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에 있는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 두 곳에서 노동자 4명이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시력이 손상됐고 그중 3명은 실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지난 4일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제조업체에 불법으로 파견된 20대 청년 노동자로, 2명은 일한 지 4개월 만에, 1명은 1주일 만에 중독증상이 발병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사건을 지원하는 ‘노동건강연대’는 “불법파견의 무법지대에서 일어난 징후적 사건”이라며 정부와 원청 대기업에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노동건강연대는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 메탄올 중독 사건의 함의와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는 긴급토론회 ‘청년 노동자들의 시각 손상 사건이 의미하는 것’을 열고 대책을 모색했다.

“노동자 안전·건강 생각한다면 제조업 파견 노동 금지돼야 한다”

메탄올은 각별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관리대상유해화학물질’로서 이용 시 환기장치 설치와 보호구 착용, 안전교육 등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잘 알려진 독성물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감독 결과 두 업체 모두 안전관리가 전무했고 피해자들은 고농도의 메탄올 증기를 그대로 흡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제에 나선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검사 결과 피해노동자들은 ‘메탄올에 절어있던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다”며 “한 업체의 경우 메틸알코올 농도가 기준치의 10배를 넘었고 피해자의 소변 검사에서도 매우 높은 농도의 메탄올이 검출됐다”고 지적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들을 무방비상태에 빠지게 한 원인으로 △사업주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 △에탄올 등 대체물질 간과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허술한 인력 관리 △원청의 다단계 하도급 생산 방관 등을 지적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강조된 것은 불법파견 노동자의 취약한 입지와 원청인 삼성전자의 책임이었다.

▲ 노동건강연대와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 메탄올 중독 사건의 함의와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는 긴급토론회 ‘청년 노동자들의 시각 손상 사건이 의미하는 것’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 공동대표는 “(하청업체) 사장은 파견노동자의 이름도 모르고 오늘 누가 왔는지 파악도 못 한다. 파견업체에 인건비만 지급되지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파견노동자는 공장에서 만드는 물질이 무엇이고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산에 투입돼 위험관리능력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메탄올을 쓰지 않는 ‘메탄올 프리 사업장’ 정책을 가진 원청이 있었는데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았다”며 발암물질, 환경파괴물질 등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도록 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청이 위험을 고스란히 하청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공동대표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의 직업 관련 사고 비율은 상용직의 4배에 가깝다. 파견노동자들은 파견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 단기간 고용돼 사업장에 익숙해지거나 숙련될 기회를 가지지 못해 사고가 더 빈번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들고 업무의 성격과 특성에 대한 고려없이 일자리에 그대로 “던져지게” 된다. 불안정 노동과 관리의 사각지대가 곧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귀결되는 구조다.

제조업은 이 위협이 커지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제조업 특성상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떨어진다. 이 공동대표는 “파견 노동 자체가 노동자 안건과 건강의 측면에서는 굉장히 위험하다. 제조업엔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고 아주 극소수 전문직만 예외로 허용해야 한다”면서 “정부처럼, 파견노동을 확대하면 이와 같은 사태가 얼마나 커질지 예측할 수 없다. 절대로 허용돼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파견노동자 97.5%가 금지된 제조업에 근무… “치외법권의 파견노예”

음성화돼 있던 파견노동은 1998년 파견법이 통과되며 양성화됐다. 입법 취지는 불법 인력시장을 합법화해 제도적으로 보완해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파견노동의 확대로 나타났다. 1998년 당시 789개였던 파견업체는 2014년 2468개로 늘었고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사업체는 4302개에서 1만5009개로, 파견노동자 수는 4만1545명에서 13만2148명으로 약 3배씩 각각 늘었다.

안산과 인천 지역 공단에서 파견노동 실태를 조사한 바 있는 정현철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금속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과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사업부장은 파견노동자의 노동권 사각지대와 파견 시장의 현황을 발표했다.

정 부지회장은 불법 파견 노동자를 ‘치외법권에 있는 파견노예’라 불렀다. 그는 “파견 자체가 불법이며 그 뒤 행위들은 더 무법천지다. 계약서는 당연히 안 쓰고 주휴수당 안 주고 12시간 초과노동 안 하면 취직이 안된다”며 “파견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은 후 가위바위보로 해고될 사람을 가려낸 사례는 유명하다”고 지적했다.

▲ 노동건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의 일부. 사진=노동건강연대 제공

정 부지회장은 “여기에 계신 분 내일이라도 공단 지역에 와서 일자리 찾으러 왔다고 하면 당장 취직할 수 있다”며 안산 지역 공단 내 파견 근로가 만연해 있음을 강조했다. 안산시·시흥시의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안산·시흥의 파견업체는 총 499개가 있으며 경기도 전체 2206개 중 22.6%를 차지한다.

