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종편이 시사프로그램 위주로 편성을 채워가며 보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그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는 데 반해 공영방송은 밋밋한 보도, 친정부 성향의 뉴스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은 식상할 정도로 쏟아졌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제2기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방송뉴스이용점유율에서 KBS 뉴스 이용점유율이 2012년 55.9%에서 2015년 29.9%로 반토막이 났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는 수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은 기울어진 언론 지형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KBS ‘추적60분’, MBC ‘PD수첩’은 PD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줬고, 공영방송 탐사보도팀들은 기계적 균형과 받아쓰기를 거부하고 거듭되는 검증을 통해 진실을 구현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시절은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영광의 시대’인 듯하다.

KBS ‘뉴스9’이 지난 12일 톱뉴스로 보도했던 <“개성공단 현금 대량살상무기에 사용”>은 KBS 뉴스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KBS 메인뉴스 ‘뉴스9’ 12일자 보도 톱뉴스.

이날 KBS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 현금이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된 근거 자료를 우리 정부가 가지고 있다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말했다”며 “홍 장관은 북한은 개성공단 자산의 동결조치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홍 장관이 지난 10일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현금 6160억 원이 유입됐다.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근거가 없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그가 12일 다시 정부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홍 장관은 이날 “(개성공단) 현금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된다는 우려는 여러 측에서 있었고, 정부는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장관은 또 “공개할 수 있는 자료였다면 벌써 공개했을 것”이라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나중에 검토하고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KBS 리포트는 홍 장관 발언을 인용하면서 “정부는 또 북한의 기습적인 추방과 불법적인 자산 동결 조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앞으로 있을 모든 사태는 전적으로 북한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면서 정부를 대변했고,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절대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설명한대로 공영방송 KBS가 해야 할 역할은 정부 주장을 있는 그대로 싣는 게 아닌, 정부 주장이 과연 타당하는 것인지 ‘검증’하는 데 있다.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 여론이 찬반으로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추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만이 수신료가 아깝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리포트 <“무기개발 돈줄 차단… ‘공단’ 중단 불가피”> 역시 “홍용표 장관은 이처럼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돈을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사용하는 걸 알게 된 상황에서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며 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KBS 간부들은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최 전 PD는 12일 자신의 SNS에서 “KBS는 개성공단 현금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인다는 홍 장관의 발언을 사실인양 보도하며 개성공단 중단을 합리화하고, 북의 화학 생물학 무기를 장황하게 소개한 뒤 김정은 집권 후 장성택 처형 등 이상 행태를 조명하고 심지어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에서 비아그라를 팔며 충성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했다”고 비판했다.

최 전 PD는 “이런 뉴스를 하느라 개성공단 기업들의 피해 호소 소식은 30분이 다 될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며 “야당 반응을 전하면서, 어제보다 더불어민주당의 반대 입장이 누그러졌다는 것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이 정도면 가히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정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보도가 제대로 돼야 수신료 인상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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