금과 함께 건립 부지도 탐색하고 있다. 추진위는 상황이 어떻게 되든 올해 안에 반드시 건립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미디어오늘은 29일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내에서 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황철우(46) 비정규노동자의 집 추진위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겐 빨래 한 번 편하게 할 곳도 없다”

추진위원회의 목표 금액은 ‘10억’이다. 서울 땅 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집을 짓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금액은 필요하다는 뜻에서 ‘용감하게’ 정한 목표다. 황 집행위원장은 “처음엔 전세 정도를 생각하고 4억을 책정했으나 비정규노동자의 집 공동대표 중 한 분인 조현철 신부님이 ‘그 정도로 되겠냐’ ‘세입자 문제도 복잡하다’면서 첫 회의 때부터 10억을 걸었다”고 말했다.

▲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4년 겨울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모습. ⓒ노순택

비정규노동자의 집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0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기륭전자 투쟁의 성과를 어떻게 앞으로의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연결시킬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쉴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최초 제안자는 황 집행위원장의 아내였다. 아내는 기륭전자 투쟁에 연대했던 남편을 통해 당시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거리에서 노숙하며 제대로 씻지도, 끼니를 챙겨 먹지도 못하는 것을 보며 ‘편하게 쉴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수차례 얘기했다.

아내의 말을 기억한 황 집행위원장은 2014년 말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이 아이디어를 전달했지만, 당시엔 대다수가 “그게 되겠냐”며 주저했다. 이후 황 집행위원장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니 여론은 “그럼 한 번 해볼까”로 바뀌었고, 이를 알게 된 그의 아내가 그동안 모아둔 적금통장을 건네며 “해보라”고 한 것이다. 이후 기륭전자 공대위는 본격적으로 논의를 추진하게 됐다. 황 집행위원장은 “기륭투쟁을 함께 하며 집에도 잘 못 들어가고 단식도 해서 아내로선 많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라면서 “좋은 아이디어도 주고 힘을 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기륭전자와 마찬가지로 복직을 내걸며 수년 동안 거리에서 투쟁한 KTX 승무원, 이랜드-홈에버 마트 노동자, 현대기아차 및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 등을 찾아갔고 이들은 비정규노동자의 집의 초기 제안자가 됐다. 황 집행위원장은 “모두에게 ‘이런 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겐 빨래 한 번 편하게 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 회의 한 번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추진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건립을 선언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공간적 거점이자, 상경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쉼터요, 연대와 소통의 공간이며, 틈새를 메우는 역할의 기지요, 필요한 물품의 신속한 조달창고로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

“다음 스토리펀딩 관계자가 놀라더라. 이만큼 빨리 모인 건 처음이라고”

황 집행위원장은 “다음 스토리펀딩 관계자가 ‘이렇게 빨리, 많이 모인 경우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다음카카오에서 제공하는 모금서비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지난해 11월25일부터 지난 26일까지 94일 동안 4700여만 원을 모금했다. 목표액 5천만 원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굉장한 속도였다. 그는 “스토리펀딩은 절차가 복잡해 사람들이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같은 기간에 통장 모금액도 굉장히 증가했다. 함께 고려하면 5천만 원 이상을 달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 황철우 '비정규노동자의 집'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사진=황철우 집행위원장 제공

그는 후원자들의 마음에 감사함을 표했다. 한 어머니는 ‘내 아들, 딸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컸으면 좋겠다’ 말하며 자식의 돌잔치 비용을 줄여서 후원을 했고, 비슷한 이유로 딸 결혼식의 축의금에서 후원비를 마련한 사람, 외국에서 후원한 사람 등도 있었다.

집행위원들의 노고도 빠질 수 없다. 추진위의 집행위원 18명의 ‘전화기 털기’로 일주일 새에 1천만 원 이상을 모금한 적도 있었다. 추진위가 “우리 한 번 5천만 원 모아봅시다”라고 결심한 이후 집행위원들은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비정규노동자의 집’ 기사를 보내며 모금을 요청했다. 기사는 그동안 비정규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어떻게 투쟁해왔는지, 그래서 이들에게 어떤 집이 필요한 지를 적은 글이었다. 황 집행위원장은 “집행위원들이 정말 열과 성을 다한다”면서 “통장에 모금이 쌓일 때마다 다들 너무 기뻐한다. ‘운동을 하면서 이런 기쁨 느끼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들 말한다”고 밝혔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지으려면 정규직 노동자가 나서줘야 한다

모금액이 2억 원을 넘는 데엔 한 정규직 노조의 연대의 힘이 컸다. 황 집행위원장이 적을 둔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다. 지하철노조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해서 받은 금액의 일부를 비정규노동자의 집의 주춧돌 기금으로 기부했다. 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은 ‘승소하게 되면 기금의 1~2%를 비정규직 기금으로 쓰겠다’는 서약서를 썼고 승소 후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모인 금액이 3750만 원이다.

