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지점 앞에 “고객님, 고장 좀 내주세요. 제발요.”라고 적힌 벽보가 붙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월별 수리 실적 60건을 채우지 못하면 경고장을 받는 데 대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의 비판 벽보였다. 삼성전자서비스 콜센터가 기사에게 ‘수리 콜’을 분배함에도 이 실적을 기사의 성과 지표로 이용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삼성전자 제품 수리 서비스를 도맡는 수리기사는 매일 20여 가지에 달하는 실적을 평가받는다. 속성만족도, 재수리율, 당일완결율, 무상자재단가 등 대부분 고객의 만족도와 수리비용의 합리화를 평가하는 지표들이다. 친절하고 정확한 서비스와 비용 절감에 노력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끔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정작 기사들은 “회사 이익만을 위한 평가”라는 입장이다. 실적 평가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제품을 완벽하게 수리하는 A/S 서비스의 취지와 반대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기사들은 일부 지표가 비용 절감에만 맞춰져 있어 저평가를 피하기 위한 수리 기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제대로 된 수리보다 비용 절감을 택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기사들의 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실적 압박이 더 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A/S, 고객 잘해줄수록 저성과자 취급?

“‘무상자재단가’는 보증기간 동안 무료로 수리했을 때 든 자재 비용이다. 누적될수록 좋지 않다. 저평가를 받고 집중 관리가 들어오면 기사는 값싼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령 40만 원짜리 메인보드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데 일부 부품만 교체하는 식을 택한다. 한 번 수리 받았던 자재를 다시 쓰기도 한다. 그럼 얼마 안 가 고장 날 수 있는데, 보증기간이 끝이 나면 고객은 수리비를 내야 한다.”

10년 차 수리기사인 박성주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문제적인 지표로 무상자재단가를 지적했다. 박 부지회장은 “무상자재값으로 하루 2만원을 넘기지 말라는 기준을 두는데 수리콜이 대여섯 개가 들어오면 값을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서 “금 간 TV 화면 교체에는 200~300만 원이 들고 컴퓨터 메인보드만 해도 40~50만 원 선”이라 말했다. 이 비용은 무상자재단가에 포함돼 실적에 반영된다.

▲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가 일부 직원들에게 배부한 업무실적개선요청서. 사진=금속노조 제공

지표 간 모순적인 관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품 교환·환불 횟수를 반영하는 ‘교환·환불율’, 유료 수리의 경우 제 값을 다 받았는지를 평가하는 ‘유상할인율’, 고객만족도(CMI 하위항목) 등이 무상자재단가 지표와 얽히고설킨다. 일부 제품보증서에 따르면 ‘핵심부품’이 고장나면 부품 교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수리기사의 교환·환불율 실적이 나빠진다. 교환이나 환불을 하지 않고 수리를 하면 무상자재단가 실적이 나빠진다. 고객에게 수리비를 청구하면 고객만족도를 조사하는 ‘해피콜’에 ‘비용 불만’이 접수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고객만족도 실적이 낮아진다.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에게 수리비를 할인해주면, 유료 수리 시 제 값의 수리비를 받았는지를 평가하는 ‘유상할인율’ 실적이 나빠진다.

박 지회장은 이를 두고 “풍선 왼쪽을 누르면 오른쪽이 커지고, 오른쪽을 누르면 왼쪽이 커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기사에겐 어떻게 수리를 하든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의미다.

정찬희 삼성전자서비스 영등포센터 분회장은 재수리 건수를 평가하는 ‘재수리율’도 기사에게 부당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3개월 이내에 동일한 고장 발생 시 삼성전자는 무상 재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경우 무상자재단가, 재수리율, 유상할인율 3가지 실적이 나빠지게 된다. 정 분회장은 “제품 자체에 하자가 있을 수 있고 특정 부분이 유난히 고장이 잘 나는 제품이 있는데 고장의 책임이 수리기사에게 모두 전가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특정 부분만 고장 잘 나는 제품이 있다. 어떤 프린터의 경우 롤러같은 급지시켜주는 부분이 고장이 굉장히 잘 난다. 처음엔 유상 수리로 돈을 받고 수리를 해줬다. 그런데 2~3개월 후에 부품에 문제가 생겨 다시 끼리끼릭 소리가 나 무료로 수리를 했다. 이 경우 돈을 받아야 하는데 무상으로 해준 상황이니 유상할인율이 나빠지고 무상자재단가, 재수리율 지수도 나빠진다. 이 지수를 낮추기 위해, 어쨌든 고객에게 수리비를 받으면 3가지 지수는 안 올라간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2월1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삼성자본은 즉각 저성과자 일본해고 도입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일부 지표, 수리기사 책임이 아님에도 저성과 실적으로 반영돼

‘미결일수’, ‘당일완결율’ 지표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평가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미결일수는 수리요청이 접수된 날 수리를 완결하지 못한 일수를 실적에 반영한 것이다. 반대로 당일완결율은 당일에 수리를 완료한 실적을 반영한 것이다.

