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뉴스에 중심에 섰다. 수석비서관 중 한명인 정무수석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주로 청와대와 국회 사이를 조율해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흔히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정무수석의 행보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곧잘 해석되면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지난해 5월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물러나고 청와대는 54일 만에 현기환 수석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청와대는 “정무적 감각과 친화력, 폭넓은 인적네트워크를 포함해 정치권과의 소통 등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원활하게 보좌할 적임자”라며 현 정무수석 임명 배경을 밝혔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현기환 정무수석의 ‘특별한’ 관계에 따른 임명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최근 현 수석이 논란이 된 언행을 벌인 것도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재조명해봤을 때 단순한 실수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박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을 보냈는데 현기환 수석은 세번이나 수령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처리돼야 할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난을 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에 정중히 사양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국회와의 관계를 풀어야할 위치에 있는 정무수석이 제1야당 대표 축하의 난을 자체 판단에 따라 거부하고 법안 처리 지연을 이유를 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뒤늦게 청와대는 상황을 파악해 현 수석을 박 대통령이 질타했다고 했지만 이미 ‘오만한’ 정무수석의 언행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 누를 끼치는 행위가 돼버렸다. 정무수석 임명 배경이라고 했던 친화력과 소통과도 거리가 멀고 정무적 판단까지도 오판한 셈이다.

현 수석은 언행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헤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이견을 내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인 뒤에 현 수석은 복도에서 박 시장에게 고함을 질렀다.

박원순 시장은 5일 <김현정의 뉴스쇼> 출연해 박근헤 대통령과 “교육감들이나 또는 시도 지사들을 좀 소집을 해서 토론을 해서 본질적으로 해결을 하시는 게 어떠냐는 권고의 말씀”을 드렸다면서 박 대통령과 설전보다는 토론에 가까운 논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무회의가 끝나고 나서 박원순 시장이 나가는데, 그 뒤에다 대고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고함을 질렀다, 국무회의가 국회 상임위 자리인 줄 아느냐며 질책을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라는 건데. 이 보도도 소설이냐?”는 사회자 질문에 “그 얘기는 맞다. 제가 다 끝나고 나오는데 ‘국무회의가 국회 상임위로 활용을 하려고 하냐’ 이렇게 소리를 높여서..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정말 정중하고 또 예의 있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해결하는 자리를 좀 만드셔라’ 이런 정도의 얘기였는데, 갑자기 이분이 소리를 상당히 높여서 주변에 있는 사람 다 들리도록 복도에서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굉장히 불쾌했죠”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렇게 얘기하면 그것은 저는 대통령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고, 또 우리 서울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되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명직 공무원이 선출직 공무원의 의견에 대해 항의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국무회의가 끝난 뒤 참가자들에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는 건 의도적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지난해 8월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 포커스뉴스
현 수석은 이전에도 논란이 될 만한 언행으로 무리를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현 수석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선거법만 직권 상정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상정 요건이 강화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국회의 수장에 대해 정무수석이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국회의장이 압박을 느낄만한 발언을 스스럼없이 한 것이다.

정 의장도 현 수석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의장은 “국회의원 밥그릇 챙긴다는 말은 국민에게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라며 “밥그릇 표현은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현 수석은 지난해 10월에도 자체 판단에 따라 여야 합의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관련해 문재인 옛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합의하고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설명하고 보고했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현기환 수석이 김 대표를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면서도 현 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야 합의 내용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던 행위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축하의 난을 거부한 맥락과 묘하게 닮아있다.

현 수석의 언행이 특별한 것처럼 보이지만 박 대통령의 심복으로 불리며 초선이면서도 칼날을 휘둘렀던 현 수석의 과거를 보면 언뜻 이해가 간다.

현 수석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으로 발탁됐다.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혁신을 단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현 수석은 공천위원 10명 중 당내 인사 3명에 포함돼 공천을 주도하면서 ‘공천 학살’의 장본인이 됐다. 그가 박 대통령의 손에 공천위원으로 발탁된 건 이유가 있다. 2011년 박 대통령이 인적 쇄신의 일환으로 친박 용퇴론을 거론하자 현 수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당에 도움이 되는 밀알이 되겠다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이 그를 공천위원으로 임명한 건 그의 높은 충성심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공천을 미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오르면서 친박 핵심 인사의 비리로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당사자가 됐다.

새누리당 현영회 의원의 수행비서는 현영회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위해 3억원을 돈을 조기문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에 전달했고, 이 돈이 현기환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으로 건너갔다고 폭로했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박 대통령이 직접 뽑고 심복으로 불리던 현기환 수석이 더러운 공천 장사를 했다는 의혹인데 사실로 인정되면 대권 후보로서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현기환 수석과 현영회 의원의 전화통화와 문제메시지 등 공천 거래 증거로 볼 수 있는 내용이 나왔음에도 돈의 최종 종착지는 현 수석이 아닌 조기문 홍보위원장으로 봤고 현 수석을 무혐의 처리했다. 부실수사 논란이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현기환 수석과 현영회 의원을 재빠르게 제명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시켰다.

그리고 그는 지난 2012년 4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직을 맡아 새누리당으로 복귀했고, 지난해 7월 화려하게 박 대통령의 심복으로 다시 돌아왔다.

정치권에선 기존에 정무수석을 했던 사람(박준우, 이정현, 조윤선)이 국회와의 소통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의 성격이 강했다면 현 수석의 청와대행은 집권 3년차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상대로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충성심 높고 과거 공천 학살을 했고 논란이 돼 제명까지 당했던 인물을 청와대 정무수석에 앉힌 것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 심복으로서 그를 활용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현기환 정무수석이 오면서 대국회 메시지가 강해졌고, 정부 입법 처리에 대한 청와대의 국회 압박이 심해졌다.

도마에 오른 현 수석의 언행도 애초부터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인 목적을 따져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수일 수는 있어도 정부의 큰 국정운영 방향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심정을 반영한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오만한 행위로 판단하고 사퇴를 촉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로선 충성심 높은 인물이 ‘애국’을 하다 발생한 작은 ‘실수’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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