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현장을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 빌미가 돼 해고에 이른다면 어떨 것 같은가? 박성제 MBC 해직기자는 지난 2012년 인사위원회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 “지금 대전 MBC 사장인 이진숙 당시 인사위원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내가 후배들의 집회현장 근처에서 ‘멀뚱하게’ 서 있는 사진이었다. 당시 인사위원회는 내가 ‘지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박 기자는 기억했다.

당연히 항의했다. “당신네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이 사진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사진이냐? 내가 회사 기물을 파손하고 있나? 폭력을 행사하고 있나?” 하지만 인사위원회에서 돌아온 답은 “토론하지 말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박 기자는 “사실 그 사진을 보여줄 때부터 알았다”라며 “요새말로 하면 ‘답정너’”라고 말했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다.

박 기자의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백종문 현 MBC미래전략본부장이 박 기자와 최승호 PD를 두고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MBC는 “수개월이나 묵혀져 있다가 정치인의 선거출마에 맞춰 공개된 ‘기획이벤트’라는 의혹까지 있다”며 “여기다 특정 매체와 노조 정치꾼들이 각본처럼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판을 키워가는 모양새”라고 입장을 밝혔다.

▲ 박성제 기자(오른쪽)이 지난달 26일 열린 부당해고 규탄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박 기자는 이같은 MBC 입장을 두고 “지겹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MBC 파업 당시에도 회사가 들고 나왔던 논리라는 것이다. “회사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좌파 노조의 정치공작’으로 몰아갔다”며 “이번에도 할말이 없으니까 케케묵은 진영논리를 꺼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2012년 파업의 정당성을 두고 다툰 여섯 차례 소송에서 일관되게 노조 손을 들어줬다.

박 기자는 요즘 한때는 ‘동료’이자 ‘선배’였던 백종문 본부장에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 매일같이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내데스크에서 조차 최승호 PD와 박 기자의 면담 요청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목적성’을 가진 면담 신청이라는 이유다. 박 기자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MBC 노조 출범 초기에 일주일 넘게 단식 농성을 하던 이진숙 기자와 노조 부위원장까지 했던 백종문 본부장을 보면 참 서글플 뿐”라고 말했다.

그는 이진숙 사장, 백종문 본부장을 비롯한 당시 인사위원회에 참여했던 6명에 대한 법적· 사회적인 징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과정에 참여하고도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그는 “공영방송 내부에서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후배 언론인이나 노조를 탄압하는 사람들이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며 “인사위원 6명에 대한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등 민형사상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 지난 2012년 5월7일 열린 MBC 파업 100일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이어 박 기자는 나아가 이번 녹취록 사태가 최승호·박성제 두 사람의 해고가 잘못됐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해고는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의 일부분이고 MBC 노조파괴는 정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을 검토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국정조사, 청문회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녹취록이 추락한 MBC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김재철 사장은 3년 동안 법인카드로 호텔비를 지급하고 명품가방을 구입하는 등 6억9000만 원가량을 쓴 혐의로 노조에 고발당했다”며 “이런 MBC를 누가 옹호해줄 수 있겠나? 아무리 보수언론이라도 안 한다. 그러니까 찾아간 곳이 폴리뷰 같은 곳이었겠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해고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 MBC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 “돌아가고 싶다”가 아닌 “돌아가야 한다”라고 답했다. “단 몇 년 만에 국민들이 사랑해주던 시사 프로그램들이 완전히 망가졌다. 언론학자, 언론사 조사에서 MBC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순위 안에도 못 들어간다. 잃은 것들을 되살려 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징계 받은 언론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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