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케이블 가입자의 TV에서 광고 대신 검은 화면이 나갈 뻔 했다. 지상파는 케이블에 공급하던 VOD를 끊었고, 케이블은 지상파 광고를 끊겠다며 보복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해 협상기간이 연장됐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언제든 제2, 제3의 ‘VOD대란’과 ‘광고 블랙아웃’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플레이어들은 서로가 ‘반칙’했다며 비난을 일삼고 있는데 심판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대처는 매번 ‘늦고’ ‘소극적’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치킨게임이 반복되는 사이 IPTV가 시장을 삼키고 있다. 방송의 통신종속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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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은 왜 지상파 광고를 끊으려했나

지난 13일 유선방송사업자(SO)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의 단체인 SO협의회는 16일부터 MBC광고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케이블 플랫폼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는 이용자들은 광고화면 대신 검은 화면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케이블이 MBC 광고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은 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VOD 가격협상이 기한을 넘기자 지상파가 케이블에 VOD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MBC를 협상대표로 세운 지상파는 공격적인 협상을 벌여왔다. 케이블이 지상파에 지급하는 지상파 VOD가격을 15%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전까지는 VOD 수익을 판매량 기준으로 배분했지만 실제 VOD 시청여부와 무관하게 가입자 1인당 93원(CPS)으로 바꾸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IPTV가 지상파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케이블도 사실상 지상파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풀릴 기미가 보이던 협상은 ‘재송신 분쟁’이 얽히며 난항에 빠졌다. 지상파가 재송신수수료 분쟁 중인 유선방송사업자(SO)에 VOD 공급을 끊겠다고 밝힌 것이다. 재송신은 유료방송 플랫폼이 지상파채널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상파는 유료방송 플랫폼에 채널을 제공하는 대가로 가입자당 재송신수수료(CPS)를 받는데, 기존에는 ‘디지털 케이블’에만 받았지만 ‘아날로그 케이블’에도 요구하면서 지상파와 SO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케이블은 “재송신수수료는 법정에서 판단한 문제이자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반면 지상파가 회원사인 방송협회는 “재송신 계약을 맺지 않고 불법 서비스를 해 온 개별 SO들에 VOD 공급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케이블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지상파는 케이블업계가 VOD협상에서 ‘케이블TV VOD’를 통해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점이 난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상파와 케이블의 VOD협상은 협상기한을 넘겼고, 지상파는 케이블에 VOD 공급을 끊었다. ‘콘텐츠’를 쥔 지상파가 VOD 공급을 끊는 이유는 케이블에게 가장 치명적인 가입자 이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이 지상파 VOD없이는 장사를 하기 힘드니 저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플랫폼’을 쥐고 있는 케이블은 망의 힘을 활용해 반격에 나섰다. 케이블이 지상파의 광고를 끊게 되면 지상파의 광고수익이 급감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케이블이 광고송출 중단을 택한 건 지상파의 논리를 반박하려는 차원도 있다. 그동안 재송신분쟁에서 케이블의 논리는 “케이블 덕에 수신가능 인구가 늘어 지상파가 광고효과를 키웠다”는 입장이었고, 지상파는 “지상파의 광고효과가 커지지 않았으며, 콘텐츠를 무단으로 송출하는 건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13일 SO협의회 긴급총회에서 최정우 케이블TV VOD 대표가 “지상파가 그동안 강조한 바를 보면 케이블이 수신영역을 확대해 지상파 수익에 기여했다는 점을 부정하고 있으니 광고송출중단으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을 것”이라고 비꼰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지상파의 VOD공급 중단에 대한 케이블진영(SO협의회)의 비판 결의문(아래)과, 케이블의 지상파 광고송출중단 결의에 따른 지상파진영(방송협회)의 보도자료.
 

