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우(가명)씨는 지난 11일 ‘태안해안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 채용공고문’을 보고 크게 놀랐다. 제출서류에 ‘개인위치정보 수집·활용 동의서 1부’가 포함돼 있었고 동의서엔 “본인은 GPS를 이용한 복무관리시스템 이용을 위하여 본인의 휴대폰 사용 및 다음의 개인위치정보 등을 귀 공단이 수집·활용하는데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동의합니다”가 적혀있었다. 손씨가 더욱 놀란 점은 “미동의 시에는 임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도 명시돼있었다는 것이다.

자연환경해설사에 대한 ‘GPS 복무관리시스템’ 도입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산하기관 소속 노동자에 대한 환경부의 인권 침해 논란이 제기된다. 특히 채용 과정에서 정보 제공 동의를 조건으로 걸어 강압적인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연환경해설사는 △국립공원의 탐방·생태관광 프로그램 운영 △학생을 대상으로 생태교육 진행 △공원 탐방안내 및 홍보 등을 맡는다. 일의 특성상 외근이 많다. 2004년 정부 재정지원 일자리 창출사업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1년 이하의 기간제 근로자로 전국 21개 국립공원마다 평균 9~10명이 고용돼 있다. 올해엔 총 348명이 고용될 예정이다.

   
▲ 2016년 내장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 채용 공고문에 첨부된 개인위치정보 수집·활용 동의서.
 

GPS 복무관리시스템은 GPS 장치가 내장된 업무용 단말기를 통해 관리자가 해당 노동자의 위치정보를 자동적으로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업무보고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관리자는 실시간으로 기록된 노동자의 위치정보를 통해 근무지 이탈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앞서 5대강 유역을 순찰·보전하는 ‘5대강 환경지킴이’에게 2007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선정돼 시행했다. 이 시스템이 올해 자연환경해설사에게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현재 북한산국립공원, 변산반도국립공원, 내장산국립공원,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계룡산국립공원, 태안해안국립공원 등 국립공원 6곳이 2016년 자연환경해설사 신규채용 조건으로 ‘개인위치정보 수집·활용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모두 지원자 제출 서류에 ‘개인위치정보 수집·활용 동의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수집 목적으로 ‘GPS를 이용한 복무관리시스템 활용’이라 밝히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작성한 ‘2016년 자연환경해설사 운영계획’을 보면 공단은 2016년 상반기에 GPS를 활용한 복무관리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 이를 위해 채용공고 및 계약체결 시 개인위치정보 확인 동의서를 꼭 받으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다.

공단 관계자는 “(해당 시스템은) 공단 차원에서 도입하는 게 아니라 환경부의 정책”이라며 “환경부에서 도입하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하는 사람에게 내용을 공지하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작성한 '2016 자연환경해설사 운영계획' 안에 GPS 복무관리시스템 확대 계획이 명시돼있다.
 

이지영 환경부 자연정책과 주무관은 이에 대해 “(해설사의) 활동 자체가 기관 안 보다 외부에서 움직이는 게 많아 이에 대한 복무관리 차원에서 도입하려는 것”이라며 “(개인정보 때문에) 논란이 있겠지만 (해설사는) 국비를 투여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으로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지 관리 감독하는 것은 환경부의 책임이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개인정보에 대한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과 위치정보를 수집하려는 당위성이다. 현재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는 손씨는 “복무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구직자에게)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 우리로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불이익이 명시돼있는데 신규 지원자나 재계약을 원하는 사람 모두 동의서를 낼 수밖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공단과 환경부는 시스템 도입 예정에 따라 동의서를 미리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 주무관은 “회계연도 중간에 도입하게 되는 상황에서 위치정보 제공엔 동의가 필요하니 미리 내용을 공고했다”며 “공고와 관련해 지방청의 담당자들과 두세 번씩 의견 교환을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상임활동가는 “노사관계라는 게 노동자에게 불리한 입장에서 개인정보 수집은 사실상 노동자의 동의가 강요돼 온 측면이 있다”며 “2010년 요양보호사에게도 위치정보 수집이 문제가 돼 국가인권위가 ‘동의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기조의 권고를 낸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활동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가능성도 지적했다. 개인정보법 제16조는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는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는 조항과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가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외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정보주체에게 재화 또는 서비스의 제공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두고있다. 즉 위치정보가 자연환경해설사의 직무 수행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개인정보가 아니면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한 탐방객들이 자연환경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게시판
 

위치정보가 자연환경해설사의 근태를 관리하는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정보인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손씨는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며 탐방객들이 예약한 일정에 따라 탐방로 안내를 나간다. 탐방로는 사무소에서 불과 1~2km 떨어진 거리에 있고 사진을 찍어 보고하고 있다”며 “초등학교에 강의가는 것도 다 정해진 일정이고 나중에 (보고에) 사진이 첨부된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조차 “기존 스케줄과 정해진 코스에 따라 진행되고 시작시간과 끝시간이 확인이 된다”며 “프로그램에 직원이 동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해설사가 야외에서 근무하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일자리이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주무관은 “(우리 부처가) 직접 낸 안은 아니고 5대강 환경지킴이를 관리하는 유역총량과 측에서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위치정보가 필수정보에 해당되더라도 이는 쉽게 제공될 수 없는 민감한 정보라는 지적도 있다. 장 활동가는 “위치정보는 노사관계가 대립할 때 특히 민감하다. 누가 누구를 어디서 만나는 지도 위치정보로 수집돼 노동자 측에선 특별히 보호될 필요가 있는 정보”라며 “최근에 기업들이 스마트폰에 위치추적 앱을 강제로 깔게 하기도 하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주무관은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예산, 관리 목적 달성, 효율성 부분 등을 더 따져봐야 될 상황”이라며 “실무자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니 문제가 있다면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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