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시작된 녹취록 파문이 방송사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최승호‧박성제 두 언론인을 2012년 파업 국면에서 별다른 사유 없이 해고했다는 MBC 미래전략본부장의 발언이 지난 22일 동석했던 소훈영 전 폴리뷰 기자를 통해 폭로됐다.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은 사회적 공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이 폭로된 지 나흘 만에 YTN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소 전 기자 등은 YTN 간부로부터 외부에서 쉽게 알 수 없는 사내 정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 전 기자가 지목한 이들은 YTN 해직기자들을 포함해 노동조합과 극심한 갈등을 벌여왔던 배석규 전 YTN 사장 시절 승승장구하던 이들이다.

▲ 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2012년 3월 YTN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배석규 OUT’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소 전 기자가 KBS의 일부 인사들과도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밝힌 것을 미뤄 볼 때 주요 방송사 간부들이 극우 매체와 유착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KBS‧MBC‧YTN의 공통점은 2012년 총파업을 겪었던 방송사들이다. 또 총파업에 나설 만큼 노동조합의 힘이 견고했던 사업장이기도 하다. 

언론노조 MBC본부를 중심으로 각 방송사 노동조합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만성화한 언론장악을 타파하려 파업에 나섰다. 노사는 팽팽하게 맞서며 명분 싸움을 했다. 

정권이 낙하산 사장을 내세워 인사권과 편집권을 장악하고, 방송을 통제하는 상황에 시청자들은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2012년 ‘김재철 사장 퇴진’ 서명에 70만 명이 참여하며 언론노조 MBC본부 170일 파업에 힘을 실어줬던 것도 ‘언론과 방송의 자유’라는 명분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가 정치 파업을 하고 있다”는 사측의 낡은 구호는 먹히지 않았다.

▲ KBS·MBC 두 공영방송사의 노동조합은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기치로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2012년 3월 총파업에 돌입하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여론전에서 밀린 방송사 간부들이 찾은 것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아군’이었다. 기사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총부리만 적을 향하면 됐다. 

소 전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사 간부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극우 매체들은 사측에 반하면 ‘빨갱이’라는 논리로 노동조합을 공격했다.

2012년 대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언론사 간부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들 매체를 이용했다. 노조가 성명을 내면 어김없이 극우 매체들은 비난이 담긴 기사로 전위대 역할을 했다. 

정당성 없는 권력은 영세한 극우 인터넷 매체들과 손을 잡았고, 고위 간부가 ‘파이프라인’을 자처하며 청탁에 쩔쩔매는 촌극을 벌였다.

▲ KBS·MBC 두 공영방송사의 노동조합은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기치로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170일 파업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번 녹취록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방송사 간부들이 권력의 교체를 두려워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힘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MBC의 한 간부는 MBC를 항공모함에 비유했다. “MBC라는 항공모함을 뺏기는 것과 진지 하나를 뺏기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면서 “‘이만큼 왔으니 계속 가겠지, 그러다간 어느 순간 그쪽에서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것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백종문 녹취록의 핵심은 정당성 없는 권력으로 징계와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며 기자와 PD들을 짓밟아 왔던 MBC 경영진이 여론의 압박에 노심초사하며 극우 매체들과 손잡고 여론 조작을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는 데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진상 조사를 위한 상임위 개최를 요구했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일부 이사들도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방송인총연합회는 안광한 MBC 사장과 백종문 본부장의 사퇴와 함께 해고자들의 즉각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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