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세입자 입장에서 갑자기 건물주가 바뀌는 것은 위험신호다. 새 건물주가 들어와 쫓겨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전 주인과의 신뢰나 인간적인 관계는 새 주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울 한남동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대표적인 예다. 가수 싸이가 해당 건물을 사들이며 재건축을 한다는 명목으로 세입자 테이크아웃드로잉에게 재계약을 거절하고 퇴거를 요구해 상가세입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의 전통적인 중간계급을 가리키는 말인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한 말로, 문자 그대로 어떤 지역이 젠트리화한다는 의미다. 보통 상권이 형성돼 집값이 뛴 지역에서 비싼 값에 건물을 산 건물주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 권리금을 가로채거나 월등히 높은 월세를 요구하면서 원거주자들이 쫓겨나는 걸 의미한다.

홍대 앞 '이리카페’도 최근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다. ‘홍대 앞 예술인 사랑방’이라 불리곤 했던 이리카페는 지난주 월요일 집주인으로부터 건물주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향후 새 건물주가 어떤 요구를 할 진 단언할 수 없으나, 이리카페 공동사장 김상우(43)씨는 주변 상가의 변화 조짐이나 집주인이 근래 보인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고려할 때 단순히 건물주가 바뀌는 데서 끝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이곳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이리카페를 즐겨 찾던 사람들은 “지켜내자” “동네를 흔들지 마라” “홍대에서 이게 몇 번째인가” 등의 댓글로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이리카페에서 카페 사장인 김상우씨를 만나 속사정을 들었다.

예술인들의 비빌 언덕 돼 준 ‘예술인 사랑방’ 이리카페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이리카페는 ‘홍대 옆 와우산로3길 1호 카페’라 불렸다. 상권이 형성되기 전 상수동에 터를 잡은 첫 번째 카페였기 때문이다. 이리카페는 특히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찾았다. 여기엔 카페 특유의 분위기와 운영방식이 한몫했다. 김씨는 ‘이리카페는 홍대 예술문화의 일부분’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예술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인이자 밴드를 하는 음악가이고 다른 공동사장인 이주용씨는 미술가다.

▲ 이리까페 운영자 김상우씨. 사진=손가영 기자

이리카페는 미술가와 사진가의 전시관이면서 때때로 독립영화감독의 상영관이 된다. 카페는 ‘작품을 걸고 싶은’ 예술인 누구에게라도 비용없이 벽을 빌려준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예전엔 칸막이가 쳐진 공간을 이용해 목요일마다 독립영화를 상영했다. 김씨는 “고생해서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데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감독이) 카페 손님의 입장료도 받고 ‘오징어땅콩’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카페는 이들에게 아무런 수수료도 받지 않았다.

카페에서 시를 쓰는 손님이 있다면 손님이 쓴 시를 벽에 게시하거나 그를 위한 낭독회를 열기도 한다. 김씨는 이리카페에서 항상 시를 썼던 고등학생이 올해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벽에 붙여놓은 그의 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카페엔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등 문학출판사의 시 낭독회도 수차례 열렸다. 이처럼 ‘예술인에게 열린 공간’이 되면서 카페는 예술인들의 일상적인 창작공간이 됐다. 이날도 기타를 치거나 시를 쓰고 있는 손님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다 같이 만든 곳, 싸우기라도 해야지”

김씨는 서른 살 때 카페를 시작해 13여 년간 운영해왔다. 그는 카페를 “내 청춘이었다”고 말했다. 손님, 예술인뿐만 아니라 운영자에게도 의미깊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상수동 이리카페는 공동대표 둘을 포함해 총 11여 명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로, 일부는 7년, 12년 등 대표 못지않게 카페 운영을 오래 해왔다. 김씨는 “장사에 ‘마음’이 없으면 대충 2년 장사하고 권리금 받고 팔 수 있다. ‘마음’을 가지고 장사하는 경우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한때 강남에서 ‘팔 생각 없냐’고 매일 전화왔다. 그럴 의향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리카페가 ‘내쫓길’ 위기에 처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서교동에서 처음 자리 잡은 이리카페는 2009년 당시 집주인으로부터 “조카가 카페를 하고 싶어한다”는 통보를 받은 뒤 상수동으로 옮겨왔다. 김씨는 “그땐 지금처럼 상가임차인 권리가 공론화되지 않아서 쫓겨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 이리까페는 좌측 벽을 '작품을 걸 곳을 찾는' 미술가와 사진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상수동에 옮겨와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상수동에 카페·레스토랑 등의 상권 형성이 가속화되면서 2014년 건물주는 월세 60만 원을 인상했다. ‘테이블 회전율이 빠르지 않은’ 이리카페로선 부담이었지만 카페를 유지했다. 6년 동안 월세는 235만 원에서 380여만 원으로 약 61% 올랐다.

