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7일 ‘2016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3기 위원회가 제시한 과제를 완성하고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정립하는 방향”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지상파 UHD 도입지원’,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방송의 공적책임 제고’ ‘방송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이 골자인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국민에게 혜택이 되는 것 같지만, 따져보면 국민이 아닌 사업자에게 긍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개인정보나 시청권 등 권리가 침해되는 내용도 적지 않다. 

“방송의 공적책임 제고” → 수신료 더 내야 공적책임 커진다?

종편특혜 철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방통위는 ‘방송의 공적책임 제고 정책’으로 엉뚱하게도 ‘수신료 인상’카드를 꺼냈다. 최성준 위원장은 “수신료 산정기구 설립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나는 수신료 인상이 아닌 현실화라는 용어를 쓴다”고 밝혔다. 

수신료가 올라간다고 해서 방송의 공적책임이 제고된다는 보장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수신료 인상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인상된 수신료로 KBS 광고가 줄어드는 게 ‘공적 책임 제고’라고 볼 수 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수신료 인상으로 줄어든 KBS 몫 광고는 종합편성채널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종편을 겸영하는 신문들이 지상파에 유리한 규제완화 정책이 언급될 때마다 비판기사를 쏟아내지만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는 큰 반발을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자사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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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통위 제공.
 
“방송콘텐츠 경쟁력 강화”→ 광고천국 시청자지옥
 
방통위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정책’의 일환으로 엉뚱하게도 광고규제완화를 꺼내들었다. 최성준 위원장은 “협찬고지 형식규제 완화, 가상광고 활성화, 방송광고 금지품목 완화 협의 등 광고 및 협찬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지금보다 더 많은 종류의 광고를 더 오랜 시간동안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협찬고지 형식규제 완화’는 현재도 방송이 음성적인 협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여러 종류의 협찬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가상광고 활성화’는 방송 중 갑자기 튀어나오는 CG광고를 더 많은 장르에, 더 오랜 시간동안 나오도록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다. ‘방송광고 금지품목 완화’는 현재 금지된 흡연, 도박, 의료광고 허용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응한 방송통신정책’을 언급하면서도 광고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돈 내고 보는 VOD에 붙는 2~3편의 광고, 채널을 돌리는 순간 광고가 뜨는 재핑광고, 화면을 가리는 광고 이미지를 리모컨을 통해 누르면 제품구입으로 이동하는 트리거광고 등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규제의 틈을 이용한 ‘시청권 침해’사례로 비판 받았다. 그러나 방통위는 해당 광고를 ‘신규 기법 광고’라며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책을 설명하며 ‘시청권 침해’나 ‘방송의 상업화 문제’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세계최초 지상파 UHD도입”→ 수도권 사는 UHD TV 보유자‘만’

최성준 위원장은 “2017년 2월부터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이 차질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UHD는 HD보다 화질이 4배 선명한 방송을 말한다. 그러나 내년부터 누구나 지상파UHD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건’이 있다. UHD TV를 구입해야 함은 물론이고 별도의 수신안테나도 필요하다. 방통위는 TV에 수신안테나를 내장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TV 단가가 오르게 돼 제조사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역차별도 있다. 내년에 당장 지상파 UHD를 보려면 수도권에 거주해야 한다. 일부 시군지역은 2021년까지 지상파 UHD를 볼 수 없다. 수도권에 산다고 해서 내년부터 모든 프로그램을 UHD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내년 지상파는 전체편성 중 5%만 UHD로 제작하면 된다. 100% 편성은 2027년까지 걸린다. 

지상파가 이 계획을 달성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UHD콘텐츠는 HD콘텐츠에 비해 제작비용이 많이 드는데 경영난에 처한 지상파가 UHD콘텐츠 제작비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물론 방통위는 “지상파에 허가조건을 부과하고 지키지 않으면 제재하는 등 관리감독하겠다”고 밝혔지만 솜방망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종합편성채널이 콘텐츠 투자계획이나 편성비율을 지키지 않았지만 실효성 없는 ‘시정명령’을 받았을 뿐 재승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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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파 UHD 방송. 사진=방송협회 제공.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 개인정보 팔아 돈 번다
 
최성준 위원장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맞춤형 광고 등 새로운 서비스의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의 활용이 중요해짐에 따라 보호와 활용을 조화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개인정보를 사업자들이 광고나 마케팅에 쓸 수 있도록 넘기겠다는 이야기다. 방통위는 안전장치로 “개인정보의 비식별화ㆍ익명화 조치 근거를 신설하고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에 한해 선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문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방통위가 말하는 ‘알아볼수 없는 정보’는 비식별화를 의미하는데, 비식별화는 다른 데이터와 결합하면 언제든 재식별 될 수 있다. 예컨대 ‘A기업 소속 직원 명단’에서 ‘홍길동’이라는 직원의 실명을 ‘A’ ‘B’등으로 바꿔 비식별화를 해도 직원의 키, 몸무게, 주소 등이 담긴 데이터와 결합하면 ‘홍길동’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방통위는 “이용자가 원치 않을 경우 사용을 중지하도록 하는 사후거부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은 개인정보를 산업에 쓴다는 것이다.

'추진' '검토'? 따져보면 공허한 이야기들 

방통위는 매년 비슷한 계획을 되풀이 하는 것도 많은데, 주로 특정 사안을 추진할 필요성은 있지만 업계의 반발이 큰 경우다. 최성준 위원장은 “단말기유통법의 추진 성과를 점검하고 점검결과를 토대로 제도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떻게 제도를 보완할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핸드폰 제조사와 통신사의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는 ‘분리공시제 도입’이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이 같은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송신 분쟁 등 사업자간 갈등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지만 방통위는 ‘분쟁해결 기준제시’라는 공허한 계획을 내놓았다. 최성준 위원장은 “사업자 간 협의기준을 제시하여 분쟁발생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도록 재송신 가이드라인 마련, 보편적 시청권 범위 구체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구속력이 없을뿐더러 방통위가 주관하는 재송신협의체는 당사자인 지상파가 보이콧하고 있다. 결국 언제든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

주파수 압축기술의 발달로 지상파에 주파수가 남아 돌아 추가로 채널을 만들 수 있지만 방통위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방통위는 2016년 업무계획에서 MMS(지상파다채널서비스) 정책으로 이미 시범도입한 ‘EBS MMS도입 방송법령 정비’만 언급했고, 다른 방송의 MMS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상파에 채널이 늘면 지상파에 광고몫이 늘어나 종편 등 유료방송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광고단가를 위한 시청률과 독과점 규제를 위한 시청점유율에 TV뿐 아니라 스마트폰 시청, VOD등을 합산하는 통합시청점유율 도입 논의 역시 업계의 반발로 방통위가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2월 시범조사 결과를 공개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데이터 수집 등에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론집중도조사처럼 자료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으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올해 말쯤 윤곽이 나오겠지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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