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4회로 구성됩니다. 5부 ‘How to read 뉴스 고급편’에서 소개할 5개의 글에서는 언론산업을 통해 뉴스를 읽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때론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언론과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뉴스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의 ‘진짜 주인’은 일상 상황에서는 모습을 감추다가도 비일상적인 순간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멀쩡히 올라갔던 기사가 삭제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기사를 수십 수백 개씩 쓰는 어뷰징 기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쓴 기사가 삭제되거나 수정되는 일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다. 자신이 취재를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 언론은 기사를 수정하라거나 내리라는 요구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누가 봐도 오보인 것이 명백한 경우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1월 19일 변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발언하며 ‘인민’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보도했다. 11월 20일 사설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변 위원장이 쓴 단어는 ‘인민’이 아니라 ‘빈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21일 지면에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2012년 5월 16일에도 단어를 잘못 알아듣는 오보를 저질렀다. 조선일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15일 스승의 날 서울 강남중학교를 방문해 “학교폭력이 이해가 안 간다. 전적으로 선생님 잘못”이라고 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성인들 잘못’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5월 17일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해당 기사들와 사설들은 삭제됐다. 이처럼 기사가 오보라는 점이 너무 명백한 경우 기사가 내려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아니라면 기사 삭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기사 삭제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기사 삭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사제목에, ‘삼성’은 돼도 ‘이건희’는 안 돼?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는 언론과 미디어에도 적용된다. 언론계에는 유독 삼성과 관련된 기사가 내려간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3일 SBS 8시뉴스는 ‘삼성, 치료 책임진다더니…결국 다른 병원에’라는 리포트를 통해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가 된 삼성 서울병원을 비판했다. 신동욱 앵커는 리포트에서 “‘끝까지 환자를 책임지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3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약속한 대목이다. 하지만 열흘 만에 이 약속은 번복됐다”며 “치료 중인 확진 환자 15명 가운데 12명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별도의 음압 병상이 없는 데다 방호복까지 입은 의료진 감염이 잇따르자 결국 백기를 들고 만 셈”이라고 비판했다.

▲ 2015년 7월 3일 SBS ‘8시뉴스’ 갈무리. 현재 해당 영상은 편집된 상태다.

하지만 8시뉴스를 놓친 시청자들은 이 앵커멘트를 볼 수 없었다. 신동욱 앵커의 멘트가 완전히 재편집됐기 때문이다. SBS는 앵커멘트를 재녹화한 뒤 SBS뉴스 홈페이지를 비롯해 포털뉴스에도 수정된 리포트를 다시 올린 것이다. 앵커멘트는 “삼성 서울병원이 치료 중인 메르스 환자 10여 명을 다른 병원으로 옮겼거나 옮기기로 했습니다. 시설 부족에 의료진 감염이 잇따르자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로 수정됐다.

보도국장의 지시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판하는 멘트가 삭제된 사실이 알려지자 SBS 안팎에서는 삼성 외압 논란이 일었다. 내부가 발칵 뒤집히면서 보도편성위원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최영범 보도본부장은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만약 (삼성 쪽) 전화를 받았으면 오히려 찜찜해서 고치지 못했을 것이고 항의나 부탁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삼성 측도 리포트 수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외압이 아니라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SBS 편성규약에는 “제작책임자는 제작종사자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회사의 방송강령과 방송 가이드라인, 그리고 공익에 위배되지 않을 경우 임의로 수정, 변경, 취소 지시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사측도 “재녹화는 매우 이례적인 게 맞다”고 인정했다. 외압이 없었는데도 편성규약 위반 논란까지 감수해가며 알아서 수정했다는 뜻이다.

SBS 기자협회는 성명을 통해 “(국장은) 방송된 앵커멘트를 보고 ‘과잉’이라고 판단해 스스로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외압이 없었으니, 떳떳하다는 것인가? 외압보다 심각한 내부 검열을 마주한 것 같다”고 밝혔다.

