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정치인으로서 작성한 공식 출마선언문은 이제 두 장이 쌓였다. 지난해 6월 조 소장은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나가며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 미래를 준비하는 2세대 진보정치가 필요합니다”라 선언했다. 20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에 그는 “‘심판의 정치’를 넘어 ‘변화의 정치’에 모두를 초대한다”고 제안했다.

조 소장의 출마선언문에는 선명한 대립, 심판론 등의 익숙한 표현은 찾기 힘듦에도 모두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조 소장은 “내가 쓰는 정치 언어는 설득과 공감”이라며 “증오나 적대가 아닌 좋은 말로도 충분히 큰 파격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이지, 설득이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정의당사 내 미래정치센터에서 비례대표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조성주 소장을 만났다.

- 작년 당 대표 선거 후 잘 보이지 않았다. 뭘 하며 지냈나?

“‘조성주가 조용한데 어디 갔냐’라는 말이 나왔다. 선거 후 전국을 돌면서 당원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만나러 다녔다. 150회 정도 다닌 것 같다. 당원모임부터 군포여성회, 책읽는 사람들 등 시민모임까지 다 나갔는데 시민들이 많이 불러주신 것도 있고 정치를 얘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적극적으로 찾아간 것도 있다. 그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이 강연의 제목이기도 한 ‘어떻게 정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많이 배웠다. 언론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커진다고 하지만 한쪽에서는 정치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커지고 있는 흐름을 느끼고 왔다.”

▲ 조성주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2월4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사 미래정치센터에서 총선 비례대표 후보 출마 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낙마 후 들은 칭찬과 비판 중에서 마음에 남은 게 있다면?

“가장 좋았던 칭찬은 ‘정치가 아름답고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기존 정치의 언어들은 보통 센 말, 날카로운 말, 상대를 공격하고 꼼짝 못 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이 아닌 공감이나 설득으로도 충분히 파괴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비판은 ‘당신은 힘이 없다’는 것. 당신이 변화를 얘기해도 어떻게 그걸 이룰 거냐는 비판이다. 정의당 의석은 5석일 뿐이고 나는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없음에도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힘을 가져야 할까 고민해봤다. 내가 힘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이 사람들도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만 힘을 가져선 아무것도 안 바뀌니까. ‘입당하라’고 말했다. 약자의 무기는 조직이니까 그런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 20대 총선을 계속 염두에 뒀을 텐데 그동안 보충한 ‘화력’이 있다면?

“본질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내가 왜 국회의원에 잘 맞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만 얘기한다. 그보단 국회가 무엇이고 한국 정치란 무엇인가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

당 대표 선거 때는 진보정치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2세대 진보정치’를 말했다면 지금은 국회와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고 답을 냈다. 답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회의원은 조직가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불만을 조직하는 조직가. 그런 민의와 대안을 가지고 경쟁하는 게 국회고, 이로써 변화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출마선언문은 이에 대한 답을 내린 것이다.”

- 조성주가 말하는 ‘변화의 정치’란 무엇인가?

“선거란 원래 심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 남은 정치는 위험하다. 야권은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고 박근혜 정부는 아예 여의도 정치 자체를 심판하며 할 말이 없는 여당은 진박 애기만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분열주의와 패권주의를 각각 심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 얘기는 안하고 심판 얘기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선거가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심판은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아 정치효능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안을 선택하는 변화로 이뤄져야 한다. ‘대안을 선택했을 때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이것이 논의돼야 한다. 변화의 정치는 ‘상황을 바꿀 희망의 근거를 제시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논쟁하는’ 정치다.”

그동안 재정비한 것을 묻는 질문에 조 소장은 몇 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대략 얼개가 짜인 정책들은 ‘5시 퇴근법’, 고용보험 개혁, ‘지방시법’ 등이다. 5시 퇴근법은 점심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주 35시간 노동’과도 연결될뿐더러 식사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서비스산업의 근로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

고용보험 개혁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사회안전망의 대대적인 개혁이다. 청년 실업과 빈곤 위기가 높아지는 시대에 기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청년 맞춤형 실업부조’를 신설해 지금껏 고용보험제도에서 배제됐던 청년에게 안전망을 두는 것이 골자다.

‘나는 지방대시간강사다’라는 책에서 이름을 따온 지방시법에 대해 조 소장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는 ‘노동 밖의 노동, 한국 사회의 숨겨진 노동’의 대표사례”라 지적했다. 조 소장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의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는 각각 33만 명과 8만 명으로 영화산업 종사자보다 많아 어엿한 산업 직군으로 분류할 만큼 크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노동권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 조 소장은 “당 대표 선거 때 한 대학원생분이 대학원생의 고충을 절절히 적은 사연을 보내줬다”며 “당시엔 아무 준비가 안 된 당 대표 후보여서 답을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3월 초 내로 정책 발표를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성주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2월4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사 미래정치센터에서 20대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 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비례대표 후보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야권분열로 정의당이 비례대표 1석이나 얻겠냐는 우려가 있다.

