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중앙일보 ‘혁신보고서’를 입수했는지 물어보는 타사 기자들이 있다. 보고서가 나온 게 작년 10월인데 아직도 타사 기자들 중 읽어봤다는 이가 없다. 철저한 보완 덕분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2월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디지털기획실장으로 영입하고 최근 디지털 분야 대규모 채용에 나섰다. 많은 언론사에서 중앙일보의 시도가 디지털 혁신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아직 한국의 그 어떤 언론사도 디지털 혁신에 있어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뉴스룸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수익과 매체영향력을 높여야 하고, 젊은 독자와 가까워지면서도 충성 독자층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전략은 언론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래 다들 디지털 혁신으로 유명한 해외언론의 사례를 달달 외우곤 한다. 신간 <디지털 뉴스의 혁신>(루시 큉 지음, 한운희․나윤희 옮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우리가 흔히 인정하는 가디언․뉴욕타임스․버즈피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들의 사례에서 등장하는 ‘혁신’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이란 물리적 거리만큼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 가디언 모바일 화면.
예컨대 1821년 탄생한 전통의 가디언은 1994년 앨런 러스브리저라는 탁월한 인물이 없었다면 영국의 고집스런 진보언론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오늘날 가디언의 영국 내 독자 비율은 전체 독자의 3분의 1수준이다. 저자는 가디언이 콘텐츠를 공짜로 풀고 글로벌 진출에 나서고 대형 탐사 캠페인으로 인지도를 얻는 전략을 펼쳤다고 적었다. 가디언의 재정과 편집권 독립을 영원히 보장하는 비영리재단 스콧트러스트가 가디언미디어그룹의 대주주가 아니었다면 △기사 무료이용 △진지한 저널리즘 △개방성 △멤버십 이니셔티브 △민감한 조직 축소를 혁신의 주요 요소로 고안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주의 입만 바라보는 우리와 달리 가디언은 사주의 의견을 기다리지 않았다.

1851년 설립된 전통의 뉴욕타임스는 어떨까. ‘탁월한 글쓰기, 진지한 저널리즘, 저널리즘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상징하는 뉴욕타임스의 2015년 온라인광고수익은 전년대비 19.3%나 증가했다. 거창한 데이터저널리즘 덕분이었을까. 네이티브 광고 ‘페이드포스트’ 덕분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프로젝트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다만 남들보다 일찍 실패하고 수정하며 비교 우위를 점했다. 2014년 5월 그 유명한 혁신보고서에서는 혁신의 큰 위협이 뉴스룸의 문화라고 적었다. “뉴스룸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최악의 시나리오란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고, 변화를 방어적으로 희석하거나 막는 식으로 대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철옹성 같은 기자단․출입처․사스마리 제도가 있는 한국의 뉴스룸은 오히려 변화에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 뉴욕타임스 본사. ⓒ김병철 기자
▲ 버즈피드 본사. ⓒ김병철 기자
버즈피드는 전통적 언론사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기업에 가깝다. 창업자 조나 페레티의 화두는 ‘전염성 있는 미디어’였다. 전염성이란 속성은 사실 저널리즘과 직접 관련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선 높은 전염성과 좋은 저널리즘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트래픽을 안겨주면 좋은 저널리즘이 될 뿐이다. 버즈피드의 목표는 콘텐츠의 확산율을 가속하는 것인데, 한국 언론은 오직 확산율 가속에만 치중해 버즈피드 스타일을 속성으로 배웠다. 그 결과 우리는 수많은 매체가 생산하는 고양이 기사와 리스티클 따위를 하루에도 여러 번씩 접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고대’했던 디지털 혁신일까.

사실 한국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가디언·뉴욕타임스·버즈피드는 영어권에 속한 수십억 명을 잠재적 뉴스수용자로 두는 반면 한국은 북한 인구를 합쳐도 뉴스수용자가 고작 7000만 명에 불과하다. 가디언이 온라인전략에서 무료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도 거대한 해외영어시장이 있어서였다. 기대할 수 있는 트래픽의 수준이 한국과는 다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 뉴스수용자들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영향으로 뉴스를 ‘무료’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한 점도 디지털 전략에 있어 불리한 조건이다. 답 없는 보도자료 기계노릇에 속보·어뷰징 전쟁 속에 격렬하게 혁신하고 싶다가도 포기하게 되는 건, 우리 언론의 현실 때문이다.

▲ '디지털뉴스의 혁신', 루시 큉 지음, 한운희․나윤희 옮김, 한국언론진흥재단.
저자는 가디언·뉴욕타임스·버즈피드의 혁신 사례를 보며 ‘여긴 헬조선이야.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던 독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던져준다. 우선 저자는 혁신에 성공한 언론을 가리켜 “다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확보했다”고 지적한다. 다른 매체와의 차별화가 성공의 전제라는 의미다. 저자가 말하는 디지털 혁신은 △목적에 대한 확신과 특이성 △명백한 전략 초점 △강력한 리더십 △디지털 친화 문화 △기술과 저널리즘의 통합으로부터 가능하다. 디지털 혁신은 소규모 뉴스룸일수록, 디지털전략에 밝으면서 젊은 기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편집국장이 있을수록 용이하다.

혁신은 성공하기 위한 지침이 아니라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다. 가디언은 2011~2012년 편집부와 광고부 직원 200명가량을 감원했다. 2013년에도 자발적 정리해고를 포함해 편집국 직원 100명을 감원했다. 가디언미디어그룹은 2014년 디지털교육회사 디코디드의 지분 15%를 인수하며 투자하기도 했다. 가디언도 생존을 위해 사람을 줄이고 투자를 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방법을 찾았다. 한국의 언론은 어떤가. 아마 감원과 투자에서 끝났을지 모른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과 내일 마주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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