문제 해결? ‘잠시 휴전’일 뿐

방통위가 개입하면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고송출 중단이 예고된 날인 15일 오전 케이블과 지상파는 1월말까지 협상을 연장하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협상기간 동안 지상파는 케이블에 “VOD공급 재개”를, 케이블은 “방송광고 중단 취소”를 결정했는데 어디까지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유효한 조치다. 보름 더 기한이 늘어난다고 해서 안 풀리던 협상이 진전을 보일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이 기간 두 사업자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지상파는 지난주 “씨앤앰이 가입자 수를 측정할 때 일부를 누락했다”는 판결을 받아냈고 19일 “다른 MSO로 소송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며 케이블 전반에 대한 압박용으로 쓰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지상파의 재송신수수료의 적정가를 ‘190원’으로 책정한 판결이 나왔는데, 케이블은 이를 빌미로 “현재 지상파가 요구하는 재송신수수료 430원은 턱 없이 비싸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간을 좀 벌었다곤 하지만 다시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방통위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상파와 방통위는 케이블의 광고송출중단을 방송법상 위법행위로 간주할 방침이지만 케이블은 “광고중단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정수 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은 “법무법인을 통해 판단한 결과 방송프로그램과 방송광고는 엄격히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방송프로그램 송출 중단은 불법이지만, 방송프로그램이 아닌 광고송출 중단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방송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느냐, 포괄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법을 그대로 해석했을 때는 케이블의 주장이 타당하다. 방송법 상 방송프로그램과 광고가 분리된 개념이고, 케이블은 광고를 송출할 의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법 전반의 맥락과 취지를 고려했을 때 방송편성에 관한 규제나 간섭을 금지하고 있고, 이 ‘편성’의 개념에는 방송과 광고가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케이블은 법정에서 결론을 짓겠다는 입장인데 법정다툼이 이어지게 되면 그동안 케이블은 광고송출중단을 압박카드로 언제든 쓸 수 있다.

이용자 볼모 됐지만 방통위는 늑장대처

지상파와 케이블 중 누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누구의 잘못이 큰지는 입장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모든 피해는 결국 이용자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케이블가입자 1200만 명은 지상파VOD를 못 보고, 지상파 광고시간 화면이 검게 처리돼 시청에 불편이 따르게 될 뻔했다. 최악의 경우 실시간방송이 중단되는 ‘블랙아웃’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

사업자 갈등 때마다 ‘심판’과 ‘조정’ 역할에 실패한 ‘방통위 책임론’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VOD 갈등은 충분히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지상파와 케이블 협상은 여러 차례 난항을 보였고 지상파와 케이블이 보도자료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VOD공급이 끊긴 이후에야 간담회를 열고 중재에 나섰다. 

   
▲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수수료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방통위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방송시청행태는 ‘실시간’에서 ‘비실시간’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재송신 분쟁 역시 ‘비실시간’인 VOD 중심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대가산정 문제를 사전에 논의했어야 했다. 재송신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 EBS와 KBS1 외에 지상파채널을 추가로 의무재송신 채널로 지정하는 방안은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방통위가 작은 시장에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한 지나치게 많은 콘텐츠사업자를 허가하고, 플랫폼 역시 우후죽순 허가한 게 극단적인 분쟁의 간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지상파가 케이블에 무리한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지만 방통위가 공공재인 주파수를 쓰는 지상파를 지원하기보다 유료방송 사업자들 편의 위주로 정책을 추진해 지상파의 경영난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최근 방통위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의 법제화에도 뚝심을 보이지 않았다. 방통위가 재송신 분쟁에 ‘직권조정ㆍ재정’과 ‘방송유지재개명령권’을 갖는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었으나 국회에서 ‘직권조정ㆍ재정’이 빠졌다. 방통위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단번에 수용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시장의 두 사양산업자가 만나서 벌이는 치킨게임”이라며 “방송이 결합상품의 일부인 IPTV와 달리 케이블은 방송콘텐츠 의존율이 높다. 지상파는 광고침체가 심각하다. 두 사업자 모두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재송신 분쟁과 VOD협상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정책국장은 “방통위가 직권으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약자인 유선방송사업자(SO)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용자들 피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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