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송평가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야당추천 김재홍 부위원장은 안건상정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2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평가 때 방송보도에 대한 공정성 및 객관성 심의결과 감점을 2배 늘리는 내용의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처리했다. 안건은 찬성3, 반대1로 의결됐는데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여당추천 이기주 ·김석진 상임위원이 찬성했으며, 야당추천 고삼석 상임위원은 반대했다. 야당추천 김재홍 부위원장은 의결을 거부하고 퇴장했다. 

방송사는 3년~5년 주기로 방통위로부터 재승인 심사를 받게 된다. 이때 방통위는 방송평가 결과를 토대로 재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실제 재승인에 탈락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방송평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방송사의 생존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사가 방통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도에 대한 벌점을 강화하는 건 언론의 비판보도를 위축하는 효과를 불러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 같은 이유로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등도 반발해왔다. 김재홍 위원은 “객관성, 공정성, 선거보도에 대한 심의결과를 2배 강화하는 건 위헌적이다. 민주주의 기본가치인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앞서 언론노조는 21일 오후 성명을 내고 “심의 결과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방통위가 편파 평가, 정치 평가로 방송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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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는 기존에 행정예고한 안이 논란이 되자 수정안을 공개하고 의결했다. 그러나 논란이 된 ‘심의제재 감점 강화’는 그대로다. 방송사가 공정성, 객관성, 선거보도, 재난보도 심의기준을 위반할 경우 감점이 2배로 늘어나며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여부 평가’감점 역시 기존의 1.5배로 늘어났다.

다만 공정성, 객관성, 선거보도, 재난보도 심의의 경우 ‘같은 심의제재를 3회 이상 반복할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새로 붙었다. 예를 들어 TV조선이 공정성 위반으로 심의 제재를 2회 받으면 벌점이 없지만, 3회부터는 2배 이상의 벌점이 붙는다. 그러나 1년에 한 방송사가 같은 규정에 제재를 3회 이상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심의위의 법정제재는 주의, 경고, 관련자 징계, 시정명령, 과징금 처분으로 나뉘며 각각 1점, 2점, 4점, 8점, 10~15점 감점을 받는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사진=금준경 기자
 

개정안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절차적인 문제도 거론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속도전’과 ‘일방통행’으로 일관했다고 야당위원들은 지적했다. 방통위는 평가규칙을 개정하면서 김재홍 부위원장이 속한 방송평가위원회와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만들었다. 또,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기도 했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이 같은 안건은 토론과 합의가 중요한데 합의 거치지 않고 다수의 의사에 따라 전체회의 안건으로 올리게 됐다”고 지적한 뒤 퇴장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당장 방송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안건을 올린 것”이라며 ‘속도전’을 부정했지만 이번 개정안이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언론 재갈 물리기’의 일환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심의위는 직권을 강화하는 3자 명예훼손 심의규정을 개정했으며 언론중재위원회는 기사와 댓글을 삭제하는 등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뿐 아니라 5인 이하 인터넷신문 등록을 취소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 정부여당의 포털 때리기와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등 언론자유를 위축하는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고삼석 위원은 “시기적으로도 민감한 지금 밀어붙이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다른 기관의 조치들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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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여야 6:3 구도로 구성된 심의위가 ‘정치심의’, ‘고무줄심의’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심의결과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고삼석 위원은 “심의위 심의결과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심의위는 심의의 불공정성이 제기돼 파행되기도 했다. 지난 19일 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야당추천 장낙인 상임위원은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보도에는 ‘법정제재’가 내려지는 반면 야당을 폄하하는 보도에는 경징계인 ‘행정지도’를 내리는 일이 반복된다며 “다시는 방송소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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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평가 개정안과 기존안 비교.
 

야당 위원들의 반발에도 여당 위원들은 의결을 강행했다. 이기주 위원은 “느닷없이 언론자유침해나 헌법가치 침해를 이야기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면서 “그동안 많은 내부논의를 거쳤고 수정안을 내놓았다.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지만 위원 1명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걸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석진 위원은 “우리는 정부기관”이라며 “기관은 정책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엄중한 직무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이익단체, 사업자단체의 이해관계 걸린 사안에 너무 그쪽 의견을 반영하면 정부가 존재한다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홈쇼핑 채널 역시 과장 및 허위광고 관련 심의규정을 3회 이상 위반하면 기존에 비해 2배 감점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된 기사가 정정보도가 될 경우 해당 방송사는 6점 감점을 받는다. 허위보도 관련 법원판결 또는 정정보도 판결이 내려질 경우에는 8점 감점 받는다. 개정안은 방송평가에서 운영·내용·편성 등 3개 평가영역 가운데 내용 및 편성 영역의 배점을 늘리고, 대신 운영 배점을 줄이기도 했다. 새로운 평가기준은 2월1일 보도부터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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