그리고 2년 후, 이제는 내쫓길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됐다. 김씨는 “지금은 자세히 밝히긴 어렵다”면서 대략적인 정황만 언급했다. 건물 관리에 관여하지 않았던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제부터 자신이 관리하게 됐다며 월세 10% 인상을 언급한 것이나 2011년 임차인 계약자 이름이 바뀐 것을 두고 “‘왜 바꿨냐’고 ‘협박같이 내질렀던’ 태도”, 결국 1월 중순 주인의 요구로 2009년 계약자 이름으로 변경해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 2주 뒤 건물이 팔린 사실을 급작스럽게 통보받은 것 등이 석연치 않은 정황이다. 김씨는 2009년 계약자 이름 변경을 강요한 것에 대해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을 5년 동안 보호하니 그걸 염두에 둔 게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리카페는 이번엔 이전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예정이다. 손님, 예술인, 운영진 등 다수가 함께 만들어온 소중한 공간을 지킬 필요성을 느껴서다. 김씨는 “이리카페 특유의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며 “모두가 다 같이 (카페를) 만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칼 같은 걸로 쉽게 죽어서야 되겠나. 찔리더라도 안 찔리려고 싸움도 해보고”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인 ‘땅값 상승’엔 세입자의 몫도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월세를 올릴 때마다) 이 동네 시세가 그렇다고 말을 하는데, 이 시세를 만든 덴 우리가 있다”며 “이 시세를 만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타격을 첫 번째로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이전할 당시 이곳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리카페가) 처음 장사하는 상가로 들어갔고, 깨소금 가게, 이발소, 담뱃가게 등이 주변상가였다”면서 “당시엔 임대료도 당연히 쌌다. 그러다 2012년부터 (상수동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끝’을 본 상수, ‘카페-술집-스타벅스’ 길로 들어서나

이리카페는 상수에 자리를 잡은 지 이제 ‘겨우’ 6년이 됐다. 6년은 상가운영자에겐 그리 긴 기간이 아니다. 김상우 대표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를 보호하는 ‘5년’ 기간을 언급하며 “5년으론 안 된다. 장사는 갈고 닦는 데만 5년이 걸린다”면서 “일본의 경우 장사를 장인으로 취급하고 세입자를 보호할 기간도 10년인 데다, 세입자가 나가려 하지 않을 시 그 의견도 보장하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사회가 세입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활용됐던 이리카페 내 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젠트리피케이션의 속도가 빠른 것도 문제다. 홍대 앞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보고 평소에도 내쫓길 위기를 의식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당연히 그렇게(쫓기게) 되죠”라면서도 “상수동 같은 경우는 5년 만에 끝까지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원래 주변에 카페가 10개가 있었는데 거의 다 없어지고 술집으로 변했다. 카페 다음 술집, 그다음 거대 자본이 들어서 스타벅스가 생기는 게 순서”라면서 “이곳도 술집으로 끝날 것이다. 이 앞에 공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는데 조그만 것들은 아마 안될 것”이라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카페의 미래가 골목의 미래, 이웃 카페들 “함께 대응해 나갈 것”

김씨는 3월 중으로 상황이 명백해질 것이라 말했다. 3월 중으로 새 건물주가 기존 건물주에게 매매 잔금을 다 치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카페를 ‘우리가 만든 것도, 주인이 만든 것도 아닌 모두가 다 같이 만든 유기체’라고 말하는 김씨는 “이리카페답게 문제를 풀어 갈 것”이라며 “다음 주 월요일쯤 손님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서 함께 목표를 정하고 토의를 할 것”이라 밝혔다. 당장 내일은 직원 15명과 토의를 거쳐 입장을 정리해 볼 예정이다. 김씨는 “‘이리’가 상수동에 웅크리고 있다가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자기 몫을 다 해버리면 너무 슬프다. 합당치 못하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리카페와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카페 ‘그문화다방’의 사장 김남균씨는 김씨로부터 이리카페의 상황을 들은 뒤 이 사실을 페이스북에 가장 처음 알렸다. 김씨는 상가임차인의 ‘장사 할 권리’를 옹호하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전 대표이자 내쫓긴 경험을 토대로 상가임차인의 생존법을 쓴 책 ‘골목사장생존법’의 저자다. 김씨는 상가세입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건물주와 세입자 분쟁으로 이슈가 되는 곳은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싸울 수 있는 곳이다. 더 작은 상가들은 내용 증명 하나만 보내도 쫓겨나간다. ‘윽’하는 소리만 해도 ‘악’하고 죽는 ‘소리 없는 침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약 이리카페가 내쫓기면 건물주들에겐 이렇게 해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생긴다. 이 문제는 이 골목 상가들의 문제로 (대응을)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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