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노조의 근간을 흔드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산별노조 산하의 지부·지회가 상급단체의 위임 없이도 자유롭게 조직형태를 기업별노조로 바꿀 수 있다고 판결했다. 노조단결권이 훼손되면서 ‘쉬운 노조파괴’의 길이 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겨레는 이번 판결에 대해 “‘외눈박이’ 사법부의 ‘기울어진’ 판결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둘러싸고 총력전을 하는 태세다. 일부 보수언론은 여야 합의가 불발된 데 대해 “국민 목숨을 놓고 정쟁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테러방지법 통과를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철강업계 최초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현대제철(옛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자동차 생산 공정을 넘어 제조업 공정 전반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이 파견 노동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의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음은 2월20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산별노조’ 울타리 무너졌다>

국민일보 <‘전술핵 재배치’ 딜레마>

동아일보 <北 테러 위협에도… 여야 ‘총선 政爭’만>

서울신문 <산별노조 탈퇴해 기업노조 전환 가능>

세계일보 <美 대북제재법 발효… 北과 거래 中기업 정조준>

조선일보 <산별노조 20년 장벽 무너졌다>

중앙일보 <기업노조, 산별노조 탈퇴 길 열렸다>

한겨레 <임동원·백낙청 “야당, 대북강경책 방관·합리화”>

한국일보 <“큰 어른 없나요” 목마른 시대>

노조 파괴 공작 확대 및 산별노조 단결권 약화 우려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독자적 노사 교섭 권한’이 없는 산별노조의 지부·지회도 어느 정도 독립성만 인정되면 상급단체의 위임 없이도 자유롭게 조직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판결했다.

▲ 20일자 경향신문 1면

이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 간부 등이 “기업별노조로 전환한 발레오전장 노조의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발레오전장 노조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이다. 자동차부품 업체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는 2001년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됐고 2010년 경비업무 외주화 문제로 금속노조가 파업을 결정해 장기분규를 겪었다. 지회장 등 노조 간부들이 구속됐다 석방되는 사이 나머지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어 노조 형태를 산별노조의 지회에서 기업별노조로 전환한 바 있다.

산별노조는 노동자들이 개별 사업장을 넘어 초기업적 연대를 꾀함으로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강화하는 조직형태다. 사용자 입장에서 기업별노조에 비해 통제하기 어려운 형태다. 실제로 발레오만도를 포함한 일부 기업은 복수노조 허용 조항을 이용해 기업별 노조를 만들고 ‘눈엣가시’인 노조에 파괴공작을 시도한 바 있다. 한국일보는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거의 100% 산별노조로 이루어져 있다”며 “기업노조는 기업이 노조를 쥐락펴락하며 개입할 여지가 큰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노조 단결권 침해를 문제의 핵심으로 봤다. 경향은 “제 지부·지회 조합원들만 매수하거나 회유·협박을 통해 과반을 확보하면 부담스러운 산별노조를 통제가 쉬운 기업별노조로 만들 수 있다”며 “한마디로 쉬운 ‘노조파괴’의 길이 열리는 것”이라 비판했다. 한겨레도 “회사가 상대하기 껄끄러운 노조를 압박 또는 회유해 산별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전환을 부추길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 20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산별노조의 특수성에 대해 “노조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이런 특수성을 지니는 조직을 단순히 민법상의 단체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노동법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내줄 뿐”이라 비판했다.

이들 신문은 역사적으로 보나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보나 산별노조는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직형태라고 전제했다. 한겨레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가 산별노조의 틀을 유지해온 배경엔 노조와 회사의 유착 가능성을 뿌리뽑고 산업별 근로조건의 균등화를 이루자는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며 산별노조를 명시한 노조법을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선진국의 압도적으로 높은 산별노조 비율에 대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적합하다는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산별노조=정치투쟁’ 보수언론, 노조단결권은 안 보나

반면 보수언론의 주요 기사 제목은 이와 매우 상이하다. 조선일보는 “정치투쟁 염증난 노조들, 산별노조 탈퇴 잇따를 듯”이란 분석기사를 썼고 중앙일보는 “기업노조, 산별노조 탈퇴 길 열렸다”를, 동아일보는 “‘산별노조 탈퇴’ 족쇄 풀려... 강성 노동운동에 타격 예상”이란 제목으로 1면 보도했다. 노동 기본권인 단결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산별노조로 가능한 조직력있는 노동운동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데 가깝다.

