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31)씨가 쓴 ‘청년폭도맹진가’는 도발적인 문구로 가득하다. “더이상 이 나라를 저 늙은 어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우리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우린 미련없이 한국을 떠날 것”이라며 “우리가 떠나버린다면 이 나라에 국민연금을 낼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리될 경우 손꼽아 연금 받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던 늙은 당신들의 노후는 이제 없습니다”라 적고 있다.

강씨는 자신을 예술가, 영세 자영업자, 청년이란 한국 사회 하위 계층 3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소개한다. 강씨는 입학 후 한 달 만에 대학을 자퇴한 후로 쭉 ‘딴따라’ 활동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고 5년 전부터는 벼르고 별렀던 술집을 창업해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강씨는 ‘실격패’로 분류되는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이기지 않은’ 부전승 인생이라며 한국 사회 청년들이 부전승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변한다. 미디어오늘은 정의당 20대 총선 청년 국회의원 후보로 등판한 강드림씨를 지난 17일 강씨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만났다.

“청년 낙오시키는 사회, 부전승자로 살 수 있는 가능성 보여주고 싶다”

강씨의 술집 이름 ‘인각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 시즌5’는 강씨의 지난 삶을 반영하고 있다. 강씨는 ‘대학졸업도 안 하고 돈도 못 벌고 악기를 연주하고 다니는’ 자신에 대한 사회의 경멸적인 시선을 느끼며 살았다고 했다. 강씨는 “사람들은 (내가) 무대에 있을 땐 과할 정도로 박수를 쳤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한심한 인간이자 식충이로 봤다”고 말했다. 사회가 “너는 답이 없다”고 말할 때 강씨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부전승’이라 여겼다”고 답했다.

▲ 지난 17일 강씨가 운영하는 술집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 시즌5에서 강씨가 행드럼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강씨에게 사회는 늘 99명은 패배하고 넘어지는 공간이다. 100명 중 승자는 1명밖에 있을 수 없는 게 객관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강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청년들에겐 맹목적으로 도전, 노력, 열정이 강요되고 승자 1명에게만 모든 혜택이 돌아간다”며 “넘어지면 끝장인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넘어져도 된다는 ‘포기할 권리’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씨가 선거에 출마하는 목적 중 하나도 자신처럼 넘어져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사회에, 특히 청년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강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오니 동료 예술인들이 모두 현실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예술을 포기한 채 돈을 벌러 나간 것이 술집을 열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고 밝혔다. ‘나처럼 술집을 운영해도 괜찮다는 것, 이렇게 살면서 예술활동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돈이 부족했던 강씨는 값비싼 인테리어, 좋은 목 등을 포기하고 술집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주변인들에게 계속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일 뿐이지 않냐는 지적에 강씨는 “정치인들이 말로만 약속하는 걸 나는 직접 몸으로 보여준다”고 답했다. 특히 강씨는 진보정당들이 “‘힘을 주면 공약을 지키겠다’며 미래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당장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며 “진짜 진보주의자라면 자기 삶을 통해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공무원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고 외제차를 못 사도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강씨는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하가 있더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제는 ‘저희를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명령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강씨가 ‘어른 세대’에 “물러나시라”고 요구한 이유다. 강씨는 강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엄포를 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이 한국을 떠나면 국민연금과 노후도 없다. 당신들이 안전한 노후 받고 싶으면 지금 20~30대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처럼 강씨가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된 데엔 지난 10여 년간 불안정한 청년의 삶을 직접 겪은 경험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강씨는 ‘안 해 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을 거쳐왔다. 21살 때 실업자 재취업 과정으로 굴삭기 기사 자격증을 따 일을 했고 여행가이드, 이탈리아·일본 음식점 요리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의류 중개상 등도 강씨의 이력 중 일부다. 지난 5년부터는 자영업에 뛰어들어 술집, 게스트하우스, 분식 가게 등을 시도해왔다. 지금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 시즌5’는 5년 전에 열었던 가게 ‘시즌1’을 재개업하는 것이다.

강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경험이 자신을 가장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 자퇴, 퇴사 등 ‘실패자라고 일컬어진’ 사람에게 숙박료를 받지 않는 캠페인을 했다. 당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게스트하우스의 주인과 나머지 투숙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주인 강씨는 직접 담근 술 ‘성숙주’를 선물했다.

“그냥 예술하고 장사하지 왜 정치를 하려 하느냐?”

예술가이자 자영업자로 잘 살고 있었던 강씨는 왜 갑자기 지지자를 모아야 하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까. 예술가로 사는 게 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강씨는 “정치를 만만히 보는 자세, 우리의 일상이 정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정의당 청년 선거운동본부 및 청년 후보단 '종결자들' 출범식이 1월11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렸다. 강드림 후보는 맨 오른쪽에 서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강씨는 자신의 정치를 정치에 대한 거부감과 냉소를 허무는 ‘퍼포먼스’ 실천으로 이야기했다. 실제로 강씨는 지난 19대 총선과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 출마를 시도한 적이 있다.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경선으로 선출했고 강씨는 1차 경선에 참여해 탈락했다. 강씨는 청년정치를 주장하는 민주통합당에 대해 ‘이 사람들 청년 정치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는 조롱을 담은 동영상을 1차 오디션에 제출했다.