황 집행위원장은 “정규직 노조가 조직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을 만들어 후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황 집행위원장의 노력 덕분에 ‘비정규직 기금’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볼 만큼 그가 애쓴 부분이 많다. 그는 집행부가 이를 안건으로 받아들이게끔 지속적으로 건의했고 비정규노동자의 집 공동대표인 조현철 신부와 발표회도 준비해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노조 또한 취지와 의의에 공감을 표했고 조합원들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 농성을 했던 김소연 당시 기륭전자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 ⓒ노순택

황 집행위원장은 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동자가 나서야 ‘집 건립’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고려하면 ‘손 벌릴 데’가 정규직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50만 원 이상의 기부금인 ‘주춧돌’ 후원의 경우, 큰돈이지만 1회 후원인 것을 생각하면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아주 큰 부담도 아니라고 지적하며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를 지적하면서 IMF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지적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1999년 IMF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대규모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지하철노조의 총파업을 주도해 해고됐고 13여 년이 지난 2013년에 복직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IMF 이전에는 다른 사업장과의 ‘연대 투쟁’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기 고용과 자기 임금에 매몰돼 모두가 움츠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책임질 가족이 있고 정규직이 자신의 문제에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탓할 순 없다”면서도 “기금을 마련하거나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등 조금만 더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노동자의 집’ 후원은 연대를 복원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추진위원회는 현재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에 기금 후원을 요청하는 중이다. 황 집행위원장은 “GM대우노조 집행부가 적극적으로 기금을 조성해주려 하고 있어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과 김정대 예수회 신부가 오늘 현대차 노조 집행부를 만나 취지를 전달할 예정이고 기아자동차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얼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의원 대회를 찾아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소개했고 민주노총 공공연맹에서도 대기업 공장 노조를 중심으로 설득 노력을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흩어진 비정규직 운동 모아내는 공간, 비정규직 노동자 치유 공간”

추진위는 “그때그때 현실적인 판단을 하겠지만, 올해 안엔 매듭을 지을 것”이라며 “모금액이 4억만 넘어서면 대출을 받든 지 해서라도 집을 조성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마당이 있고 허름한 2층 단독주택’이 추진위가 생각하는 집의 조건이고, 상경투쟁을 많이 하는 비정규직 투쟁의 조건을 고려해 서울역 부근의 집을 찾고 있다. 그러나 시세가 평균 6억~7억 원을 상회해 여전히 경제적으로 고민이 많은 실정이다.

주변의 지지자들은 추진위의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윤엽 판화가는 판화 100점을 기부했고 이윤하 건축가는 “땅만 마련되면 집 설계는 내가 맡겠다”고 나섰다. 사회단체 활동가인 이은탁 집행위원은 인맥을 활용해 집을 건설할 때 인력을 확보해주겠다 약속했고 ‘민중과 함께하는 한의계진료모임 길벗’은 집의 주치의를 맡을 예정이다. 포도농사를 하는 황 집행위원장의 지인은 모금에 쓰라며 포도즙 30상자를 기부하기도 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유사한 기관인 ‘인권재단 사람’과 ‘마포 민중의 집’ 등을 모니터링 했는데 운영 수칙 만드는 것부터 운영 주체들 간의 갈등, 운영비, 자재를 사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더라”면서 “앞으로 더 노력해 갈 과제들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단체가 한 곳으로 모일 수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편히 찾는 근거지가 됨으로써 흩어지기만 하는 비정규직 운동의 네트워크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이어 그는 “문화강좌, 교육, 치유에 대한 강좌 등을 엶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치유 공간, 쉼의 공간으로도 역할을 할 것”이라 지적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후원하실 분은 아래 계좌에 후원해주시면 됩니다.

국민은행 024801-04-403987  황철우(비정규노동자의 집)

문의 : 010-6317-3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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