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에서 왜 문재인과 안철수 얼굴에 모자이크 한 건가요?”

지난달 22일 JTBC ‘썰전’ 방영 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누리꾼이 올린 질문이다. 모자이크는 선거기간 출범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선거방송심의특별규정(이하 심의규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뉴스보도나 시사프로그램이 아닌 경우 특정 후보자의 출연효과를 줘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의 질문에는 모순이 드러난다. ‘썰전’은 모자이크를 했고, 그 결과 심의제재의 칼날을 피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누군지 알아봤다. 패널들이 특정 정치인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 뒤였고 자막으로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모자이크를 한다고 해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입당 기자회견 때 그의 옆에 서 있는 흰 머리의 정치인이 문재인 의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 지난달 21일 방영된 JTBC '썰전'
심의기준을 살펴보면 이처럼 실효성은 없으면서도 과도한 면이 적지 않다. ‘모호한 기준’은 ‘문제적 심의위원’을 만나 불공정 심의로 이어지기 일쑤다. 언론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후보자를 검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선거기간, ‘꿀 먹은 벙어리’가 돼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얼굴 나오면 제재? 

‘썰전’이 모자이크를 하게 된 배경인 심의규정 21조는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방송 및 보도․토론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를 출연시키거나 후보자의 음성·영상 등 실질적인 출연효과를 주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얼굴이 잠시라도 나오면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당 규정은 특정 후보가 방송을 선거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음성이나 영상 등 광범위한 영역까지 ‘출연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수단을 규제하는 건 규제남용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18대 총선 때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 영화광고가 제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JTBC ‘무비스타’와 KBS2 ‘영화가 좋다’에서 ‘부러진 화살’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영화에 판사 역할로 출연한 당시 문성근 예비후보의 목소리와 얼굴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또, ‘부러진 화살’의 광고영상을 내보낸 KBS2, MBC, OCN, 채널CGV 등도 줄줄이 제재를 받았다. 제재수위는 노출정도에 따라 권고와 의견제시로 나뉘었다.

그나마 ‘부러진 화살’에서는 문성근 당시 후보가 영화에 직접 등장이라도 하지만 정치인이 출연을 하지 않았는데도, ‘출연효과’를 이유로 제재를 받은 경우도 있다. 지난 1일 MBC 드라마 ‘내딸 금사월’이 권고 제재를 받았는데 도서관에서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배경으로 주간지 코너가 비춰졌고, ‘시사저널’표지에 안철수 의원의 얼굴이 나온 게 문제였다. 드라마 방영일자가 17일이고, 배경에 나온 ‘시사저널’은 12일에 발행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선거방송심의위원들은 ‘고의성’보다는 ‘노출여부’만 판단하겠다는 점을 밝히며 제재를 강행했다.

심의위원들도 고충은 있어 보였다. ‘출연효과’를 준 건 심의제재 대상이라고 규정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보자가 노출됐다면 제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내딸 금사월’이 권고를 받는 과정에서도 다수의 위원들은 ‘고의성 여부’는 없다고 판단했으나 한번 허용하게 되면 의도적인 노출을 했을 때도 제재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염려했다.

▲ 지난 17일 방영된 '내딸 금사월'의 한 장면.
선거운동기간 후보자가 예능이나 교양, 드라마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규정은 이전부터 논란이 돼 시민단체가 개정을 요구해온 ‘독소조항’이다. 더욱이 장르가 붕괴된 오늘날 방송상황에 맞지 않는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썰전’의 경우 예능 장르지만 내용은 시사프로그램에 가깝다. 

선거기간 때는 풍자도 못하나

풍자도 때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선거기간이 되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뿐 아니라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제재 대상이 되는데, 이 역시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방송심의규정(이하 심의규정) 19조에 따르면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후보자 또는 선거관련 내용을 소재로 다룰 경우에는 후보자나 정당의 품위를 손상하거나 선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표현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정성’ 심의 기준은 개그 프로그램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개그 프로그램의 정치풍자가 심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2년 대선 때 텔레토비를 여야 정치인에 비유한 tvN 프로그램 ‘SNL’의 인기코너였던 ‘여의도 텔레토비’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심의를 받았다.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박근혜 후보 역할의 출연자가 유독 욕설과 폭력이 심한 반면 안철수 후보 역의 출연자는 순하게 나오고 욕도 안 해 시청자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선거방송심의위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안철수 대표 역할의 ‘안쳤어’의 비중이 크고 긍정적인 묘사가 이어진다는 이유로 ‘의견제시’ 제재를 내렸다. KBS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에서 개그맨 정태호가 대선후보 이름을 거명했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신고되기도 했다.

물론 풍자에 대해 중징계가 내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심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제작진에게 위축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 지상파 PD는 “풍자 아이템을 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지만 선거기간에는 배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MBC 라디오 프로그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의 성대모사를 중단해 외압논란에 휩싸였다. 제작진은 “여러가지를 고려해 성대모사를 하지 않은 것”이라며 외압이 아닌 자체판단이라고 밝혔다.

걸면 걸린다, ‘중립성’과 ‘공정성’

선거기간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각별히 주의해야 할 조항이 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심의규정은 4조에서 “방송은 선거의 후보자와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5조는 “선거에 관한 사항을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9조는 “특집기획 프로그램은 선거기간 중에는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며 사실상 편성에 개입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심의규정 전문을 읽어봐도 중립성과 공정성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결국 심의위원 다수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프로그램을 제재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중잣대 심의’ ‘고무줄 심의’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지 않으면 제재 대상이 된다. 언론의 해설, 논평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다.

