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모내기’는 없었다.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리얼리즘의 복권’(~2.28) 전시는 민중미술을 주도했던 신학철 작가를 포함한 화가 여덟명의 대표작들을 모은 전시다. 하지만 민중미술과 ‘표현의 자유’의 상징적 작품인 신학철의 ‘모내기’는 볼 수 없었다. 

‘모내기’는 한국 민중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인 신학철의 1987년 작이다. 신학철은 ‘모내기’에서 이적표현을 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모내기 원작은 여전히 검찰청 압수물 보관창고에 남아있다. 

이후 ‘모내기’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거론 될때마다 등장하는 상징적 작품이 됐다. 신학철이 민족미술협회 발행의 달력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린 ‘모내기’는 소장자가 이번 전시에 내놓지 않았다. 이에 신학철 작가는 “소장자가 시끄러운 게 싫어서 안내놓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보낼 줄 알았지”라고 아쉬워했다. 

▲ 신학철 작가의 모내기(1987). 이 작품으로 인해 신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작품은 압수당했다.

모내기를 출품해 처벌을 받았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무엇이 변했느냐고 묻는 말에 신 작가는 “변하다니, 더러 거꾸로 가는데”라고 즉각 답했다. 그는 “퇴행이라기보다는 좀비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신 작가는 뉴라이트 세력을 두고 ‘좀비들’이라고 표현했다.

“조갑제, 신지호, 방우영… 친일파 망령들 다 그림에 넣어버렸지”

“걔네들을 난 좀비들이라고 해. 영어는 쓰기 싫어해서 망령들이라고 했어. 왜 망령이냐면 지금 판치고 있는 뉴라이트들은 이전의 죽은 친일파들이야. 이 망령들이 다시 살아난 거야. 고려대학교의 한승조라는 사람이 일제강점기가 한국을 현대화시켰다는 친일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들고 나왔어. 그 이후로는 다 똑같이 따라 했어. 조갑제, 안병직, 신지호, 서정갑… 그래서 그림에 다 넣어버렸지.”

신 작가가 말하는 ‘그림’은 2011년 작 ‘한국근현대사-망령’이다. 현재 진행 중인 ‘리얼리즘의 복권’(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신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최근작이며, 이전에는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작품이다. 

‘한국근현대사-망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들과 뉴라이트 인사들을 콜라주 방식으로 그려 넣어 한 마리의 큰 괴물의 형태로 표현했다. 마치 ‘리바이어던’이 떠오르는 괴물 형상이다. 이 꼭대기에는 2009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영정사진을 절도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이 있다.

▲ 신학철 작가의 '망령들'(2011). 

신학철 작가의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 작품은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알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망령들’ 만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 김윤옥 전 영부인, 방우영 전 조선일보 회장, 조갑제 언론인, 안병직 여의도 연구소 이사장,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용기 목사 등이 등장한다.

‘모내기’보다도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신 작가는 “뭐라고 하라면 하라고 하지 뭐. 내가 거짓말 한 것도 아니고”하고 웃는다.

“방우영 회장의 환갑잔치도 그릴만 하지. 웬만한 재야인사들은 다 등장하잖아.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굽신굽신해. 내가 그 잔치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가 차던지. 한마디로 이 ‘망령들’이라는 그림은 ‘나쁜 놈들의 한국 현대사’야. 알면서 계속 거짓말하고 거짓말하는 사람한테 굽실거리고.”

이렇게 한국근현대사의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룬 신학철의 ‘한국근현대사’시리즈는 1984년부터 시작돼 현재 50여 점에 이른다. 보통 백 명에 가까운 인물들을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연대기별로 배치한다. 모인 인물들은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구적 성향을 풍기는 ‘한국근현대사’와는 다르게 ‘모내기’(1987)는 일명 ‘이발소 그림’ 같은 키치(Kitsch) 풍이다. 하지만 ‘모내기’ 역시 아래에서 위로 이야기하는 기법을 적용했다.

▲ 신학철 작가가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모내기를 향한 검찰의 질문, “전두환 아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모내기’는 1987년 ‘그림마당 민’의 ‘통일전’에 처음 전시됐다. 전시 당시에는 ‘모내기’가 아닌 다른 작품들이 압수당하고 훼손됐다. 당시 압수당한 그림은 전정호와 이상호가 그린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1987)라는 작품이다. 레이건 대통령 머리 위에 젊은이가 오줌을 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다. 

