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모든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올해부터 성남시 청년들에게 연 5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최근 다음 창업자 이재웅씨가 기본소득을 주장했고, 녹색당이 기본소득을 4·13총선 주요 공약으로 내걸면서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소득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기본소득 주장이 활발하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천연자원 수출한 돈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인큐베이터인 Y콤비네이터가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위스는 오는 6월 기본소득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핀란드는 예비 연구에 착수했다. 네덜란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논의 중이다. 

기본소득은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최소소득 보장을 언급한 이래로 1954년 조지콜의 ‘사회주의 사상사’, 1986년 벨기에에서 출범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가 2004년 ‘기본소득지구네크워크’로 확대됐다. 한국에는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발족되면서 논의가 확대됐다.

1. 일을 그만두고 돈만 받아 사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처음 기본소득에 대해 들으면 이런 걱정부터 앞선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일할 권리와 함께 게으를 권리를 인정하고, 노동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노동만 가치 있다는 통념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기본소득 논의가 가능하다. 
▲ 사진=pixabay

지난 2008~200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한 마을주민 930명에게 월 100나미비아달러(약 1만5000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1년 만에 실업률이 15%p 떨어졌다. 열악한 일자리가 노동의욕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열악한 일자리를 보상하는 성격이 있다.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일자리에 노동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다. 

2. 노동하지 않는 자가 노동하는 자를 착취하는 것 아닌가?

‘노동하는 삶이 더 가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질문이다. 노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사람과 노동선호자 둘 중에 국가가 특정한 관점을 더 지지하거나 차별해선 안 된다는 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모든 시민은 각자의 몫이 있고 이를 국가에서 받는 것이다.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노동을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불로소득을 통해 ‘공정하지 않은’ 소득을 얻는 자도 있지만 원치 않게 실업상태에 머물러야만 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지만 일을 해 일정소득이 발생하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한다. 고용불안과 저소득 노동을 정서적으로 견뎌야하는 문제와 더불어 제도적으로도 한국은 저소득층의 노동유인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규직은 포화상태이며 비정규직은 임금이 낮은 한국 현실에서는 양질의 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설립자 판 파레이스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까지를 지대(토지 임대료·불로소득 중 하나)의 일종(고용지대)으로 보고 있다.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3. 개인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는?

시장경제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개인의 노력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늘고 있다지만 취집(취업+시집)이라는 말이 나온 것 역시 2000년대다. 산업구조가 변했지만 신규 일자리인 서비스 산업 저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의 독립성의 불완전한 상황에서 성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2015년 맞벌이 부부의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여성(3시간14분)이 남성(40분)보다 5배가량 길다. 

여성은 고용노동과 무급가사노동의 이중부담을 떠안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는 또 다른 여성(가족 등)이 무급가사노동, 돌봄노동을 대신하거나 소득수준이 낮은 여성이 시간제 노동자로 고용되면서 가능해졌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기본소득 논의가 필요하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가 한꺼번에 진행될 수 있다. 노동계에서 저성장과 취업난에 대한 대책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시간과 함께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찬성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사노동과 같이 소득으로 환산되지 않았던 노동과 전일제 노동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노동을 보장하는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가사노동을 분담할 현실적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기본소득을 통해 줄일 수 있는 노동시간은 저성장 시대의 일자리 대책이 될 수 있다.   

4. 재원마련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미국 알래스카 주의 경우 석유 등 공유자원을 수출해 얻은 재원을 통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수출상황에 따라 기본소득 지급액이 1인당 연 300~2072달러로 유동적이다. 알래스카 의 경우는 특수한 사례에 해당하는 건 맞다. 그러나 세금을 공유자원, 공공재로 이해하면 알래스카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청년배당에 대해 “예산 낭비 안 해서 세금관리 철저히 하면 재정여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성남시가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성남시는 토목건설 예산을 줄여 전임시장 시절의 빚도 갚고, 실제로 올해부터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12만5000원씩 지급하고 있다. 
▲ 사진=pixabay

녹색당 역시 낭비예산을 줄이고 불로소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기존에 있던 교통·에너지·환경세와 부가가치세를 혼합해 생태세로 전환하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토지세로 전환해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빈곤층에게 지급되던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등 기존 사회복지예산 중 일부가 중복되므로 이 역시 재원에 포함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소득 역시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있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기계 노동, 인공지능 노동이 번 소득의 일부가 사회 공동체에 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동에 세금을 부여할 수 없다는 새로운 모델을 상상해야 하며,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행복하다는 생각에서도 작별해야 한다고 했다. 