SBS 기자들이 내부검열까지 의심한 이유는 삼성이 회장 일가에 관련된 언론 보도에 매우 민감해한다는 점 때문이다. 기사 제목에 ‘이건희’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쓰면 수정을 요구받는다. 한 기자는 “삼성과 직접 관련된 기사는 아니었는데 제목에 ‘이건희’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어갔다고 삼성에서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삼성’이란 단어는 써도 되니 ‘이건희’만 빼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지난 2012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소송에서도 이건희 회장 쪽에 불리한 기사 제목이 수정되거나 기사 자체가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6월 27일 열린 재판에서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인은 “몰래 숨겨놓고 감추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논리는 시쳇말로 도둑놈의 논리다. 도둑놈 심보로 (차명재산을) 은닉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몇몇 언론은 ‘이건희 도둑놈 심보’를 기사 제목으로 달았다.

▲ 아시아경제는 ‘“도둑놈 심보”.. 과한 표현도 등장한 삼성家 소송(종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지만, 기사는 곧 삭제됐다.

그러나 해당 제목들은 사라졌다. 아시아경제의 기사 ‘“도둑놈 심보”…과한 표현도 등장한 삼성家 소송(종합)’은 사라졌다. 이데일리 기사 ‘“이건희, 도둑놈 심보” vs “이맹희도 알고 있었다”’는 ‘삼성家 상속소송 2차 변론기일..날선 공방 이어져’로 제목이 바뀌었다. 국민일보의 기사 부제목은 ‘이맹희측 “이건희, 도둑놈 심보”’에서 ‘맹희측 “이건희, 참 나쁜 심보”’로 바뀌었고, 지면에는 ‘맹희측 “돈 숨기면 자기 것 되나”’로 수정됐다.

해당 언론사들은 삼성과의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삼성은 언론에 전화를 건 사실을 인정했다.  김성홍 당시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은 “(도둑놈이라는) 발언은 법정에서 판사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제지를 했고 CJ 변호인측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철회한 내용”이라며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이데일리 출입 기자에게 전화해 선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일상적인 홍보 활동으로 이해해달라”는 말도 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묘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하나의 사례다. 앞서 SBS의 앵커멘트도 삼성서울병원의 책임을 물은 기사 자체는 삭제되지 않은 채 이재용 부회장에 관한 대목만 다른 멘트로 대체됐다.

대기업에 약한 언론, 외압인가 자기검열인가

삼성 일가의 소송 전에서 기사가 삭제된 사례는 또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1월 14일 항소심 결심재판에서 서면으로 최후진술을 했다. 30여개가 넘는 언론들이 최후진술 전문을 그대로 실었다. 하지만 14일, 15일 속보로 이 소식을 전한 기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뉴스1은 전문과 함께 관련 기자칼럼이 삭제됐고 해럴드경제, 세계닷컴 등의 가사도 사라졌다. 삼성은 기사 삭제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고, 해당 언론사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자기검열의 정황이 드러난 적도 있다. 뉴데일리 대표가 삼성 측 인사를 만난 뒤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 관련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관련 기사를 삭제한 사건이다. 당시 뉴데일리 박점규 대표이사는 2014년 2월 17일 삼성 측 김부경 전무, 박종문 차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차장이 뉴데일리에 ‘또하나의 약속’ 기사가 실린 것을 두고 “서운하다”고 말했고 박 대표는 경위를 알아본 뒤 기사를 삭제했다.

