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정당에겐 히말라야 암벽타기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수직 운동장’이다”

하승수 녹색당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총선 준비를 두고 한 말이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인 하승수 후보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로 등록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하 후보는 혜화, 동대문, 서교동, 여의도 등을 돌아다녔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녹색당을 알리는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고 있다. ‘수직운동장’과 같은 불리한 경쟁에 들어선 녹색당의 방식이다.

“찍을 답이 없을 때 녹색당은 답안지를 바꿉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12도를 가리킨 지난 21일 정오 하승수 후보는 당원 4명과 함께 여의도 새누리당사 건물 앞에 섰다. 하 후보가 십자형 도로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는 동안 나머지 당원들은 피켓을 들거나 시민들에게 ‘녹색당 명함’을 나눠줬다.

미세먼지 문제부터 핵에너지 반대까지 정당연설회 의제는 매번 바뀐다. 이날 의제는 ‘기득권 정치 개혁’이었다. 하 후보는 전직 국회의원이 받는 ‘연로회원 지원금’과 거대 양당의 국고보조금 낭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노인분들이 기초연금으로 월 20만 원을 받을 동안 대한민국 전직 의원은 만 65세가 지나면 월 120만 원을 받는다”며 “과거 국회가 특혜성 연금 없앤다 했지만 없애지 않았다. 기득권 정치의 폐해”라 발언했다.

   
 
 
   
▲ 1월21일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하승수 녹색당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정당연설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어 “연간 800억이 기존 정당들에 쓰이는데 대부분이 자기 정당을 유지하는 불필요한 데 낭비된다”며 “우리의 세금이 거대 정당들 밥그릇이 아닌 정책개발에 소중하게 쓰일 수 있도록 정치 제도가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후보는 “녹색당은 한국 기득권 정치 구도를 깨기 위한 여러 변화를 말씀드리기 위해 나왔다”며 “선거 때마다 찍을 정당이 없다 한탄하는 게 아니라 답안지 바꾸는 게 필요하다. 녹색당은 답안지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녹색당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지나는 시민들의 상당수가 “처음 들어본 당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몇몇 시민은 잠시 서서 하 후보의 연설을 들었다. 한 시민은 “하는 말에 관심이 가 서서 봤다. 120만 원 이건 진짜 부당하다. 바뀌어야 한다”며 “더 크게 하라”고 주문했다.

녹색당 명함엔 ‘전월세에 상한제를’, ‘원전 대신 안전으로’, ‘동물에게 존엄을’, ‘행복농업 건강먹거리’ 등 녹색당의 7대 의제가 적혀 있었다. 명함을 배부할 때 당원들은 “안녕하세요. 녹색당이라고 합니다”라고 일일이 소개했다.

녹색당은 지난주부터 매일 2~3차례 정당연설회를 열었고 현재 전국 20여 곳에서 함께 하고 있다. 서울 동작갑 예비후보인 이유진 공동운영위원장도 하 후보처럼 매일 정당연설회를 열고 있다. 김은희 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본부장은 “전국 당원들의 힘을 모아 100여 곳으로 늘릴 예정”이라며 “8000에 가까운 녹색당 당원이 모두 진성당원인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제도·언론·자금… 군소정당 고사 직전, 숨통 좀 트여줬으면

녹색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인지도가 미약하지만 군소정당에게 불리한 선거제도와 언론환경, 부족한 자본 때문에 경쟁에서 더욱 살아남기 어렵다. 하 후보가 정당연설회를 고집하는 이유에는 의제 중심 선거운동과 길거리 정치를 회복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부족한 탓도 있다.

이날 오전 보라매역에서 정당연설회를 진행한 곽빛나 이유진 후보 선거사무소 사무장은 “녹색당 후보로선 3월31일(선거기간개시일) 전까지 명함을 돌리거나 어깨띠를 두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13일 전부터 비로소 후보의 정책. 공약을 알리는 유세를 허가한다. 13일은 인지도가 낮은 정당으로선 공약과 후보를 알리기에 너무 부족한 숫자다. 후보들이 어깨띠를 벗고 정당연설회에 나선 이유다.