5.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면 되지 않나?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에서도 등장하는 질문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은 무상급식 시행부터 지속됐다. 복지를 권리로 볼 것인지 권력자가 남는 자원을 시혜적으로 부여하는 것쯤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다. 국내 보수언론은 기본소득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부정적인 관점에 서있다.

가난한 자들에게만 소득을 보장할 경우 기술적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청년배당에 대해 조선일보 등은 “소득과 취업여부를 따지지 않았다”며 비판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부자를 가려낼 것인지와 서류와 실제가 다를 경우 단속인력 또한 비용이다. 기본소득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활동이 사회에 이롭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단속할 필요가 없다.

6. 보수진영에서도 기본소득을 찬성하던데

1960년대 미국 닉슨 대통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음의 소득세’를 도입하려고 했다. 음의 소득세란 모든 계층에 동일한 세율(부자일수록 많은 금액)로 재원을 마련해 저소득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로 기본소득과 비슷하다. 1970년대 캐나다 정부가 실행한 음의 소득세 실험에서 노동시간은 평균 7~9%가량 줄었다. 대부분 여성이나 학생이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사회 전체의 부 가운데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비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경기 침체의 원인을 ‘다수 국민들이 쓸 돈이 없어서’라고 볼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은 적절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다른 이유에서 기본소득을 찬성한다. 독일 생활용품업체 ‘DM’ 창업자 괴츠 베르너 회장은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대신 기업이 부담할 사회적 비용을 덜어주자고 주장했다. 기업주들은 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할 경우 노동자들을 더 싼값에 고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본소득을 찬성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돈만 맞춰주면 된다는 발상이다.  

7. 기본소득이 복지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기본소득은 필연적으로 복지 축소를 가져온다. 기존에 공적부조 등 중복되는 복지예산을 줄여 기본소득에 포함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 핀란드에서 기본소득(다른 명칭은 ‘시민임금’, ‘시민소득’)은 녹색당, 공산당 등이 30여년전부터 제시했지만 현재는 중도우파 정부가 예비실험 중이다. 핵심은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금액은 월 800유로(약 103만원)으로 다수 복지급여와 최저임금 폐지까지 고려하고 있다. 

복지의 축소에 대한 가치판단 역시 각 나라에 따라 다르다. 북유럽과 같이 복지국가를 경험한 경우와 아직 복지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채 개별복지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기득권층과 다수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는 한국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핀란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8.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은? 

한국사회는 기본소득을 좌파들의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기본소득은 좌우 모두에서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복지국가의 한계를 대체한다고 하지만 기본소득은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 말고는 시장논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한다. 한국 현실에서 기본소득의 정치적 대가로 철도 등 공공적 성격의 자원을 민영화하도록 요구하거나 기존 복지제의 축소 압력을 받을 경우 다수 서민의 삶이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재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예외적인 사례지만 알래스카 주의 경우 유가가 하락할 경우 지급액은 줄어든다.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핀란드, 스위스 등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그것보다 2배정도 많지만 인구는 1000만도 안 된다. 

우파진영과 달리 좌파진영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특징은 소득보장 수준이 ‘충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노동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본을 상대로 노동 측의 협상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경우 재원 확보의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로 인해 보장되는 금액도 월 40만원 수준이다. 물론 이 역시 실현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기본소득의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면 기존 복지제도의 보조적 성격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기본소득의 장점인 ‘간결성’은 장점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9. 기본소득은 진정 가난한 자들의 편인가?

선진국의 복지는 국제적 분업을 통해 얻은 이윤을 나누는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3D업종에는 제3세계에서 온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폭발적인 성장은 환경 또는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에 가깝다. 친환경 자원의 수출 혹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 

국제분업이 필연적이라면 이주노동자를 착취해 얻은 이윤을 선진국 국민에 한해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남는다. 어쩌면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일 수도 있다. 생산수단을 가진자(자본가)와 그렇지 못한 자(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지적없이 이미 창출된 부에 대해서만 재분배하는 문제 역시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내놔야 할 답변이다. 


※참고자료
녹색당 ‘2016총선정책공약집’
바티스트 밀롱도 ‘조건없이 기본소득’
조현진 ‘호혜성에 근거한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론과 한국 사회에서의 그 함축’
박이은실 ‘페미니스트 기본소득 논의의 지평확장을 위하여’
윤현식 ‘사회주의 강령과 기본소득론의 충돌’
한겨레21 제10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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