▲ 20일자 동아일보 사설

이들은 ‘산별노조=정치투쟁’이란 프레임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조합원 보호 못 하면 민노총 탈퇴해도 된다’ 大法 판결은 상식‘이란 사설에서 “우리 노동운동의 병폐는 노조 전임자들과 상급 노조가 다수 조합원 이익을 보호하기보다는 강경 투쟁을 선도하면서 자기들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몰두한다는 점”이라며 “상급 노조의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낀 단위 노조들이 있다면 조합원 이익을 최우선하는 노조로 바꿀 권리를 더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산별노조 체제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산별노조가 노사관계 불안을 가중시키고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 결국 조합원이 피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산별노조의 불합리를 개별 기업 사정을 반영할 수 있는 쪽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기업별 노조에 힘을 싣는 분석을 보였다.

보수언론은 판결로 인해 적지 않은 지회, 지부가 산별노조를 떠날 것이라 전망했다. 동아일보는 “산별노조의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탈퇴하지 못하고 있던 지부, 지회의 탈퇴 결의가 잇따를 것이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정홍섭 발레오전장(기업노조) 노조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해 “(기업노조를 설립한 것은) 공장을 살리겠다는 양심에 따른 행동이었는데, 금속노조는 우리의 새 노조를 어용 노조라면서 갖은 협박과 욕설을 가했다”는 발언을 강조해보였다. 조선은 “산별노조 규약 대부분이 한번 가입하면 탈퇴하기 매우 까다롭게 돼 있어 '노조판 노예계약'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이번 판결은 외형상 단결권의 주체인 노동자의 자율성을 존중한 듯 보인다”면서 “하지만 결국 산별노조의 조직기반을 흔들어 노조 단결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권 테러방지법 통과 총력전… 보수언론 가세하는 모양새

▲ 20일자 동아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가진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테러, 사이버 공격, 생물무기 같은 새로운 위협들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발생할 수가 있고 한 번 발생하면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병기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은 이날 국회를 방문해 야당에게 테러방지법 통과를 촉구하는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다.

이와 같은 정부·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언론은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를 위해 당·정·청이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당·청이 불안한 한반도 정세 국면을 활용해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테러방지법 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총공세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은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가 지연되는 데 대해 ‘국민 목숨을 두고 정쟁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테러방지법 통과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정부여당의 설득작업을 두고 ‘국민목숨놓고 정쟁하는 국회’라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1면을 통해 ‘북 테러위협에도… 여야 ‘총선 정쟁’만’ 기사를 보도했다.

▲ 20일자 국민일보 2면

특히 국민일보는 북한의 테러 위협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민일보는 2면에 ‘북, 3~4월 대규모 사이버테러 가능성’ 제목의 기사를 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대남 테러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주요인사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북한이 오는 3∼4월엔 대규모 사이버 테러를 감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고 밝혔다.

자동차 생산 공정을 넘어 철강 제조업에까지 사내하청 정규직 인정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2민사부는 “사내하청 노동자 161명은 각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제철의 사업장에서 현대제철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구 파견법에 따라 근무기간 2년을 초과한 109명은 현대제철 정규직으로 간주했고 현행 파견법 적용을 받는 나머지 52명에겐 회사에게 정규직 전환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 20일자 한국일보 8면

이번 판결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로, 한국일보는 “원청의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지 않더라도 원청 지휘를 받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을 파견근로로 간주하는 전향적인 판단을 내린 점”이라 지적했다. 재판부가 하청의 비정규직이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았는지 여부를 중시한 데 따라, 원청에는 없는 ‘크레인 운전’에 대해서도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견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원청으로부터 무전 등으로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받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향신문은 “한국지엠·쌍용차 등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수차례 있었지만 철강업계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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