지방선거 때는 무소속 구의원에 출마하면서 ‘구태 정치’에 대한 조롱을 시도했다. 강씨는 ‘세상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체념의 한 표’ 등이 적힌 출마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자신의 슬로건이나 포스터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느끼고 출마 자체를 중단했다.

강씨는 “우리는 정치를 욕하면서도 당장 정치인 앞에 서면 위축되는데 이 점을 바꿔야 한다. 만만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미어터지는 지하철타면서 화나는 것도 교통문제로 해결해야 할 정치문제고 추가노동에 대한 급여를 받지 못 하는 것, 편의점 알바가 나에게 ‘틱틱’거리는 것도 다 정치의 문제”라면서 “일상을 정치의 문제로 연결시켜 생각을 해야 한다. 이를 바꿔내 볼 것”이라 말했다.

강씨는 올해 총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을 0%로 뒀다.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지지자에 대한 책임감을 고민하지 않고 ‘지역 일꾼 강드림’, ‘강드림을 지지해달라’ 등의 구호도 전혀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강씨는 “정의당 인지도 상승이 목적 중 하나다. 거대 양당 사이에 정의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후보로서의 목적을 200% 달성하는 것”이라면서 “그게 아니면 무소속으로 나와 조롱놀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당선 목적? 돈키호테도 아니고… 정의당 존재감 늘릴 것

강씨는 20대 초반에 반자본주의를 표방한 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했고 2012년엔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강씨는 “새로운 정치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기대가 굉장히 컸으나 몇 가지 이유로 실망을 하고 이내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왜 정의당이냐는 말에 그는 “정치가 개판이라면 개싸움을 해야 한다”며 “새누리나 더불어민주당으로 갈 수는 없고 현실정치에서 진보정당으로서 목소리가 먹혀들 곳이 그나마 정의당이었다”고 지적했다.

▲ 강드림씨가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때 선보일 '행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그럼에도 강씨는 정의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의당도 ‘입만 앞서는’ 진보정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지금 강씨는 후보로 등록됐음에도 지역구가 정해지지 않았다. 강씨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강력 추천’으로 정의당의 청년후보 공개모집을 통과했으나 현재 지역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자신이 사는 지역 주변인 서대문구와 마포구를 중심으로 출마 의사를 개진했으나 불발됐다.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구 어디든 나가겠다고 했으나 해당 지역위원회의 반대로 다시 무산됐다. 현재 광진구 출마를 고려하는 강씨는 “‘정의당은 다릅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며 “나름 새롭고 깨어있다는 진보정당도 나 같은 후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26일 배준호 정의당 부대표는 강씨가 전략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밝혀왔다.)

강씨에게 현재 정의당은 ‘실격패’다. 강씨는 “정당 인지도가 50%를 넘지 못하면 그건 정당이 아니”라며 “노회찬, 심상정을 빼고 정의당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성주 후보도 진보정당에 관심있는 사람만 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강씨는 이번 총선의 방점은 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정의당을 알리는데 찍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있어 강씨는 스스로를 매우 효과적인 카드라 말했다. 정의당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저런 애도 안아가는 품이 넓은 진보정당’이라는 인식도 줄 수 있고 재밌고 신선한 선거운동으로 젊은 무당파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강씨는 “의미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지를 호소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로 말미암아 우리 동네에 있는 사람이 정의당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저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이라 밝혔다.

강씨는 정의당이 “입으로 말하는 진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민생이 개판인데 거기 들어가 치열하게 싸워야지 고고하게 선비마인드로 대안을 제시해선” 안된다. 그는 “정의당은 옳은 소리 하는 것을 잘한다”면서 “힘이 없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니 대중들은 관심이 없다.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라 지적했다.

강씨는 이번 선거운동에서 ‘지역구 내 청년문화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 걸 예정이다. 문화센터는 쉽게 말하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상상마당’의 공공 버전으로 공연장, 갤러리, 자유공간 등이 있는 청년맞춤형 복합문화공간이다. 강씨는 “노인복지관, 어린이복지관은 있지만, 청년복지관은 없다”면서 “현재 20~30대의 가장 큰 문제가 외로움이다. 사람이 모이면 외로움도 해결되고 결집력이 생겨 정치적으로 ‘어필’할 힘이 만들어진다. 서울시 4개 권역에 하나씩만 설치해도 좋을 것”이라 말했다.

출마의 목적이 분명한 강씨는 선거운동도 매우 독특하게 계획하고 있다. 정의당은 청년후보들에게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지만 강씨는 지원을 받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그는 선거 유세 차량, 명함 및 전단 배부 등의 고전적 방식도 “시민들의 피로도를 유발하는 방식”이라며 거부했다. 강씨는 “나에게 정의당 재원이 나가는 건데 애꿎은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면서 “‘행드럼’이란 은은하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가지고 길거리 버스킹을 하려 한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내 연주를 보고 스트레스를 풀고 잠시 위로를 받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사수정 26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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