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의 운명이 설 연휴와 함께 끝났다. 지난 10일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며 내놓은 명분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1월6일)과 장거리로켓 발사(2월7일)에 대한 응징이다. 지난달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실험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핵실험은 수소탄 실험이 아니며 이를 시도했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평을 내놨다. 국방부는 3차 핵실험만 못하다는데, 청와대는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를 언급했다.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손해는 없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핵실험 이후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43%로 핵실험 이전보다 3%p 상승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북한 궤멸론’, ‘북한 와해론’ 등을 언급한 것을 보면 남북갈등 상황에서 대북 유화책은 ‘인기 없는’ 발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갈등의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은 4·13총선, 북한은 5월 제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각 집권세력은 강경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 사진=pixabay

2013년 말부터 예견된 4차 핵실험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로켓발사장 증·개축 공사를 2013년 말 시작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준비했다고 추정할 근거다.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같은해 10월9일 1차 핵실험, 2009년 4월 장거리로켓 발사는 같은해 5월 2차핵실험, 2012년 4월과 12월 로켓발사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이번 4차 핵실험과 로켓발사 역시 한달 차이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로켓발사장 공사를 포착하고 북한의 핵실험을 막기 위해 노력했을까?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위기 시 대북강경책을 사용하며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북한의 로켓발사장 증개축 공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첫 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정부는 위기국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9일 뒤인 4월25일 간첩으로 몰렸던 유우성씨가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5월12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다.” 당시 언론도 정부 당국자가 공식석상 북한에 대해 “나라도 아니”라며 이례적으로 강경발언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소리다. 

지난해 8·25합의, 반전의 기회

남북관계의 위기, 동시에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 역시 많았다. 북한의 로켓발사장 공사는 지난해 7월말 완료됐다. 당시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이 발사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8월 초 군사분계선에서 목함지뢰 사건 이후 남북한은 8·25합의를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지난해 9월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고, 같은달 시진핑 중국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며 대화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발표한 대북 공동성명을 보면 두 정상은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에 열려있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성명에 대해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자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거절의 뜻을 밝혔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중국과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관계가 크게 진전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평화협정은 거절하면서 비핵화를 먼저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을 대화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미국은 중국견제를 위해서는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 뿐 아니라 핵을 사용할 생각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싸드’의 작가 김진명은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반도 전쟁시 군사비 1조 달러, 미군 희생 15만 명을 예상하는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핵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봤다. 전방의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이동하는 건 유사시 미군이 평택항으로 빠져나간 뒤 북한을 핵으로 공격하겠다는 게 그가 본 미군의 전략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MB)발사 실험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9월 북한이 로켓 발사를 유보하며 미국과 대화를 요구했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북한의 요구가 거절당하자 강경책으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한미일 군사협력을 위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요구·동의했으며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추진하려는 것을 보면 미국이 북한과 진전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기회를 날릴 수밖에 없는 이유
흡수통일론에 기반한 대북강경책  

미국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10월7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면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를 통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이 박근혜 정부에 유효하게 먹혀든 적은 없다. 

박근혜 정부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은 흡수통일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전쟁도 불사할 것 같은 강경발언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일단 ‘독일식 통일모델’로 포장돼 있다. 독일과 달리 남북한은 전쟁을 경험했고, 통일당시 독일의 경제력 차이(약 4배)와 비교할 수 없는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있지만 이를 외면한 채 북한 붕괴론을 언급해왔다.   
▲ 2015년 10월21일 조선일보 사설

한 예로 조선일보는 지난해 7월8일 “북한 고위층 탈북 최고의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를 통해 “북한주민들이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대한민국의 정부가 한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역시 북한 고위층 탈북자가 2013년 8명에서 2014년 18명, 2015년 10월까지 20명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사설에 인용하며 북한 붕괴론을 띄웠다. 

상대를 향해 ‘곧 망할 것 같다’ 혹은 ‘망해야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대화가 잘 될 리는 없다. 지난해 8·25합의에 따라 성사된 지난해 12월 11~12일 남북차관급 회담은 별 성과 없이 결렬됐다. 그리고 북한은 지난달 6일 제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자 사드배치 지역 후보지가 거론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한겨울을 지나고 있다. 

한반도에 봄이 올까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2014년 5월12일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말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에 대해 당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북한 대변인 입에서나 나올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이런 무책임한 얘기는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속마음은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볼 수 없다’에 가깝다. 최근 하 의원의 발언을 살펴보자. 지난 12일 하 의원은 북한 핵실험과 개성공단 철수 등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김정은 제거”라고 말했다. 국내 집권층에게 북한은 적대적 상대로 존재해야 할 대상이다. 
▲ 녹색당은 논평을 통해 새누리당과 조선노동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여권연대'라고 비판했다.

당분간 남북의 적대적 관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3월7일 한미 양국은 연합군사훈련에 들어간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가동하며 물러났던 2군단 병력을 전진 배치해 충돌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3월31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비판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북풍이 반드시 여당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꽤 있지만 적어도 여당에게 불리하다고 보긴 어렵다. 수차례 북한과 관계가 악화될 조짐이 보였지만 손을 쓰지 않던 정부는 관성대로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북한도 5월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강경파가 힘을 얻을 것이다.  봄이 와도 한반도는 따뜻해지지 않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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