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백종문 녹취록’은 2012년 MBC의 170일 최장기 파업 사태 이후 MBC 사측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노동조합과 파업 참가자를 탄압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난 2014년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등 MBC 간부들은 보수 매체 폴리뷰 관계자를 만나 파업 참가자에 대한 ‘보복성 징계’뿐 아니라 노골적인 프로그램 간섭과 압력 행사, 반헌법적인 극우 발언을 쏟아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이 녹취록에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도를 통해 분석한 결과, 김재철 전 MBC 사장 시절 승진을 거듭하고 요직을 차지했던 간부들이 과거부터 관계를 맺고 이들에 반대하는 노조를 탄압하며 자리를 보전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가 ‘증거 없이’ 해고됐다.

▲ 구성=강성원 기자. 그래픽=이우림 기자 ⓒiStock

‘김재철 라인’ 김석창·정재욱 등 ‘지역MBC 정책연합’부터 인연

폴리뷰 관계자와 회동 자리에 백종문 본부장과 동석했던 정재욱 법무실장과 김석창 문화사업제작센터장(부국장), 김아무개 정책홍보부 차장은 지난 2005년 지역MBC의 통합적인 정책 추진과 ‘종합편성PP’ 설립을 위해 구성된 ‘지역MBC 정책연합’에서 함께 활동하던 인연이 있다.

김석창 부국장은 정책연합 초창기부터 파견돼 기획팀장과 총괄팀장을 지냈으며, 정재욱 실장은 김 부국장의 진주MBC PD 후배로 입사(1995년)했다. 이후 정 실장은 대구방송 이직, 1998년 퇴사 후 변호사로 전직한 다음에도 김 부국장이 몸담고 있던 정책연합 자문변호사로 활약한다. 1997년 계약직 특채로 입사해 김재철 울산MBC 사장 시절 정규직으로 전환된 김아무개 차장 역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정책연합에 파견 나가 있었다.

김 부국장의 경우 진주MBC 재직 시절 노조지부장도 역임하고 노동법 개정 반대 파업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인 노조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0년 김재철 전 사장 선임 후 본사 특보로 임명되면서 소위 ‘김재철 라인’으로 분류됐다.

김 부국장은 김 전 사장과 동향인 경남 사천 출신이며, 둘 다 고려대(김재철 사학과, 김석창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안광한 현 MBC 사장도 경남 남해 출생으로 진주고와 고대 신방과를 나왔다.

게다가 그는 진주·창원MBC 통합을 주도하면서 노조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진주MBC 노조는 성명을 통해 “김재철 사장과 동향이자 동문인 김석창 특보는 자신의 소속사인 진주MBC를 강제통폐합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자신의 거취가 불분명했던 그는 구성원들의 피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통폐합을 광역화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포장해 국회, 방송통신위원회를 돌아다니며 온갖 패악을 저질러 왔다”고 비판했다.

김 부국장은 2014년 3월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등과 회동 자리에서 “오늘 새로 명함이 새로 나왔다”며 “내가 부국장으로 본사 들어갔다고 노조가 오늘 또 그냥 넘어가지 않네”라고 말한다. 2013년 글로벌사업부 일본지사장을 지냈다가 김 전 사장 해임 후 용인 드라미아로 발령 났던 그가 안 사장이 취임하고 미래전략본부 관계회사국 부국장으로 돌아왔던 때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당시 안 사장의 인사 방침을 비판하는 성명에서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보복’의 논리로 일터에서 배제되고 있는데 김재철 시대의 깨알 같은 보은인사 또한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김재철의 집사’라는 이름으로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다 막판엔 ‘위인설관’ 논란을 일으키며 일본지사장까지 진출했다가 김재철 해임과 함께 드라미아로 자리를 옮겼던 인사는 MBC 본사의 부국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고 지적했다.

안광한 사장 취임 후 밀려난 이진숙, “백종문 작품”?

이처럼 ‘김재철 체제’에서 영전했던 이들이 안 사장 취임 직후 MBC 사측을 대변하는 극우 성향의 매체 편집국장 등을 만나 나눴던 대화 녹취록은, 이들이 어떻게 안 사장의 MBC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 발버둥 쳤는지 보여주는 낯 뜨거운 기록이다.

김 전 사장 때 홍보국장과 대변인, 기획홍보본부장 등 승진을 거듭하며 ‘김재철의 입’으로 불렸던 이진숙 대전MBC 사장의 경우 김재철·안광한·백종문 등과 함께 노조 파업이 140일 넘게 지속되던 2012년 6월 인사위원회를 열어 10여 명의 조합원에 대해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평조합원 신분이던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도 ‘묻지마 해고’를 당했다. 이 사장은 이후 2014년 본사 사장 자리까지 도전했지만 방송문화진흥회 사장 선임 결선투표에서 0표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사장은 본사 사장 선거에서 떨어진 후 보도본부장으로 임명되지만 1년 만에 대전 M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대해 MBC 내부에선 “안광한 사장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이거나 눈 밖에 난 인사, 통제하기 힘든 인사를 지역사 사장으로 내려 보냈다”는 해석도 나왔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추가 녹취록에 따르면 박한명 폴리뷰 국장은 소훈영 기자에게 “안광한과 같은 편인 백종문이 김재철을 죽이고 이진숙을 날렸다”며 “김재철을 그렇게 자르고 집행유예 받고 나니까 바로 군인올림픽에서 뺐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인사를 단행해 이진숙을 대전으로 내쫓았다. 김재철 세력들을 완전히 죽여서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 본부장은 2014년 박 국장과 2차 회동에서 “김 전 사장이 내년 10월 달에 하는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겸 개폐회식 예술총감독 맡았는데 그게 명예직이고 보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국장의 말대로 실제 김 전 사장은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다.

박 국장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때 나를 형으로 불렀던 소 기자와 둘이 나눈 사적인 대화”라며 “내가 판단했을 때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거고, 소 기자랑 친해서 얘기한 여러 소설 중에 하나”라고 해명했다.

백종문 “김재철 명예회복이 가장 중요, 열심히 돕고 있다”

박 국장은 또 이 회동 자리에서 김 전 사장과 관련해 “내가 10월에 이진숙 본부장과 만났는데 김 전 사장이 퇴직 위로금을 못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김 전 사장이 선거하느라고 돈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좀 멀어지신 거 같고, 주변 사람들이 확실하게 방어막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백 본부장은 “(김 전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회복인데, 소송 문제에 있어서 회사가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며 “퇴직 위로금은 회사에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주주인 방문진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그 돈을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숙 사장의 ‘김재철 퇴직 위로금’ 등 발언과 관련해 미디어오늘은 이 사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지만 “회의 중이라 미안하다”는 대답 외에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백 본부장과 정재욱 실장, 김석창 부국장, 김아무개 차장 모두 인터뷰를 피하거나 수차례 연락에도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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