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이후 서울 시내에선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청년들이 마스크를 쓰고 국화꽃을 든 채 조용히 거리를 행진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들의 손엔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침묵행진을 하다가 넓은 공간이 나오면 멈춰 서서 자유 발언을 했다. 당시 행진의 선두에 섰던 용혜인(26)씨는 확성기를 들고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를 수차례 외쳤다.

침묵행진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및 관계 기관에 참사 책임을 묻기 위해 시작됐다. 용씨는 이 행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년 활동가다. 노동당 당적을 가진 용씨는 지난 5일 당내 비례대표 후보 출마 선언을 했다. 미디어오늘은 6일 오전 사당역 근처 한 까페에서 용씨를 만나 출마를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행진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이후 어떻게 지냈나?

“학교도 다니고 정당이나 단체 활동을 하고 지냈다. 최근엔 세월호 문제 관련해서 인권기행 ‘사람들’을 진행했다. 대학생, 청소년 100명과 광주, 팽목항, 단원고를 다녀왔다. 지난해 8월부터는 ‘절망라디오’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헬조선, 20대 개새끼론, 흙수저 등 담론이 많은데 실제로 청년들의 절망을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란 취지로 시작했다. ‘망하지 않은 사람 찾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며 서울 시내에서 사연을 받는 활동도 했다.

얼마 전엔 노동당 청년학생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래서 당내에 청년들, 활동가들을 만나러 다녔다. 졸업은 아직 못했는데, 한 학기 더 다니고 졸업할 예정이다.”

▲ 2014년 5월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용혜인 씨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염원하는 침묵행진 도중 발언을 하고 있다.ⓒ민중의 소리

 -사회운동가의 길을 택한 것 같은데 계기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가 가장 큰 계기였다. 생명보다 기업이 번 돈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목숨값은 기업의 비용에 불과한 이런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참사를 맞이할 수 있다. 이후 세월호나 백남기 농민분이나, 국민이 국민 취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렇게 나 혼자 각자도생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피한다 하더라도, 운 좋게 피하는 것일 뿐이지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얼마 전에 세월호 유가족 영만학생 어머니를 만났는데 ‘아침에 눈 뜨면 또 문제가 생겨 있고, 싸워야 할 문제가 또 생겨 있다. 언제쯤 좀 그만 싸우고 쉴 수 있나’ 이런 얘길 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세월호 참사가 나에겐 결정적이었다.”

-언제, 어떻게 총선후보로 나서려고 결심했는지 궁금하다.

“고민은 오래 했고 1월 중순쯤 마음먹었다. 노동당은 작년 연말부터 총선 준비를 해왔고 세월호 참사 때 함께 행동했던 친구들과 총선 국면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왔다. 기탁금이 1500만 원이나 되는 등 선거에 나가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 고민이 많았다.

청년문제는 허니버터칩 같다. 허니버터칩이 무슨 프리미엄처럼 여기저기에서 다 쓰이니 나중에 허니버터김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농담하고는 했는데 청년문제가 그렇다. 정치인은 청년 문제를 프리미엄처럼 이용하고 이 자체로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된다. 청년문제는 청년기에 누구나 겪는 의례적인 문제여서 배려가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50년 동안 축적돼 왔던 불평등의 문제가 청년 계층에게 극명히 터져 나오는 문제다. 청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축적돼 온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다. 기존의 정치 통해서는 이 축적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생각하면서 출마를 결심했다.”

“대학에 와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알바하기도 했고 14~15시간 일해도 5만 원도 못 버니 생활이 안 되기도 있다. 당시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교통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간 적이 한 번 있다. 친구들한테는 몸이 아파서 못 갔다고 했고 엄마한테는 미안해하실까 봐 학교가기 싫다고 말했다. 이 경험이 나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야간 알바하는 사람은 아침 8시에 퇴근하면 집에 가서 잔다. 그리고 오후 4~5시에 일어나 다시 8시에 출근한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고 친구와도 만날 수 없다.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사회와 단절될지라도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삶을 살아온 거다. 청년 문제는 나만 겪는, 누구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가만히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용혜인씨가 2월6일 오전 사당역 근처 한 까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손가영 기자

용씨는 지난 5일 출마선언문을 발표했다. 용씨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출마를 결심했다고 적었다. 용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서울 4년제 대학에 나름대로 진학하면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연인과 결혼해 차도 사고 집도 사는 꿈을 꿨고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면서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용씨는 신림동에서 5급 공무원시험을 공부하고 있었다. 용씨는 특히 세월호 특별법 논란이 한창일 때 지역구에서 3만 표를 얻고 당선된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시민 600만 명의 서명을 모아온 유가족에게 “협상의 전권을 야당 대표에게 주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정치가 외면한 사람들’을 봤다고 말했다. 용씨는 “저 정치인들이 말하는 정치에 ‘우리’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용씨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 김진숙씨’와 ‘핵발전을 멈추라며 목숨 내놓고 싸우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함께 언급했다.

