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전략으로 또 다시 북한을 선택했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감행하자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고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초강경 대응카드로 위기를 더 부풀리는 분위기다.

2013년 4월 개성공단이 5개월 간 가동을 중단했을 당시 234개 입주기업들이 통일부에 신고한 피해 금액은 1조566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보다 실효성 있는 독자적인 제재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 지원이 이어지는 한 북한의 경제적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대북 제재가 실효성을 지니려면 중국이 동참해야 하는데,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중국이 민감해하는 사드 배치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중국의 동참 가능성이 더 희박해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0일 오후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결국 박근혜 정부가 효용성도 부족한 개성공단 중단을 국내정치용으로 써먹기 위해 강행했다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북한 위기를 키워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뜻이다.

정기섭 개성공단협의회 회장은 1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국내정치적인 요소가 이번 결정을 내리는데 상당 부분 작용했다”며 “국내에는 맹목적인 보수 쪽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표심을 생각해서 그런 비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갖고서 중단시켜도 되지 않나”라고 밝혔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한 것을 두고도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금 사드 도입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부지 선정과 기반시설 마련 등에 얼마의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될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곧 사드 요격체계를 배치할 수 있을 것처럼 요란을 떠는 것은 지금이 바로 선거 국면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 정부와 새누리당에 유리한 안보이슈를 선거 쟁점으로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여당은 기존에 사용하던 ‘발목잡는 야당’ 프레임을 ‘국가가 위기 상황인데도 발목 잡는 야당’ 프레임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정권 심판론’에 맞선 ‘야당 심판론’이다.

정부여당은 지난 10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을 2월 임시국회 내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테러방지법, 감청 지원 관련법 등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가 아직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지금의 안보 위기 상황을 심각히 인식해 모든 것을 떠나서 국가 안위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내일이라도 당장 본회의를 열어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긴급하게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11일 오후 경기 파주 통일대교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경했던 차량들이 입경하고 있다.ⓒ포커스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10년 넘게 야당이 지연시켜온 북한인권법도 반드시 통과를 시켜야 한다. 야당 내에서 아직도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화해와 협력 타령만을 늘어놓는 어설픈 평화론자들이나, 아마추어식 이상주의자들은 이제 생각을 확 바꿔주시고, 국가 안보와 북한 변화를 위한 법안통과에 적극 협조해주길 다시 한 번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선거 쟁점화를 위해 개성공단 중단 조치 같은 강경카드를 택한 이유는 이전과 달리 북한 문제에 대해 야당과 여당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한 9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일제히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비판했다. 여야는 설 연휴 중이던 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북한 규탄결의안을 채택했다.

급기야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경기도 파주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 국방을 튼튼히 유지하고 그 과정 속에 우리 경제가 보다 더 도약적으로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성주 더민주 대변인이 현장에서 ”궤멸이란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 흡수통일하자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는 ‘자멸’의 의미“라고 강조했지만, 파장은 컸다.

야당 대표마저 ‘북한 궤멸’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북한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북한 이슈를 여당에게 유리하게 가져갈 수 없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같은 야당이 동의하기 어려운 강경책을 던져야 정부여당이 선명성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박근혜 정부가 선거용으로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를 밀어붙일수록 야권이 결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경제활성화법 등에서 이견을 보이던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개성공단 중단과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일제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상황이 야권 결집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국정교과서 국면과 유사하다. 정부여당은 여론의 반대를 무릎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고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대응하면서 당내 내홍이 사라졌다. 야권의 결집을 무릎쓰고라도 ‘적’을 만들어내는 박근혜 대통령식 대결 정치가 다시 한 번 등장한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국내용 대결정치가 국제용 대결정치로 이어지면서 파장은 박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원내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 전략을 이유로 국민의 생계와 남북한의 운명을 떠넘기려는 것은 정말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