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박 대통령의 어록집을 발간했다. 비매품으로 소량 제작한 이 책은 벌써부터 품귀 현상을 빚을 조짐이다.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라는 제목을 단 박근혜 대통령 어록집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의 어록 속에 담긴 의미를 강조하면서 대중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어록집이라고 소개되긴 했지만 이 책에는 진짜 화제를 모았던 박 대통령의 발언들은 담겨 있지 않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거나 "이산화가스를 배출하는 게 문제"라거나 "저하고 싸움하자는 거에요?('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근 들어 다시 회자되고 있는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는 거 아녜요" 같은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7일 박 대통령이 "일단 모두 물에 빠트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둬야 한다"고 한 발언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면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어록집에는 비교적 최근 발언까지 정리돼 있지만 해당 발언은 쏙 빠졌다.

박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건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뭐라고 그랬죠?"일 텐데 이 발언도 들어있지 않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비유와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대중적 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소개돼 있다.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인용해 "은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인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적 기제이자,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 그 자체"라고 설명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비유적 표현은 직접적인 표현에 비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고, 발언의 의도를 명확하게 부각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국민들 사이에 화제가 되곤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매번 언론에 보도되고 화제가 된 건 사실이지만 발언의 의도를 명확하게 부각시켜주는 발언이라고 치켜세울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꿈보다 좋은 해몽'이라고 할 만한 과장된 평가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기가 쌓인다"느니 "영혼이 썩는다"느니 하는 발언은 두고두고 희화화되는 발언이고 "원수"나 "암덩어리" 같은 표현은 생뚱맞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이다.  소통은 커녕 주술관계 등 기본적으로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도통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번역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겨나면서 박 대통령의 발언을 꼬집는 행태도 유행했다. 어록집이 아니라 번역집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화제의 발언,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으로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도 이 어록집에는 빠져있다.

'손톱 밑 가시'나 '불어터진 국수' 등도 박 대통령의 재치를 드러낸 표현으로 소개돼 있다. '우문현답'은 박 대통령이 만든 신조어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대통령이 설마 저런 기본적인 사자성어조차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돌았을 정도로 생뚱맞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우문현답을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으로 여러차례 사용해 왔다.

"옛날 선사 말씀도 '사람의 마음이 모이는 곳에 기가 쌓이고, 그 기가 충만하게 쌓이게 되면 현실이 된다 그게 이루어진다'고 하셨거든요. 여러분들은 애국심이 충만하고 리더십이 있고 사회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중심 힘이 되어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가야 한다."  (지난해 8월 7일 대한민국 ROTC 대표단과의 대화에서. )

"고려시대의 역사학자는 이 땅이, 이 영토가 그 나라에 사는 국민들의 육신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그 국민의 혼이라고 했다. 그러면 역사를 모른다고 하면 혼이 빠진 인간이고 또 역사를 잘못 알고 이상하게 왜곡돼서 그게 진리인 줄 알고 돌아다니는 것은 영혼이 썩는 거죠." (지난해 10월 13일 제15차 수석비서관회의에서 )

"우리 경제가 혁신해서 성장이 멈추지 않게 하려면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 덩어리라고 생각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들어 내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만 경제 혁신이 이루어지지 웬만한 각오로 가지고는 규제가 혁파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2014년 3월 10일 3차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독보다 진돗개가 더, 한번 물면 안 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진돗개를 하나 딱 그려 놓으시고 우리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4년 2월 5일 )

청와대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관련 권력형 비리가 전문해 정직 청렴함에 있어 역대 정부와 차별화된 평가를 받고 있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


경제활성화 입법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대국회 설득과 호소에 힘입어 크라우드펀딩법, 관광진흥법개정안, 국제의료지원법 등이 국회를 통과하며 일자리 창출과 기업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에 1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등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 촉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화자찬을 넘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도 틀린 설명이다.

입법촉구 서명운동은 경제 관련 단체들이 소속 회원에 강제 할당하거나 개인 정보 확인 없이 온라인 서명 운동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는데 이를 자발적인 서명운동으로 치켜세운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원장은 26일 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문인 출신으로 감정적, 감상적 언어를 구사한다.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표출하는데 뛰어나다. 진돗개나 혼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면서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언어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본인 생각뿐 아니라 상대방이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대 마음을 아우러 격려해주는 화법을 구사해야만 울림을 주고 공감대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애로 사항이라던지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상대방인 국민과 국회, 야당의 애로사항을 더 헤아려 줘야지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 원장은 "어느 정권이나 3년차가 되면 대표적인 정책이나 상징적인 정책이 있기 마련인데 박근혜 정부는 그게 없다"면서 "시시비비를 떠나 국가 차원의 아젠다를 밀고 나가는 대표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야당과 국민에 열린 마음으로 협조를 구해야지 그렇지 않고 기존의 방식대로 강력한 자기 중심적인 통치력으로 밀고 나가면 역방향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