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식민지배와 분단의 희생양이다. 일본 기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정호군(征虎軍)’이 보여준 것처럼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의 혼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사냥해 사실상 씨를 말렸고, 한국전쟁으로 생긴 휴전선은 만주에 사는 호랑이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까지 이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는 호랑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라 호랑이가 많았지만 현재 한반도에는 야생 호랑이가 없다.

호랑이(범)는 왕, 표범은 여왕을 상징한 것을 보면 숭상의 대상이기도 했다. 명성황후는 표범 48마리의 가죽을 이어붙인 양탄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사용하기도 했다.

▲ 미국 잡지 '라이프' 지가 1951년 보도한 명성황후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표범가죽카펫.

▲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가족사진 속에 호피가 깔려있다. 현재 이 호피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일제는 조선인들이 아끼는 호랑이를 사냥했다. 1차적으로는 일본인(내지인)이 한반도에 정착하는데 가장 무서웠던 존재가 호랑이였기 때문에 ‘해수(해로운 맹수)구제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는 조선의 포호정책(호랑이 포획정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호랑이를 사냥해 왕실에 바친 것을 보면 ‘정호군’의 활동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야마모토는 왜 조선의 호랑이를 모교에 기증했을까?

야마모토의 ‘정호군’은 1917년 11월10일부터 한 달간 조선의 명포수를 고용해 한반도 전역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서 2마리의 대호를 잡았다. 야마모토는 한 마리를 당시 일본 왕태자에게 기증했고, 다른 한 마리는 자신의 모교인 도시샤 대학에 기증했다.

이에 대해 김영준(혜문 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 믿기도 했고, 조선의 지도자는 자신을 호랑이로 비유했다”며 “호랑이 사냥은 대동아공영권을 미래세대에게 알리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했다.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왕태자와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선의 상징인 호랑이를 잡아 보낸 것이다.

▲ 22일 일본 교토 도시샤 중고등학교에 소장된 호랑이 박제가 혜문스님을 통해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호랑이 길이는 3m, 높이 80cm 가량으로 꼬리만 1m가량이다. 사진=혜문스님

▲ 22일 일본 도시샤 중고등학교에 소장된 새끼 호랑이 뼈 골격이 공개됐다. 조선호랑이 여부는 확실치 않다. 사진=혜문스님
호랑이 사냥의 문제가 동물의 멸종 차원을 넘어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이었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영국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할 때 사자를 사냥한 것이나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의 생활기반인 버펄로를 사냥한 것과 같은 얘기”라며 “임진왜란 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를 침략해 호랑이 고기를 먹고, 가죽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야마모토 역시 호랑이 시식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시식회는 1917년 12월 서울(경성) 조선호텔과 도쿄의 제국호텔 등 두 차례 진행됐다. 왕이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 옆 조선호텔과 제국호텔에서 호랑이를 먹었다는 건 조선침략을 자축하는 행사라는 게 김 대표의 해석이다.

▲ 1917년 12월20일 일본 제국호텔에서 진행된 호랑이 시식회. 이날 일본 내 주요인사 20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에이도스 제공

한편으로는 조선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습격할 때 암호명이 ‘토라토라’인데 이는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이라며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호랑이를 좋아하고 숭상하는데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고, 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일본 스모선수들이 호랑이 그림을 달고 나오는 것,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 다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반환의 의미 “동물로 푸는 동북아 외교”

‘호랑이를 잡은 사람은 뒤가 안 좋다’는 미신이 있다. 김 대표는 “우스갯소리지만 야마모토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호랑이를 잡고 나서 1940년대 이후 쫄딱 망했는데 조선호랑이의 복수가 아니냐”고 말했다. 아직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호랑이 박제가 일본에 있다는 건 민족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 수호(호랑이와 표범의 잡종)를 포획한 정호군 제7반과 부대원들이 능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호에게 머리를 다친 몰이꾼(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수호 가까이 앉아있다. 사진=에이도스 제공

김 대표는 22일 일본 도시샤 학교 법인에 야마모토의 정호군이 사냥해 기증한 호랑이와 표범 박제 반환을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 김 대표는 “발전적인 한일관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호랑이는 이제라도 한국에 반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소망은 “호랑이 문제로 동북아의 외교를 풀어가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호랑이 박제를 반환하면 그 호랑이가 잡힌 함경도에 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며 “사실 호랑이는 시베리아부터 백두대간을 오가는 동물인데 휴전선으로 그 통로가 막혀있다”고 말했다.

호랑이 생태복원을 이유로 갈등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에 남북정상회담하러 북한 가면서 호랑이 그림을 구매했다”며 “그만큼 호랑이 그림 구입은 자연스러운 한국인의 정서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호랑이가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까지 내려오게 하려면 북한 뿐 아니라 러시아·중국과도 협력이 필요하다.

일제가 남긴 흔적은 호랑이와 표범의 멸절된 것만이 아니다. 김 대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 사슴이 정력에 좋다고 다 잡아먹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카(sika)’라는 일본 사슴을 풀어놓은 것”이라며 “북한에서는 조선 사슴농장이 있어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원도 인제군과 함께 조선사슴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문화재반환운동 10년, 모든 것이 제자리로

혜문스님으로 더 유명한 김 대표는 2006년부터 문화재 환수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유학 중 일본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화재 환수를 요청해봤는데 이에 성공한 뒤부터다. 2011년 일왕이 소장하던 ‘조선왕실의궤’ 환수도 그의 노력 덕분이었고, 도시샤 중·고등학교에 소장된 호랑이와 표범을 보러가는 것 역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의 삶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주최한 20만 마리 종이학 전시회가 열렸다. 현재 일본 오쿠라 호텔에 있는데 석탑이 반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도권 47개 학교 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은 것이다. 석탑의 원래 위치는 평양이다. 역시 한일 간의 문제이자 남북문제인 것이다.

문화재를 통한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그는 “10여년 전에는 일본 오타니 고등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재일본거류민단에 호랑이 박제를 기증했고,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는 호랑이 박제 역시 일본에서 기증한 것”이라며 “내년이 야마모토의 정호군이 호랑이를 잡아간지 100년째인데 내년까지는 꼭 호랑이 박제가 돌아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혜문스님.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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