“너무 비관적인 판단인 것 같고 현재 4~6% 지지율은 나오는 것 같다. 안철수 신당 때문에 확장력이 조금 떨어진 건 있다. 그렇지만 떨어진 지지율이 다시 회복하고 있다. 정의당이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없지 않다. 8~10%의 당 지지율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은 국민의당과 다르게 제3당의 포지션을 가진다. 국민의당은 양당정치를 깨는 게 아니라 기존의 양당정치로 재편되는 것이다. 왼쪽에서 도전이 있어야 오른쪽 당들이 재배열될 수 있다. 선명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 조 소장은 “정의당이 연대와 연합의 조연이 아닌 ‘변화의 정치’가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의당은 공식적으로 더민주당, 국민의당과 야권연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의당은 정의당과 노선차이가 상당히 다르다.

“시민들의 삶의 변화를 위한 연대는 누구와도 할 수 있는 게 정치다. 새누리당이 제일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 새누리당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야권연대는 가치중심보다는 새누리당의 선거승리를 위한 저지의 연대다. 그건 공학적이라 본다. 앞서서 있어야 하는 건 시민들의 삶에 대한 논의다. 지금까지 보여준 국민의당의 기조는 더민주당보다 오른쪽이다. 심상정 대표는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에 초점을 맞추고 야권연대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그와 다르다.”

- 전략적으로 필요하더라도, 가치와 노선의 문제가 있는데 상반된 곳이랑 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당 입장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중요하지 않아서, 양자택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문제에서) 양자택일의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쪽 전략적 유연성 강조할 게 아니라, 진보정당의 가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당이든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과 노선이라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 지금은 야권연대가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를 위한 연대에 초점 맞춰진 걸로 보이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가진 가치와 삶을 개선하는 대안을 함께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야권연대에서) 정의당의 노선이 함께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이 거리의 정치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있다. 운동이 아닌 정치를 하자고 강변하지만 정작 위축된 것은 운동이라는 지적이다.

“정의당은 거리의 정치를 외면하지 않는다. 기존의 거리정치 조직들,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연합회, 대중조직들, 여기가 주도하는 공간에 정의당이 과거보다 안 보일 수 있다. 정의당은 익숙한 거리에 안 나타날 뿐이지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 협동조합, 자영업자, 뒷골목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다. 거리정치든 제도정치든 하나의 힘만으로는 안 되고, 정의당은 제도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논쟁적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운동진영은 순수한 운동에 특권을 더 많이 부여해옴으로써 정치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개발해내지 못한 게 아닐까. 정의당은 정치의 가능성을 계속 강조하다 보니 순수한 운동이 가지던 특권을 다소 완화시키고 있다. 정치의 가능성의 공간을 최대한 많이 개발해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좋은 정당을 항상 강조해왔다. 좋은 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수준을 평가해보자면?

“정의당은 아직 정당이 아니다. 정당 만들기를 하고 있는 당이다. 지지율 변동도 있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불안해 보인다. 정당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려면 명료한 자기 정체성과 노선, 자기 뿌리가 있어 지지율이 고정돼야 한다. 그때가 정당만들기가 끝나는 시점이고 나는 2018년과 2020년 사이에 그 시점이 있을 거라 본다.

정의당은 주체를 키워내야 한다. 조성주만으로는 안되고 더 젊고 더 에너지있고 더 다양한 현장 경험이 있는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이 강해져야 한다. 움직이는 당원이 30%는 돼야 한다. 지금 정의당 당원이 30000명 정도니 10000명 정도는 당원 모임에 나오고 해야 한다. 그래야 확장성을 가질 것이다.”

- 비례대표로 선출되려면 당원들의 지지가 중요한데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나?

“정의당은 1, 3, 5, 7번이 여성명부고 일반명부는 2번부터 시작한다. 비례대표로 나서는 후보가 열 몇 분이 계시다고 들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심상정 대표를 포함해 그 모든 사람을 통틀어 내가 당원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 지난 반년 동안 당원이 한두 명 모인 자리라도 필요로 하면 갔다. 당원이 1명만 있고 나머지는 시민이었어도 찾아갔다. 당원 목소리 가장 많이 듣고 질책도 가장 많이 들었다.”

-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남은 과정은? 결과는 낙관적으로 보는지?

“자신있다. 많이 준비했고 잘 준비했다. 당원, 시민들과 나눈 얘기들이 정말 많고 앞으로 나누고 싶은 얘기도 많다. 비례대표 상위 순번이 되는데 주력할 것이다. 상위 후보가 된다면 정의당의 지지율을 높이고 후순위에 있는 후보들을 당선시켜내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역할에 조성주가 걸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조직표’ 때문에 조성주가 불리하다고 하는데, 지난 당대표 때 최대 500표 정도가 예상됐으나 당시 1200표를 얻었다. 지금 정의당은 조직표로 움직인다고 보지 않는다. 정의당 당원들은 모두 그 수준을 넘어선다. 그런 계산과 판단이 있기 때문에 나왔다. 지는 싸움은 안 한다.”

- 조성주에게 시민을 대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치인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무엇을 해드리겠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만들겠습니다’가 돼야 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개선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조에 두려움없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드리겠다가 아니라 5시에 퇴근할 수 있게 해서 그 부부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 눈 마주칠 수 있게 하는 걸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약자고 힘이 없다. 힘을 만들어주는 것은 정치가다. 그런 역할을 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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