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경주를 방문했던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17일 두번째 경주 방문에 나섰다. 이들이 준비한 피켓엔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를 감옥으로’ 등이 적혀있었다. 김석기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오는 20대 총선에 대비해 현재 경주 국회의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김 후보는 2009년 참사 당시 병력투입을 최종 승인한 서울경찰청장(경찰청장 내정자)이었다. 유가족들은 “6명을 불에 타 죽게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용산7주기추모위원회는 17일 김석기 후보의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알리는 ‘김석기 감옥보내기 운동 경주원정 투쟁’을 시작했다. 유가족을 비롯한 용산4구역 재개발지역 철거민 10여 명은 경주역 인근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경주 시민들에게 인쇄물을 나눠줬다. 서울, 대구·경북, 경주, 부산 등에서 시민 40여 명이 연대해 이들과 함께했다.

“7년이면 애가 학교 입학한다… 사람 죽인 사람 국회의원 되선 안 돼”

오는 20일은 용산참사 7주기다. 용산참사는 지난 2009년 1월20일 서울시 용산4구역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옥상 망루에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망루 설치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고 안전매뉴얼도 지키지 않아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거셌으나, 검찰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이유로 철거민만 기소했다. 철거민 5명은 2010년 4~5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 2016년 1월17일 신경주역 앞에서 용산참사 유가족, 철거민, 연대하는 시민들이 "김석기를 감옥으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7년에 대해 희생자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그때는 40대였는데 지금은 50대 중반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7년이면 애가 학교를 갈 기간이다. 그동안 는 것은 욕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주 시민의 기억에서 용산참사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시장의 상가를 방문하며 “용산참사를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본 시민들은 “예전에 그런 일이 있긴 했지”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아무개(23)씨는 “용산참사라는 건 모르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김석기)은 안 나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 재학 중인 최아무개씨(25)는 “용산참사와 김석기가 관련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니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좀 더 지켜봐야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철거민과 시민들은 시장 상가를 일일이 방문하여 유가족의 상황을 전했다. 희생자 고 이상림씨의 아들 이충연씨는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김석기를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라 말하며 인쇄물을 전달했다. 이씨의 부인 정영신씨는 시장 내 줄지어 선 상가를 방문하며 “저희가 유가족입니다. 7년 지나니 잘 모르시더라고요. 사람을 죽인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파란집용산참사동지회’가 적힌 푸른조끼를 입은 철거민들은 문이 닫힌 상가, 비가 와 젖은 길바닥에도 인쇄물을 붙여놓았다. 이들은 횡단보도 어귀에선 사람들을 향해 피켓을 높이 치켜들고 서 있기도 했다. 버스정류장에도 일일이 멈춰 서 피켓을 보여주며 “7년 전과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 2015년 1월17일 경주 중앙시장에서 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씨의 아들 이충연씨가 경주 시민들에게 인쇄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일부 시민들은 이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중앙시장의 한 횟집 앞에 서 있던 경주 시민은 이들이 선전전하는 모습을 보고 “7년 전 일을 왜 다시 꺼내냐. 경주에서 나가라”고 고함을 질러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홍보물을 읽고 난 한 시계판매점 사장은 “(철거민들이) 볼트, 너트를 새총으로 쐈는데 치안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걱정어린 표정으로 ‘알겠습니다’라 대답하는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유가족 정씨와 권씨가 고개를 숙이며 유족이라 밝히자 “사람을 죽인 사람은 안되지” “다 압니다. 옆 사람한테 알려줄게요” 등의 반응이 나왔다. 거리에서 고등어를 파는 상인 조아무개(39)씨는 “오죽 답답하면 저러겠나. 저런 사람이 의원 출마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왔다고 밝힌 선관위 직원 4명은 유가족들을 따라다니며 이들을 관찰했다. 한 직원은 “사전선거운동, 낙선운동 등으로 선거법 위반에 적용될 수 있어 보러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종합적으로 논의해 판단하는 것”이라며 “선거 180일 전에는 공직선거법이 적용된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굵은 빗줄기 속에 60여 명 촛불문화제 진행… “김석기 당선, 경찰 공권력에 살인면허 부여”

저녁에 예정된 촛불문화제는 빗줄기가 굵어져 신경주역 앞 지붕이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유가족이 김석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면한 적이 4년 전 경주에 왔을 때”라며 “(선거운동을 하던) 김석기는 유가족들이 절규하는 걸 보자마자 연단에서 용산 진압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는 뻔뻔한 얘기를 했다. 하루아침에 6명이 죽었고 가족들이 절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문화제에 함께 한 시민들이 김석기 후보의 용산참사 책임을 묻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망루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생존자이자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3년 반을 대구구치소에서 복역한 철거민 천주석씨는 발언에 나서 “망루가 거의 다 탈 때까지, 불이 내 등 바로 옆에서 활활 타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소방관에게 애타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구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석기는 우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아무런 죄책감없이 19대 총선에 출마했었다. 나는 김석기는 살인자라 분명히 말할 것”이라 밝혔다.