결국 선거기간 가장 활발해야 할 후보검증 보도를 언론은 할 수 없게 된다. 지난 17대 대선 정국에서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BBK 사건 관계자인 에리카김을 인터뷰했는데, 공정성에 위배된다며 법정제재인 ‘주의’를 받았다. KBS ‘시사기획 쌈’은 대선후보 검증을 했는데 이명박 후보 검증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다. 두 방송 모두 논란이 되자 선거방송심의위는 각각 ‘문제없음’과 ‘권고’로 수위를 낮추기도 했다. 선거방송심의가 자의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초대해 쇠침대에 눕혀놓고 침대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랐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이 침대처럼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검증해야 할 언론보도를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획일적인 잣대에 맞춰 제재를 남발하고 있다.
심의제재 수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 재보궐 선거 때 JTBC가 여론조사를 인용보도하면서 일부고지항목을 누락해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현상윤 위원과 강형철 위원은 “과거 유사 심의사례를 고려할 때 ‘권고’조치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으나 법정제재로 의결됐다. 심의규정에는 필수고지항목만 언급하고 있을 뿐, 위반정도에 따른 제재수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심의규정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판례처럼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고, 매번 바뀌는 위원들이 매번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공안통 황교안이 선거방송심의위원장?

근본적으로는 규정의 문제가 있지만 위원들이 다양성, 전문성, 공정성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되지 않은 것 또한 선거방송심의가 불공정 논란을 빚어온 이유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방송심의위원은 여야 교섭단체 각각 1인, 선거관리위원회 1인을 비롯해 방송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 및 시민단체 등이 추천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9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 단순히 여야로 구성된 방통심의위와 달리 선거의 경우 공정성과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단체가 위원을 추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무늬만 다양성이다. ‘시민단체’, ‘언론인단체’, ‘학계’ 등은 복수의 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 입맛에 맞는 단체를 추천하는 게 가능하다. 지난 2014년 선거방송심의위는 시민단체 몫으로 공정언론시민연대의 추천을 받았는데,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는커녕 홈페이지 접속도 되지 않는 곳이다.

근본적으로 여당위원이 많은 심의위가 선거방송심의위를 구성하기 때문에 여당에 유리한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 추천 위원 몫을 빼면 사실상 여5 대 야3의 구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전문성을 검증할 수단도 없다. 방송분야 전문성, 심의분야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위원들이 꾸려진다. 공직선거법은 심의위원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당에 가입한 자’ 가 아니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거방송심의위가 친정부 인사를 위한 ‘자리 나눠먹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 선거방송심의위원장인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힌 학자다. 19대 총선 당시 선거방송심의위원장은 현재 국무총리인 공안통 황교안 변호사였다. 2009년 티브로드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의혹으로 청와대 행정관을 사퇴한 김정수 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도 2014년 지방선거 때 선거방송심의위원이었다. 현재 KBS사장인 고대영 역시 같은 시기 선거방송심의위원을 맡았다.

▲ 2016년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 명단.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심의를 맡는 점도 문제다. 이번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 9명 중 4명은 특정 방송사와 이해관계가 있다. 김상균 위원은 MBC시사교양국 PD출신이며 김영덕 위원은 YTN 상근감사를 지냈다. 한상혁 위원은 현직 케이블TV방송협회 미디어국장이며 강신업 변호사는 KBS시청자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종편의 등장,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심의규정 개정이 필요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심의규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졌지만 종편의 등장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종편은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보도를 쏟아냈다. 종편 출범 이후 시민단체는 ‘공정성’ ‘객관성’등 심의규정을 위반했다며 종편 프로그램에 대한 민원을 넣는 등 심의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이중잣대로 볼 수만은 없는 문제다. 종편 도입 이전 지상파가 기본적으로 지켜왔던 패널 검증과 균형을 종편은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나 시민단체 추천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 추천 위원인 조해주 선거방송심의위 부위원장마저 “종편 보도는 건별로 나눠보면 심의제재를 하지 않을 정도의 편향성이라고 해도 이런 보도가 매일 이어져 큰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적극적인 모니터링과 심의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상대가 종편이라는 이유로 모호한 심의규정을 무기 삼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일 선거방송심의위 회의에서 심영섭 위원은 “특정 논평과 견해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종편의 논평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제재하기는 힘들다. 제재를 하려면 사실에 어긋난 경우 등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편향적인 보도에 대한 대응은 필요하지만 보도를 옥죄는 방향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편향적 보도가 이어지는 데 대한 조치는 필요한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선거보도 제재시 감점 강화’를 통해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입장이지만 방향이 잘못됐다. 정부의 내용심의 권한을 강화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기 때문이다.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어쨌건 정부의 심의권한을 강화해 방송 전반의 자율성을 침해하도록 하는 건 문제가 있다. 대신, 자율규제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종편이 선거기간 보도 때 패널과 주장 등에 대해 양적균형이라도 맞추도록 하고 자체 백서 발간이나 시민사회의 평가시스템을 적용하고 이를 재승인 조건에 부과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정만 바꿔서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윤성옥 교수는 “현재 선거방송심의는 과도하게 모호한 규정이 편향적인 위원을 만나면서 문제점이 두 배 커지는 구조”라며 “규정도 바꿔야 하지만 동시에 위원들이 공정하게 구성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도록 보장하거나 심의위가 아닌 선관위가 위원을 선출하는 방식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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