-정치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 명이 국회에 간다고 해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거리에서 힘을 모아도 정치라는 공간이 무시해 버리면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2008년 촛불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 등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패배적인 경험을 했다.

거리 정치와 단절된 기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요구했던 정치들을 실제로 정치라는 영역 안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정치적 요구로 만들고 그걸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실제 이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노동당 비례대표가 되어도 당선 가능성은 낮다. 노동당이 그만큼 득표를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스스로도 얼마나 받을지 잘 모르겠고, 당내에는 3%는커녕 1%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작년 여름까지 노동당은 뭘 했다기보다 다른 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거나 집단 탈당이 생기는 등 존재감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존재감이 없으니 사람들이 노동당을 알지 못하는 내적 조건들과 한계들이 존재한다.

작년 9월 이후 새 대표단 출범 이후로 반노동개악 움직임에 함께 하고 새로운 노동 입법 법안 운동, 새로운 의제 대안 운동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군소정당이라 언론에서 보도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직접 글을 쓰고 직접 알리는 행동을 통해 바람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내용은 지금의 청년 문제,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일 것이고 기본소득과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녹색당의 경우 ‘원내진입 3%’를 걸고 집중하고 있다. 그에 비해 노동당이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2012년 함께 정당 등록 취소를 경험했지만 녹색당은 계속 성장해오는 정당이다. 노동당은 세력이 약해져 오는 축소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당내 무기력한 분위기도 있고 전체 당에 아직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진 못한 것 같다. 다다음주에 비례후보를 등록하고 전국 순회 하고 비례 선출 선거를 하는데, 그러면서 당내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당원들이 의지를 갖는 계기들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비례대표로 당선이 된다면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나?

“관심있는 것은 기본소득이다. 시민사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모두가 한국 사회가 위기라 하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노동을 더 착취해서,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임금을 더 쥐어짜 기업의 수출 이윤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저성장 문제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면, 그것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저성장 전제로 일자리 문제 해결하는 것은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 만드는 것밖에 없다. 좋은 일자리를 나누고 노동시간 단축하면서 줄어드는 소득 부분은 기본소득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처음엔 생소했지만, 스위스, 핀란드가 추진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청년 배당이나 박원순 시장의 청년 수당으로 일부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해보고 싶다.

최저임금 1만원도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선거 때 이인영 후보가 당론으로 걸겠다고 들어오기도 했다. 예전엔 시민사회 단체들도 ‘미친 거 아니야’라고 했었는데 민주노총의 요구가 되기도 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업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다.”

-1500만 원 선거 기탁금은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나?

“대출받을 거다. 노동당은 지역구 후보에겐 총선기금으로 지원하기로 했으나 비례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비례대표는 후원회도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안다. 쓰고 갚을 예정이다.“

-‘가만히 있으라’ 행진 때문에 그동안 경찰 조사, 기소 등으로 많이 시달린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해결이 됐나?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았고 재판 중이다. 2014년 세월호 침묵행진 하면서 기소됐던 것들이다.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가 된 다음 날 바로 기소됐다. 2014년 기소된 게 4개와 2015년 세월호 시행령 문제 때문에 유가족들이 광화문 현판 앞에서 밤 새우고 반대운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소된 게 4개가 합쳐져 총 8건이 기소된 상태다. 1심이 올해 6월 정도는 돼야 끝날 거 같다.”

-앞으로 계획은?

“2월17일에 후보 등록하고 22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들을 만난다. 낮에는 시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할 예정이다. 당내 후보 선출 투표는 3월 11일에 끝난다.

청년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예전에 한겨레에서 진보·보수 청년들이 모여 좌담회를 한 적 있다.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은 굉장히 빈곤하고, ‘헬조선’, ‘죽창’, ‘흙수저’ 담론 등 다 미래가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런 자리를 많이 마련해 보려고 한다. 언론이 보도를 안 하기에 직접 여러 군데에 글을 기고하고 토론회·집담회 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총선 4월13일 까지 2달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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