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쌀집 아저씨는 ‘미가(米家)미디어’ 라는 이름의 새로운 쌀집을 중국에 차렸다. MBC를 떠나 김영희 PD는 중국 품에 안겼다. 중국 투자를 받아 또 다른 회사인 B&R(Blue Frame & Rice House)의 대표가 됐다. 그의 쌀집들은 성공을 거뒀다. 중국에서 첫 제작 예능프로그램인 ‘폭풍효자’가 첫회부터 전국 시청률 1위인 1.59%를 기록해 순항을 타는 모양새다. 중국에선 1%의 시청률만 기록해도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의 참신한 한국의 방송 콘텐츠는 중국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포맷이 수출돼 제작됐던 중국판 런닝맨이 중국에서 5%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유다. 한국과 달리 중국의 방송 광고에는 규제가 거의 없는 탓에 방송에 온갖 광고를 붙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터넷 시장의 급속한 성장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방송계에 ‘핫한’ 콘텐츠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덩달아 한국 방송 콘텐츠의 인기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과 자본 잠식, 우리 콘텐츠가 인기를 끌 때마다 중국 현지에서 하나 둘 씩 생겨나는 방송 규제 등 곳곳에 숨어있는 암초들도 가득하다.

거대하고 희망 가득해보이지만,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는 중국 미디어 시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디어오늘은 3회에 걸쳐 중국 미디어 시장을 해부한다. <편집자주>

중국 사람들은 왜 한국 콘텐츠를 찾을까? 한국 방송 콘텐츠는 중국 방송 콘텐츠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의 방송 콘텐츠가 중국 시장에서 ‘먹힌’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드라마 성공엔 유사한 문화 배경

중국에서 최초로 성공했던 한국드라마는 1991년 MBC에서 방송됐던 ‘사랑이뭐길래’였다.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만든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64.9%라는 역대 2위의 기록을 거둘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대가족 중심 문화는 중국에서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국의 콘텐츠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된 드라마 ‘대장금’이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2006년 재방송을 할 정도였다. ‘대장금’이 한국적 이미지가 강했음에도, 중국과 한국 간 문화적 거리감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이었다.

▲ 중국에서 열풍을 불러왔던 MBC의 '대장금'
물론 한국 드라마와 중국 드라마의 코드는 조금 다르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남녀 간 알콩달콩한 연애담을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등장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심리 묘사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반면 중국의 드라마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세트에서 전체적인 배경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중국 드라마는 액션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다. 2013년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별에서온그대’나 2014년 ‘상속자들’처럼 한국 드라마 특유의 아기자기함, 젊고 톡톡 튀는 분위기가 중국에서 새롭게 읽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소비되는 패턴은 조금 달라졌다. 최근에는 중국 인터넷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인터넷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 중국 방송국에서 인기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해당 드라마 판권을 구매해 방영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별그대’의 성공에는 이러한 중국 방송사와 인터넷 플랫폼 간 역전된 위상이 배경에 깔려있다.

중국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들은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중국 미디어 업계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드라마 속 한국 사람들은 매우 깨끗하게 산다는 이미지가 있다. 집을 매일 청소를 하는 모습 때문이다. 깍듯이 고개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예의를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호감을 샀던 요소”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한 한국 PD는 “한국 드라마에서 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모습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잘 산다는 인식이 생겼다. 물론 부정적인 이미지도 생겼다. 한국 드라마에 특히 불륜과 삼각관계가 자주 등장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쉽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일부 생겼다. 외모지상주의적인 사고를 갖는다는 오해 아닌 오해도 생겼다”고 전했다.

SBS 런닝맨, 중국 방송계를 뒤집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보단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수요가 더 커진 모양새다. SBS 런닝맨의 판권을 사다 중국판으로 새로 제작해 대박을 터트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1%만 기록해도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런닝맨은 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중국 미디어 업계는 중국판 런닝맨인 ‘달려라 형제’를 방송한 저장위성TV가 한 시즌 방송만으로 얻는 부가수익은 우리 돈으로 3600억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달려라 형제’는 시즌3까지 방송됐다.

중국에서 런닝맨이 성공한 데에는 인터넷 시장의 급속한 성장세가 역시 한몫했다. 마침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포맷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중국판 ‘런닝맨’은 중국 현지에서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관련 상품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런닝맨의 성공에는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이라는 배경도 있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현장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은 중국에서는 독특하게 다가왔다. 한국처럼 대본도 없이 현장감을 담아내는 예능 프로그램은 중국에서는 흔치 않았다.

