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범)는 왕, 표범은 여왕을 상징한 것을 보면 숭상의 대상이기도 했다. 명성황후는 표범 48마리의 가죽을 이어붙인 양탄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사용하기도 했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아끼는 호랑이를 사냥했다. 1차적으로는 일본인(내지인)이 한반도에 정착하는데 가장 무서웠던 존재가 호랑이였기 때문에 ‘해수(해로운 맹수)구제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는 조선의 포호정책(호랑이 포획정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호랑이를 사냥해 왕실에 바친 것을 보면 ‘정호군’의 활동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야마모토는 왜 조선의 호랑이를 모교에 기증했을까?
야마모토의 ‘정호군’은 1917년 11월10일부터 한 달간 조선의 명포수를 고용해 한반도 전역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서 2마리의 대호를 잡았다. 야마모토는 한 마리를 당시 일본 왕태자에게 기증했고, 다른 한 마리는 자신의 모교인 도시샤 대학에 기증했다.
이에 대해 김영준(혜문 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 믿기도 했고, 조선의 지도자는 자신을 호랑이로 비유했다”며 “호랑이 사냥은 대동아공영권을 미래세대에게 알리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했다.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왕태자와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선의 상징인 호랑이를 잡아 보낸 것이다.
시식회는 1917년 12월 서울(경성) 조선호텔과 도쿄의 제국호텔 등 두 차례 진행됐다. 왕이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 옆 조선호텔과 제국호텔에서 호랑이를 먹었다는 건 조선침략을 자축하는 행사라는 게 김 대표의 해석이다.
한편으로는 조선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습격할 때 암호명이 ‘토라토라’인데 이는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이라며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호랑이를 좋아하고 숭상하는데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고, 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일본 스모선수들이 호랑이 그림을 달고 나오는 것,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 다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반환의 의미 “동물로 푸는 동북아 외교”
‘호랑이를 잡은 사람은 뒤가 안 좋다’는 미신이 있다. 김 대표는 “우스갯소리지만 야마모토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호랑이를 잡고 나서 1940년대 이후 쫄딱 망했는데 조선호랑이의 복수가 아니냐”고 말했다. 아직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호랑이 박제가 일본에 있다는 건 민족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22일 일본 도시샤 학교 법인에 야마모토의 정호군이 사냥해 기증한 호랑이와 표범 박제 반환을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 김 대표는 “발전적인 한일관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호랑이는 이제라도 한국에 반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소망은 “호랑이 문제로 동북아의 외교를 풀어가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호랑이 박제를 반환하면 그 호랑이가 잡힌 함경도에 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며 “사실 호랑이는 시베리아부터 백두대간을 오가는 동물인데 휴전선으로 그 통로가 막혀있다”고 말했다.
호랑이 생태복원을 이유로 갈등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에 남북정상회담하러 북한 가면서 호랑이 그림을 구매했다”며 “그만큼 호랑이 그림 구입은 자연스러운 한국인의 정서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호랑이가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까지 내려오게 하려면 북한 뿐 아니라 러시아·중국과도 협력이 필요하다.
일제가 남긴 흔적은 호랑이와 표범의 멸절된 것만이 아니다. 김 대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 사슴이 정력에 좋다고 다 잡아먹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카(sika)’라는 일본 사슴을 풀어놓은 것”이라며 “북한에서는 조선 사슴농장이 있어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원도 인제군과 함께 조선사슴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문화재반환운동 10년, 모든 것이 제자리로
혜문스님으로 더 유명한 김 대표는 2006년부터 문화재 환수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유학 중 일본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화재 환수를 요청해봤는데 이에 성공한 뒤부터다. 2011년 일왕이 소장하던 ‘조선왕실의궤’ 환수도 그의 노력 덕분이었고, 도시샤 중·고등학교에 소장된 호랑이와 표범을 보러가는 것 역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의 삶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주최한 20만 마리 종이학 전시회가 열렸다. 현재 일본 오쿠라 호텔에 있는데 석탑이 반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도권 47개 학교 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은 것이다. 석탑의 원래 위치는 평양이다. 역시 한일 간의 문제이자 남북문제인 것이다.
문화재를 통한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그는 “10여년 전에는 일본 오타니 고등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재일본거류민단에 호랑이 박제를 기증했고,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는 호랑이 박제 역시 일본에서 기증한 것”이라며 “내년이 야마모토의 정호군이 호랑이를 잡아간지 100년째인데 내년까지는 꼭 호랑이 박제가 돌아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