이러한 사실은 박 대표가 기사 삭제 후 김부경 전무에게 보낼 문자를 프레시안 기자 등에게 잘못 보내면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지난달 뉴데일리에 ‘또하나의 가족’기사가 떠 서운했다고 하기에 돌아오는 즉시 경위를 알아봤고, 제 책임 하에 바로 삭제조치 시켰습니다. 물론 칼럼니스트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쓴 것은 아니었고, 간부들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박 대표는 미디어오늘에 중복된 기사가 많아 삭제한 것일 뿐 외압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언론계에서는 지나친 자기검열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편집국장이 기업에게 기사 삭제 경위를 보고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 영화 또하나의약속은 상영당시 높은 예매율에도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외압 논란이 일었다. 2014년 2월 19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롯데시네마 앞에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계 종사자들은 꼭 삼성이 아니라도 이런 기사 삭제가 흔한 일이라고 전한다. 한 방송사 기자는 “모 항공사 관련된 단독보도였는데 항공사 측이 보도국장을 만나고 기사가 사라졌다”며 “지역 주재 기자가 대기업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을 현장까지 가서 심층 취재했는데, 기업에서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가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뒤로 기사가 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럴드경제는 지난 2014년 1월 17일 석간지면에 현대건설이 경인아라뱃길 주변에 아울렛 건물을 지으면서 시멘트가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오탁수를 불법적으로 흘려보냈다고 보도했다가 오후 3시 경 온라인에서 기사를 삭제했다. 취재 기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고, 데스크는 “공식 조사가 시작돼서 삭제했다” “팩트를 더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건설 측이 해당 부서에 적극적으로 해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외압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자존심 강한 언론이 유독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팩트가 틀렸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기사를 내린다. 외압이 없이 자기검열로 인한 기사 삭제라도 문제다. 직접적인 압력이 없는데도 기사를 삭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것도 외압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 헤럴드경제 2014년 1월 17일자 14면 사회면 머리기사

뉴스 소비자들, 언론의 ‘핑계’가 되어달라

심지어 요즘은 기사 삭제를 이용해 기업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소위 ‘사이비 언론’들도 있다. 포털 관계자들과 언론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그 수법은 다음과 같다. A라는 매체가 B라는 기업의 치부를 드러내는 단독기사를 쓴다. 그러면 다른 매체들은 기사를 받아쓰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다가 A 매체의 해당 기사가 사라지면, 그 때 미리 저장해두었던 A 매체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를 쏟아낸다. A 매체 기사가 사라졌다는 건 B기업의 압박 때문일 것이고, 그 대가로 광고를 거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B기업은 이제 A매체를 받아 쓴 다른 매체들과도 광고 거래를 해야 할 처지가 된다. 기사 삭제를 통해 돈을 뜯어내는 신종 수법이다.

미디어오늘 같은 매체비평지의 숙명은 이런 사라지는 기사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매체비평지들이 아무리 기사들을 찾아내고 또 찾아내고, 기사 삭제는 너무 빈번히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그들의 핑계거리가 되자”고 다짐하곤 한다. 기업이 언론에 기사 삭제를 요구하면 “미디어오늘에 걸리면 기사가 나가고, 더 일이 커진다”고 거절할 수 있는 핑계거리.

이는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를 제대로 읽을수록 언론이 발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스 소비자들이 언론의 핑계거리가 되어달라. 기사 삭제 요구에시달리는 언론들로 하여금 “이러면 독자들한테 욕먹는데”라는 핑계거리가 되어달라는 말이다.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3. How to read 뉴스, 초급편 : 텍스트 읽기

(9)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 의제설정과 프레임

(10) 뉴스 읽기의 기본 :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제조건을 보라

(11) 언론의 권력, 보도하지 않는 힘 : 언론이 숨기는 것

4. How to read 뉴스, 중급편 : 컨텍스트 읽기

(12) 행간 속에 숨겨진 의도 : 대선개입은 왜 대선불복에 먹혔을까

(13) 뉴스의 흥행법칙 : 편견에 기대고 편견을 강화하라

(14) 실전! 종북 빨갱이 언제 먹히고 언제 안 먹히나

5. How to read 뉴스, 고급편 : 언론산업 읽기

(15) 언론도 기업이다 : 지배구조를 보면 언론이 보인다

(16) 삼성일가와 손석희 뉴스,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가

(17) 기사인가 광고인가 : 돈 받고 쓴 기사 찾아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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