이에 비하면 당시 ‘모내기’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조용했다. 하지만 2년 후 한 청년단체에서 모내기 그림을 인쇄해 부채로 만들며 문제가 커졌다. 국가보안법 이적성 표현혐의로 신학철 작가는 구속됐다.

놀라운 것은 모내기 위쪽의 산과 마을이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를 나타낸 것이고, 그림 아래쪽의 쓰레기 더미는 남한을 표현했다는 공안당국의 상상력이었다. 신 작가는 이에 “실제로 남한과 북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라고 그림을 설명했다.

그림 아래쪽의 람보, 사무라이, 게이샤, ET 같은 것을 쓰레기 더미로 표현한 것은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저질 외세문화이다. 여기에는 통일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득권자들, 부자들, 일본 정권과 미국 정권도 포함돼있다. 한 남성이 이를 빗질하며 쓸고 있다. 그림 위쪽의 산은 백두산, 아래쪽 마을은 신 작가의 고향이라고 했다. 

신 작가는 “김일성 생가가 아니라 우리 고향에 복사꽃 핀 모습을 그린 거고, 옆에 서있는 사람은 우리 6촌 형님이다”라고 말했다. ‘모내기’에 나오는 신 작가의 6촌 형님은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에서 ‘마지막 농부’라는 작품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결국 신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작품은 압수당했다. 그는 석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1999년 11월 대법원은 징역 10개월 형 선고 유예를 내리고 그림 몰수를 판결했다. 2000년 4월 시민단체와 예술인단체가 이 사건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2004년 4월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유죄판결에 대한 보상과 판결 무효 조치, 그림 반환 조처를 하라고 결의했다. 그러나 그림은 아직 신 작가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혹시 북한을 찬양해서라기보다, 기득권자들과 정권을 비판했기 때문에 탄압받은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신 작가는 “자기들 비판했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북한에 이적했다고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 전두환, 일본 총리도 다 쓸어버리는 거로 그렸으니까. 당시 검찰이 그러더라고, ‘전두환 아들이 이걸 봤을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더라고. 저들 비판한 게 나쁜 거니까, 나를 잡아간 거지. 북한 찬양은 명분 아니겠어.”

▲ 신학철 작가의 '부활'(1997). '부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복 안에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씨가 그려져있다. 그 위로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박종철 군이 그려져있다. 
끝나지 않은 ‘모내기’의 시대

기득권자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배제하는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예술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 수준도 ‘모내기’ 시대와 비슷하다. 최근 이하 작가는 수의 차림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포스터를 연희동에 붙였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예산이 깎이는 등 위기에 처했다.

“갈수록 심해지겠지. 유인촌이 문화부 장관 할 때부터 이런 방향은 노골화된 거고. 사실 당시에 다 쳐버렸는데, 아직도 감정을 거스른 자잘한 것들이 남아있으니까 모두 다 청소해버리고 싶지 않겠어. 끝물이지만 지금도 그 청소 작업은 진행 중이고.”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작품은 언제쯤 나오느냐고 물었다. 신학철 작가는 “이제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신 작가는 작년 봄에 떠나보낸 아내의 병시중을 12년 동안 해왔다. 그는 “그동안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림에 대한 생각도 안 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더라”며 막걸릿잔을 들었다.

▲ 신학철 작가.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재 박근혜 정부의 행태는 비자연적이야. 정부기관, 법, 방송, 미디어 다 자기편으로 만들고 통제하고 있어. 조지오웰이 말한 1984년과 같은 상황이야. 특히 세월호 사건은 정말 너무 잘못했어.” 신 작가의 겉옷 오른쪽 지퍼에는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이어가고, ‘갑돌이와 갑순이’(1991) 작품 뒷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계획이 주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그는 입체파 성향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현 정권을 보면 자기 마음대로 눈은 아래쪽에, 귀는 뒤쪽에 두고, 신체기관이 여기저기 뒤틀려있는 형상이 떠올라. 피카소가 했던 양식같이 신큐비즘이나 입체파 형식으로 그런 모습을 그려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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