박 부지회장은 “고객이 내일이나 모레 수리를 요청해도 수리기사의 미결일수로 반영된다”면서 “교환할 제품이 회사에 없어서 당일 서비스를 완료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당일완결율 실적평가로 반영된다”고 밝혔다. 미결일수를 낮추기 위해 예정시간보다 1~2시간 먼저 고객을 방문해 수리를 진행할 경우 ‘방문약속준수율’에 걸려 실적이 낮아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정 분회장은 “3일이 지나면 장기 미결이 되는데, 제 경우도 구정 전에 접수된 건 때문에 오늘 장기미결이 2건 있었다”며 “심각하게 관리하는 센터는 고객한테 전화를 해서 몇 일 후 예약접수한다는 녹취를 따서 팀장한테 전송을 해줘야 인정을 한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엔지니어 기술력 및 성의가 문제… 단가 절약도 필요”

복수의 수리기사에 따르면, 각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수리기사들에게 20여 개 평가 항목을 공통적으로 적용하면서 전년도 하위 4개 항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센터는 삼성전자서비스 주식회사로부터 제품수리 업무를 위탁받는 계약을 1년마다 갱신하며 각 평가 결과는 재계약의 조건이 된다.

박 부지회장은 “저조했던 하위 항목 개선 여부가 센터의 재계약 조건이 된다. 엔지니어 실적이 하청업체 재계약 조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 주식회사 중간관리자 인사고과에까지 반영되는 실정”이라며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하청업체(센터) 사장은 ‘결정권한이 없다’거나 ‘다른 센터들도 다 맞추고 있다’ ‘고객에게 친절하기만 하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귀선 삼성서비스 광안리센터 대표이사는 “원청이 업무계약을 할 때 ‘대략 얼마쯤 품질 수준을 맞추라’는 식으로 관리항목을 주지만 그 항목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인사조치와 기준을 정해는 지는 다 협력업체 재량”이라며 “(문제의 지표들은) 모두 달성 가능한 정도의 수준이다. 달성하지도 못한 수준 가지고 업무 계약을 하면 하청은 다 죽어라는 소리기 때문에 그런 것들 뻔히 알면서 계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상자재단가와 관련해서도 손 대표이사는 “자재단가를 낮출 수 있음에도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성의없이 수리하면 고객 부담으로 이어지고 또 자재단가로 이어진다”며 “자재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게 되면 고객의 피해도 있고 엔지니어 기술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된다”고 밝혔다.

일부 센터 저성과자 징계 압박… 불합리한 성과 압박이 소비자 권리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실적 평가가 기사의 기술력에 따른 게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무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 부지회장은 “‘비용이 비싸다’ ‘출장비 안내를 받지 못했다’ 등의 고객불만도 기사 실적에 반영되고 제품 자체의 하자도 기사의 책임으로 물린다”며 “기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저성과 실적으로 매겨지거나 실적끼리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다 만들어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항목 설정으로 인해 소비자 권리도 박탈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무상자재단가는 가능하면 부품을 쓰지 않고 수리를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실적이다. 자재가 필요해도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A급 제품이 아닌 R급 제품을 쓴다”며 “적절한 부품으로 수리를 받을 (고객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밝혔다. 박 분회장은 “고객에게 완벽한 수리를 해줘야 함에도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부분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 삼성영등포지피에이가 1월7일 직원들에게 공고한 업무전달 문건에 저성과에 따른 징계 기준 및 사유 변경 사항이 명시돼있다. 사진=금속노조 제공

이런 상황에서 서울 영등포, 동대문 등 일부 센터는 지난달 해고를 배제하지 않은 저성과자에 대한 징계 지침을 공고했다. 항목별 하위 10%에 포함되는 기사들은 경고가 누적될 시 정직 및 해고 징계 절차에 돌입할 수 있는 절차가 공식적으로 명시됐다. 정 분회장은 “어떻게 줄을 세우든 하위 10%는 만들어지기 마련”이라며 “삼성전자서비스가 수리 기사 인원을 줄이기 위해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성과자 일반해고를 가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분회장은 “실적 지표를 맞추느라 고객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아직 일반적이진 않다”면서도 “이번 해부터 저성과자 기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걸 보면 충분히 (확대)될 수 있다. 압박이 심해지면 회사에서 안 잘리기 위해 돈을 받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돈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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