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동물권선거운동본부(동물권 선본)’가 23일 출범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란 슬로건을 내건 동물권 선본은 오는 4·13 총선 때까지 동물도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존중할 것을 주장하고 학대와 착취로부터 동물을 보호할 공약을 제시해 나갈 예정이다.

녹색당은 23일 오후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까페에서 ‘녹색당 동물권 선거운동본부 출범식’을 열었다. 당내 동물권 의제를 대표하는 황윤 비례대표 1번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공약 발표 및 동물권을 둘러싼 토론이 진행됐다.

‘갈 곳을 잃은 동물들’ 퍼포먼스가 출범식을 열었다. 선본원이기도 한 공연자 3명은 좁은 틀에 갇혀 하염없이 바닥을 긁는 불안증세(전형행동)를 보이는 동물, 쇠사슬에 묶여 한 발짝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 등을 몸으로 표현하며 동물 학대 문제를 환기했다.

   
▲ 동물권 의제를 대표하는 황윤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가 출마의 변을 밝히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세형 선거운동본부장은 “선본은 황윤 후보를 국회에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면서 “동물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녹색당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실현할 건지 알려, 궁극적으로 사회의 동물권 인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할 것”이라 밝혔다.

녹색당이 밝힌 주요 동물권 공약은 △헌법 차원의 ‘동물보호의무’ 명시 △‘감금틀 사육방식’ 금지 및 동물복지농장 인증제도 전 축산업 확대 추진 △처벌 및 재발방지책 강화한 동물보호법 개정 △10년 내 동물실험 50% 감축 △동물원 등 사육시설 허가제 도입 등이다. 조 본부장은 “녹색당은 동물이 보호대상의 생명임을 명문화할 것”이라면서 “산란계들은 A4용지 반으로 접은 크기의 닭장에 평생 갇혀서 알만 죽어라 낳다가 폐기처분 된다. 이런 식의 감금틀 사육, 공장식 축산을 금지할 것”이라 밝혔다.

동물보호를 위해 앞장서는 각 분야의 인사들이 녹색당의 공약에 화답했다. 생명다양성재단 소속 김산하 박사는 “동물과 자연보다 더 약자는 없다. 개발과 보존의 대립구도 속에 이미 코너에 완전히 몰릴 대로 몰린 약자”라며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날이다. 현명한 어른들이 동물의 소리를 듣고 ‘우리가 지구를 살려보자’ 이런 생각하면서 이야기 도입부가 시작되는 그런 순간”이라며 축사를 전했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동물권 의제를) 국회로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정당이 나타나서 감사드린다”고 발언했다.

황윤 후보는 녹색당이 동물권을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황 후보는 동물 학대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작별’,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을 연출한 바 있다. 그는 “비인간 동물에 관한 문제에선 왜 호불호나 취향의 문제로만 생각할까.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멸종의 벼랑 끝에 내몰리며 인간은 오락 사업의 수단으로 끊임없이 (동물을) 착취하고 있다”면서 “침묵이야말로 가장 동의의 표현이다. 동물애호가가 아닌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으로서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후보는 동물권은 인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신종플루는 돼지만 걸리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된 것이다. 멕시코의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원인으로 지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후보는 “자본과 이윤을 위해 생명을 극한으로 착취하고 병에 걸리면 살처분하는 폭력이 성폭력, 노동 착취에 대한 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나 혼자의 생각인가”라 반문했다.

   
▲ 어미돼지는 몸을 앞뒤로 돌리지도 못하는 감금틀에 갇혀 6~7회의 인공수정으로 임신, 출산을 반복하며 살다가 성적(새끼낳는 수)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사진=녹색당 홈페이지
 
   
▲ 패널 6명이 참가한 가운데 토크쇼 '왜 동물권인가'가 열리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출범식은 토크쇼 ‘왜 동물권인가’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토크쇼 참가자 6명 각각이 △실험동물 △농장동물 △반려동물 △길고양이 △야생동물 △전시동물 등 6가지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농장동물 학대에 대해 김현지 동물보호시민단체 활동가는 “(사육장에서) 닭은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잘린다. 열악한 사육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이 부리로 서로 쪼는 것을 예방한다는 이유”라면서 “감금틀 자체를 해결해야 한다. 유럽 곳곳에선 감금틀을 법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 전공 수업인 ‘동물실험’을 거부한 이권우 씨는 “과학적으로 동물권을 주장하기 위해 생명과학과에 진학했는데 동물실험을 할 수 없었다”며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동물실험을 비판했다.

전채은 대표는 “‘동물한테 가둬도 되냐고 물어봤냐’고 동물원에 직접 물어보면 ‘그런 걸 왜 물어보고 가두냐’며 웃는다”면서 “동물을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태어나게 하고 전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폭력적 관계의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생명 존중을 가르치려면 여기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녹색당이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

동물권 선본은 앞으로 녹색당의 공약을 온·오프라인으로 알리며 현안에 따라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동물보호단체들과의 정책 협약, 토론회 등도 계획돼있다. 조 본부장은 “선본에 총 37명 정도가 있고 11명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에게 동물권을 쉽게 알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동물권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1월23일 '녹색당 동물권선거운동본부' 출범식에 참석해 황윤 후보의 출마의 변을 듣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녹색당의 동물권 선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들과 관련된 기사엔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 무슨 동물이냐” “일자리부터 해결해라” 등의 댓글이 상당수 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조 본부장은 “구제역 살처분도 십여 년 전까진 이렇게 자주 발생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매년 발생한다. 살처분으로 인한 엄청난 환경파괴도 심각한 문제”라며 “동물만 위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의 얘기를 같이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황 후보는 “신종 플루, 돼지독감, 조류독감 등 인수공통전염병을 보면 동물에 대한 학대가 그대로 인간에게 바이러스로 온 것이다. 동물문제와 인간문제를 별개로 보지 않는다”면서 "간디는 '한 나라의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동물권 의제는 대중적 공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 김수민 녹색당 총선대책본부 대변인은 “동물권을 낸다 하니 많은 분들이 호응했고 '녹색당 관심 없었는데 동물권 때문에 녹색당 지지하겠다'라는 반응도 상당했다.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며 “오히려 녹색당은 동물권을 주장할 때 뒷따라 오는 대중적 거부감에 대해 스스로 걱정하는 것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다른 정당에서 동물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저변이 넓어지는 방증”이라 덧붙였다.

구체적인 정책 설계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김 대변인은 “‘공장식 축산’의 현실 자체를 알리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법이 진척이 안 되는 이유는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논의와 고민은 앞으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일거에 해결한다는 생각은 없고 공장식 축산을 하나하나씩 줄여가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문제의식은 대단히 근본적이고 거대하게 갖되 점진적인 해결을 계속해나가며 의미를 찾을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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