▲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텐센트'에서 방송 중인 판 냉장고를 부탁해.
물론 중국 시청자들이 모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의미나 교훈을 끌어내는 프로그램에 익숙한 중국 시청자들에게는 관찰에 치중하거나 연예인들끼리 소소하게 웃고 즐기는 형식의 프로그램은 난해하다. KBS의 ‘1박2일’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연예인들끼리 여행을 가서 복불복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묻어나는 스타들의 인간적 매력이라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관찰식 예능이라는 코드라는 점에서 중국 시장에서 큰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tvN의 ‘삼시세끼’ 역시 연예인들이 밥만 하고 있는 상황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 못하는 중국 시청자들도 많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 20여년 간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현재 중국 베이징TV에서 ‘2세시대’라는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 중인 정인환 방송작가는 “한국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효시는 MBC에서 방송됐던 ‘GOD의 육아일기’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천생연분’ ‘동거동락’ 등 차례로 여러 시도를 하며 지금의 ‘아빠어디가’라는 프로그램까지 발전과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은 상호작용하며 시청자들의 수요 변화에 맞춰왔다. 중국에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다. 여러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도입되고 동시에 시청자들의 검증을 거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방송국들도 한국의 방송 포맷을 가져다 그대로 제작하지는 않는다. 중국 시청자들의 수요에 맞추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용 규제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분열 없이 하나의 국가로 이끌어가려면 미디어도 다양성보단 통제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나영석 PD의 웹 예능 ‘신서유기’도 중국 현지에서 방송됐지만 일부 내용이 편집돼야 했다. 해당 예능에서 다뤘던 삼장법사 이미지가 문제였다. 중국 방송에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이미지를 다룰 수 없다. 이외에도 중국에서는 사이비종교, 미신을 방송에서 다뤄서는 안된다. 중국 사회 공중도덕이나 중화민족의 우수한 문화 전통을 해하는 내용을 방송할 수도 없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로 생긴 웃지못할 규제들도 여럿 된다. 지난해 4월 방송됐던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가 장수위성TV에서 방영 중 7월에 갑자기 방송이 중단됐다가 다시 방송되는 일도 있었다. 진짜 연애와 구분되지 않는 ‘거짓연애’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였다.

후난위성TV에서 현재 시즌4까지 방송 중인 중국판 ‘나는 가수다’의 경우 한국과는 조금 다른 구성으로 제작된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을 통해 1등을 뽑는 방식이 아닌 모든 출연자가 화합을 도모하며 사회 결속력을 해하지 못하도록 끝이 난다. 탈락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자제해야 한다. 중국 전체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1년에 5개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규제도 생겼다.

▲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지난해 방송됐던 중국판 '나는가수다' 시즌2.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중국 정부는 서둘러 고삐를 당기고 있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끼리만 게임을 하는 모습들이 등장하자 지난해 7월 중국의 광전총국은 예능 프로그램에 일반인 출연자를 함께 등장시켜 연예인이 일반인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주문을 내리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순 재미만을 위한 경기보단 사회적 의미와 교훈을 더 부각하라는 지적도 나왔다. ‘몸개그’가 많거나 교훈이 포함되지 않은 순오락성 프로그램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에만 방송이 가능하다. 한 위성TV 방송국 당 해외 프로그램 포맷 수입은 1년에 1개로 제한한다는 규정도 생겼다.

해외 드라마의 경우도 하루 방영 드라마 중 25% 이상 해외 드라마를 편성해서는 안된다는 규제나 프라임시간대에 한중합작 드라마를 방영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규제도 생겼다. 드라마 속 남녀가 불륜관계면 무조건 결별로 끝이 나야 한다. 지난달 29일부터 안휘위성TV에서 방송 중인 ‘별그대’도 외계인을 중국 방송에서 다루면 안된다는 규제 때문에 도민준(김수현 분)이 중국에서 외계인이 아닌 소설가로 드라마의 모든 이야기를 쓴 것으로 편집돼 방송될 것으로 알려졌다. 속속들이 생겨나는 규제는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머뭇거리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순전히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이러한 규제가 생겼다고는 할 수 없다. 인터넷 시장의 확대로 중국 사회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해외 콘텐츠가 많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중국 특유의 자국 문화 장려 정책을 펴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중국도 중국만의 콘텐츠를 만들 것”

중국의 한국 방송 콘텐츠 성공세는 하나의 바람으로 끝날까. 최근 중국 내부에는 중국식 예능을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최근 방영 중인 김영희 PD의 ‘폭풍효자’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지난달 23일 첫 방송부터 전체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중국 사회 질서를 강조하기 시작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김영희 PD의 성공을 다양한 의미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상준 한국경제 콘텐츠PD는 “중국도 이제 중국만의 것을 만들고자 한다. 중국식의 ‘착한 예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김영희 PD가 10여년 전에 했던 ‘양심냉장고’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1가구 1자녀 정책 폐기로 아이가 늘고 키즈맘들의 소비 욕구도 커지면서 중국 맞춤형 육아 예능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중국에서도 한국 내에서 우려감을 표하는 것과 같이, 한국 시장에의 의존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지속적인 해외 방송 콘텐츠 구매를 통한 국부 유출을 우려하는 단계까지 왔다. 중국 현지에서 중국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 얼반웍스미디어 소속 이창욱 PD는 “중국 입장에선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하는 예능 프로그램 한국에서 사온 프로그램 포맷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우려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도 어느 정도 중국 내부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언제든 자국 중심의 제작 관행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해외 문화의 지속적인 유입을 통해 중국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사전에 차단하려 하는 움직임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해외 드라마에 대해서도 허가증을 발급받지 않으면 방영할 수 없는 등 인터넷도 사회주의 문화의 주요 요소로 규정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이러한 전망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방송 콘텐츠 교류를 하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김영희 PD의 성공이 끝까지 이어지느냐는 지켜봐야 한다.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 정부가 중국 인민 교화를 위해 강조하는 가족 중심 내용과 효와 같은 이야기를 한국 제작자가 만드는 것을 별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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