그는 “‘이인솔루션’이라는 파견업체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문에 점이 하나 더 찍히며 ‘삼인솔루션’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더라”면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1년 이내에 업체를 바꾸는 것이다. 요즘엔 문 앞에 에이포만 붙여놓고 장사를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지난해 10월6일 인천 지역 내 무허가 파견업체 및 불법파견 노동자를 쓰는 업체를 고소·고발했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파견 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근거를 대라”고 대응했고 이들은 근거를 만들고자 지역 내 파견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불법 파견의 종류는 크게 3가지가 있다.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고 정직원의 출산·질병 등 일시적·간헐적인 필요가 있을 때만 3개월 또는 6개월까지 파견을 허용한다. 파견 업종 위반, 파견 사유 위반, 파견 기간 위반이 불법 파견의 세 종류다. 인천본부에 따르면 “불법 파견은 대놓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안석 조직부장은 “파견노동자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97.5%에 달했다”면서 “6개월 초과 근무자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는 25%에 불과했다”며 파견 업종 및 파견 기간 위반을 지적했다. 파견노동을 쓰는 업체의 파견노동자 수를 분석한 결과 30~150명 수준이 나온 것으로 볼 때 장 조직부장은 “일시적, 간헐적 필요 때문에 고용된 수준이 아니”라며 파견 사유 위반을 지적했다.

쉬지 않고 일해 월 200만 원 벌어도 파견업체에 47만 원 가로채여

파견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확산하는 이유는 파견업체와 사용업체 양자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장 조직부장은 특히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실태를 고발했다.

▲ 노동건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의 일부. 사진=노동건강연대 제공

파견업체는 한 달 200만 원을 버는 파견노동자로부터 16~24만(8~12%) 원 선의 수수료를 받는다. 4대 보험료를 악용하여 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채 사용업체에 4대 보험료를 청구해 중간에서 약 15만 원을 가로채기도 한다. 여기에 시급 차액을 이용해 사용업체에서 받은 시급에서 250원을 뺀 금액을 파견노동자에게 주면 한 달에 약 8만 원 정도를 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견노동자에게 지급돼야 할 연차수당과 퇴직금을 가로채는 사례도 있다.

장안석 조직부장은 “파견업체는 이 돈으로 사용업체와 노동부에 로비를 하기도 한다”면서 “파견법 위반에 걸렸을 경우 뇌물을 받은 퇴직 공무원이 뒤를 봐주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참는 게 메리트다. 나를 내보내고 다른 사람 구하면 그만이니까”

안산 반월시화공단의 제약회사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를 당해 5개월여간 부당해고 인정을 위해 싸웠던 이영숙씨는 이 사태에 대해 “(파견노동자 중) 누가 문제제기를 할까. 나 같아도 안 할 것”이라며 “파견노동자에겐 참는 게 메리트”라고 말했다. 파견노동자 대부분은 취업 취약계층으로 ‘다른 데 소개 안 해주면 어떡하나. 여기에 발 못 디디면 어떡하나’를 고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다른 사람이 150개를 생산하고 내가 200개를 생산해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를 내보내고 다른 사람 찾아오면 그만인 일”이라며 “그래서 이 자리를 나오는 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자리가 있는 데 일 할 사람이 없어서 파견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며 파견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씨는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파견노동자를) 막 대하고 무시할 수 있는 건가”라 반문했다.

이씨는 점점 많은 20대 청년 노동자들이 전자부품 제조업 분야로 불법 파견되는 현실에 대해서 “젊은 친구들은 노동이나 노동법에 대한 개념이 없어 더 위험하다. 부당함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12시간 일하라 하면 당연히 한다”면서 “쉬지 못하고 현미경으로 계속 관찰하는 작업이 있는데 눈이 너무 아픈데도 CCTV로 감시받으니 눈을 떼고 쉴 수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최종 제품으로 가장 많은 이득 취하는 원청, 비윤리적 생산에 책임져야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5일 성명서를 통해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침해하면서 공급된 부품으로 만든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비윤리적 노동의 생산물”이라며 “삼성전자는 하청업체의 노동조건과 노동자 권리 침해 여부를 확인해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제조 공정들이 차례로 외주화되며 원청, 1차 하청, 2차 하청, 3차 하청 등으로 다단계 구조가 형성된 것이 지금의 제조산업의 모습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이 구조 속에서 원청인 삼성전자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동현 희망을 만드는 법 공익인권변호사는 “원청의 법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국제 기준은 없지만, 원청의 책임을 확장시키려는 논의는 발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UN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은 “자신의 사업활동 제품 그리고 서비스와 직접 연결된 부정적 인권 영향을 방지하고 완화하기를 추구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UN 글로벌 콤팩트는 “기업은 인권 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지속가능경영 가이드라인 ‘SA8000’은 “조직은 협력회사, 도급자, 민간 직업소개업체와 하도급자가 SA8000 표준을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가장 진일보한 책임성을 명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2015년에 규정한 ‘Business Conduct Guidelines’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로 제시했다. 36조에 따르면 삼성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물질을 감시해야 하며 그 범위는 전체 공급망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협력사 행동 규범으로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병원균 바이러스 등 생물학적 인자 및 고온, 방사선 등 물리적 인자에 노출되는 것을 파악하고 평가하며 통제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삼성 측에 입장을 질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삼성전자에 SA8000 인증 및 UN 글로벌 콤팩트 가입요청도 가능할 것이라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원청은 최종 만들어진 제품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취하기 때문에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대해) 법적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게 하는 논의는 최근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건강연대는 파견알바, 전자제품 제조 하청 노동자의 제보 및 피해 사례 제보를 유선전화(02-469-3976)를 통해 받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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