   
 
 
   
▲ 21일 아침 서울 보라매역 근처에서 이유진 녹색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안상섭씨가 녹색당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수막, 공보물 등으로 알릴 방법은 있으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군소정당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체 유권자에게 보낼 공보물에만 최소 2억7천만 원이 필요하다. 김은희 본부장은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선거를 치를 수 있어야 하는데, 선거기탁금부터 1500만 원이고 득표율 10% 넘지 않으면 선거비용도 지원받을 수 없다. 기득권 정당, 원내 정당만 좋아라 할 것”이라 비판했다.

유권자가 정당과 접촉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는 언론이지만 군소정당을 보도하는 언론은 적다. 자본이 충분한 거대 정당은 공보물 물량공세를 넘어 방송도 이용할 수 있고, 이렇게 투자한 만큼 15% 이상 득표율을 얻으면 선거비용을 보전받는다. 언론이 군소정당의 입지를 보완하지 못하는 가운데 규모의 경제가 정치에 적용되는 셈이다. 하 후보는 이를 두고 ‘수직이 된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낮은 인지도를 보완하기 위해 선거 준비를 신속하게 했다. 하승수 후보는 “선거 직전엔 낮은 인지도 극복이 훨씬 어려워 후보나 의제를 빨리 선정하고 선거본부도 빨리 띄웠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가장 빨리 선정했다. 비례대표들은 12월부터 전국 북콘서트를 열며 의제 공론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녹색당은 앞으로도 길거리에서 시민을 직접 만나는 데 방점을 찍을 예정이다. 김은희 본부장은 “언론 쪽이 통제된 상황에서 우리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고 사라지고 있는 거리정치를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직접 시민들의 눈을 보고 녹색당을 얘기할 것”이라 말했다.

철저한 의제중심 정당 원칙, 통할 수 있을까

김 본부장은 “녹색당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지역 민원성 공약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역구 후보들이 표 동원 기제로 개발공약을 남발해 오히려 선거기간에 중요현안이 망각된다는 점에서다. 녹색당은 무의미한 개발 공약을 줄여야 하고 지역 민원은 기초의원이 책임지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 후보는 “지역 개발도 더 큰 정책 방향에 연계돼야 한다”며 “동작에 있는 에너지자립마을처럼 대안에너지 전환 의제와 지역 공약을 연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제 중심 선거운동’도 녹색당의 주요한 특징이다. 녹색당 비례대표는 각자의 의제를 대표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 후보는 ‘동물권’,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 힘썼던 이계삼 후보는 ‘탈핵’, 기본소득 운동을 했던 김주온 후보는 ‘기본소득’, 환경운동가 구자상 후보는 ‘대안에너지’, 사회적기업 대표 신지예 후보는 ‘주거권’을 자신의 의제로 삼고 있다.

   
▲ 20대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들. 사진=녹색당 홈페이지
 

의제마다 선거본부도 꾸려질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당원들이 관심있는 의제 선거본부에 모여 이걸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지지하게 할 건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권선거운동본부는 오는 23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녹색당은 현재 비례대표 후보 5명과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5명을 두고 있다. 각 지역당의 논의에 따라 지역구 후보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역구 논의를 마무리 한 후 다음 달 중순 대의원 선거 결의 대회를 통해 본격적인 총선 돌입에 들어갈 예정이다. 동물권, 기본소득, 탈핵, 미세먼지 등 의제별 선본도 점차 꾸려져 선거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녹색당을 만날 수 있도록 당원들의 적극적인 1인 시위, 정당연설회 등도 논의 중이다. 녹색당은 총선이 끝날 때까지 전국 당원들이 100여 곳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있다.

선거자금 문제는 가장 큰 장벽이다. 녹색당은 모금 캠페인을 활발히 열고 있다. 수첩, 책 등을 팔고 있으며 특별 당비 모금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강원도의 농민 당원이 모금에 이용하라고 배 100상자를 기부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이번 총선엔 모든 유권자에게 공보물을 돌리는 게 목표다. 지난 총선엔 (돈이) 부족해 일부에게만 공보물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내진입 가능성에 대해 곽 사무장은 “녹색당이 정치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거대 정당들도 역사가 깊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며 “미래를 보면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전부 다 당선될 거라 생각하진 못하지만 지금의 목표는 정당득표율 3%”라며 “녹색당의 원내진입은 300명 중 1명이라는 수치가 아니라 대안정당의 비전가진 존재가 국회에 들어가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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