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가 정당하다는 최초의 판결이 나왔다. 심의위의 ‘막장드라마’ 심의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MBC가 지난해 방영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에 대한 심의제재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제재는 정당하다”고 25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상파 방송사는 청소년보호시청시간(가족시청시간)대에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서적 윤리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청소년보호시청시간은 오후 7시~10시까지이며 압구정백야는 오후 8:55분부터 30분씩 방영했다.

그동안 방송사가 시사·보도프로그램에서 심의위 제재에 불복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드라마 심의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압구정 백야’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으로 주인공 백야(박하나)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 서은하(이보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의 아붓아들을 유혹하는 줄거리다.
▲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
 
‘압구정 백야’는 지난해 3월과 5월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와 ‘경고’를 받았다. 제재 사유는 막말, 폭력묘사, 점술 등 비과학적 내용, 지나친 간접광고 등이었다. 실제 의결되지는 않았지만 방송심의소위원회 위원 5명 중 4명이 ‘프로그램 중지’의견을 내기도 했다. 

특히 서은하와 백야가 싸우는 장면이 심의에서 두 번째 법정제재를 받는 원인이 됐다. 서은하는 자신의 며느리가 되려는 친딸 백야에게 “버러지 같은 게, 인간 같지도 않은 거 밥 해먹이고” “너 같은 미물보다 훨씬 더 예쁘고 매력 있고 젊고 능력 있는 여자 찾아서 붙여 줄 거니깐. 헌신짝처럼 버려지게”라는 대사와 함께 물세례를 하고 따귀를 때리는 등 무차별 폭행한다. 그러자 백야는 자신이 친딸이라고 밝히며 “당신 같은 사람이 날 낳았다는 게 끔찍해. 버러지라고 했지? 버러지가 버러지를 낳았지 그럼 사람이 낳았겠어?”라고 맞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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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 화면 갈무리.


MBC는 심의제재가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MBC는 심의제재에 불복해 소를 제기하며 “대화 상황과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사회통념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MBC는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방영됐다고 하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해 시간의 구애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점,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에 대하여 이 사건 처분처럼 중한 조치를 취한 적이 없어 형평에 어긋나는 점”등을 언급한 뒤 “제재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줄거리의 경우 ‘표현의 자유’영역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문제는 ‘청소년보호시간대’에 ‘막장극’을 방영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이 사건 방송을 방영한 방송편성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드라마 내용에 관해 재판부는 “대사 및 극의 내용이 사회적 윤리의식, 가족의 가치를 저해하고, 가족구성원 간의정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또한 MBC가 ‘압구정 백야’ 방영 이전에 막장드라마로 심의제재를 받은 ‘오로라 공주’ 심의 과정에서 “다시는 임성한 작가와 계약하지 않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다”고 밝혔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판결로 인해 청소년보호시간대에 인물설정이나 소재가 자극적인 드라마 제작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MBC의 ‘막장드라마’는 심의위에서 지속적으로 법정제재를 받아왔다. 지난해 법정제재는 받은 드라마는 총 8편인데 그 중 6편이 MBC 드라마다. MBC ‘폭풍의 여자’, ‘압구정 백야’, ‘앵그리맘’, ‘이브의 사랑’, ‘내딸 금사월’, ‘화려한 유혹’ 등이다. 이 외에 SBS ‘돌아온 황금복’, ‘사랑만 할래’가 법정제재를 받았다.

최근 심의위에서는 ‘내딸 금사월’이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연이어 법정제재를 받았다. ‘△며느리의 혼외자식 바꿔치기 △전 남편과 재결합 위해 자녀들 앞에서 자살협박 및 강제 키스 △본처와 전처가 한 집에 살며 본처에게 산후조리 돕게하는 장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미친 사모님” “식충이”로 표현 △장인이 사위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이를 무마하려는 내용 △사고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인멸하거나 목격자 등을 납치하는 내용 등이 문제가 됐다.

심의제재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지상파 방송이 시청률 경쟁을 위해 자극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향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묵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장은 지난 13일 ‘내딸 금사월’ 심의에서 ‘미생’ ‘응답하라 시리즈’ 등을 예로 들며 “종합편성채널과 tvN이 대한민국 드라마의 새로운 흐름을 개척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공영방송인 MBC는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시청률 30%라고 좋아하지 말고, 사회적 책무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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