현재 강제철거 위협을 받고 있는 철거민들이 나와 연대발언을 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위원은 “용산 이후로 동절기에는 강제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있었지만, 서울 한복판인 마포 신수동에서는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듯이, 사람 4명밖에 없는 가게 한 칸에 100여명 용역이 쏟아져 들어와 얼굴에 소화기를 쐈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쫓아내려고 죽였던 사람이 왜 저 높은 국회의원 자리에 서야 하냐”고 말했다.

지난 8일 강제철거가 통보됐던 부산 만덕5지구 재개발 지역의 최수영 대표는 “만덕은 제2의 용산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나가면 또 다른 재개발 지역 산동네 셋방살이를 할 것”이라며 “남은 주민들 똘똘 뭉쳐서 주거권 보장해달라 외치고 있으니 힘을 더 실어달라”고 말했다.

   
▲ 경주 시내에 위치한 김석기 경주 국회의원 예비후보 사무실. 사진=손가영 기자
 

경주시민 함원신씨는 마지막 발언에 나서 ‘생각없음의 죄’를 언급했다. 함씨는 “600만 유대인을 죽인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판사는 ‘생각없음의 죄’를 죄목으로 명했다”며 “대한민국 경찰청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위에서 시켰다고 특공대 집어넣어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그런 사태가 한 마디로 생각없음”이라고 비판했다.

집회가 끝날 때쯤 이 사무국장은 “최근 백남기 농민이 두 달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강신명 청장은 ‘용산 진압 때도 경찰이 매뉴얼 지키지 않았지만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됐다’고 말했다”며 “용산 참사 때 6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니 경찰이 활개를 친다. 김석기가 (당선) 된다면 경찰 공권력에 살인면허를 부여하는 거나 다름없어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재규명돼야 할 미완의 참사, 김석기 후보 최종 지휘 책임도 재수사 돼야

이 사무국장은 “용산참사는 아직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며 “발화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과잉진압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이 끝나 법적 구제 수단이 없는 상황에 대해 이 사무국장은 “과거사 진실규명의 경우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을 때 재심, 재조사가 이뤄졌다. 용산참사도 그때까지 싸워 볼 것”이라 밝혔다.

검찰은 2009년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망루에 불이 났다”고 주장하며 철거민을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 당시, 경찰특공대들은 망루 안에서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고 검찰이 근거로 제시한 ‘망루 3층에 보이는 불빛영상’도 화재원인으로 특정하기엔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테러조직’인 경찰특공대의 컨테이너 진압은 망루가 설치된 바로 다음 날 집행됐다. 경찰은 “철거민이 시내 중심에서 테러라 칭할 만큼 과격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 밝혔으나 복수의 경찰특공대원은 검찰수사에서 “19일에는 도로 쪽으로 화염병이나 벽돌을 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진압 과정에서 설득과 대화과정이 생략됐고 화재발생 물질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유류화재에 대한 대책이 없었고 특공대원에게 화재발생 물질에 대한 통보·교육도 하지 않았다.특히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망루 안 채증 영상과 망루 내 발전기 스위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망루 안은 촬영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발전기 스위치를 증거로 수거했으나 분실했다고 통보했다. 이 사무국장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설명”이라며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무국장은 김석기 후보가 당시 진압의 최종책임자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검찰의 경찰지휘부 신문내용과 무전녹취록을 교차 분석한 결과 현장을 총괄하던 상황실 바로 옆에 김석기 집무실이 있었고 상황실 지휘부가 김석기에게 수시보고하는 내용들도 발견된다. 김 후보는 검찰에 서면으로 “사건 당시 서울경찰청 집무실에 있었으며, 진압 작전 전후 휴대전화를 통해 보고받았을 뿐 실시간으로 직접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면서 “무전기를 꺼놓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김 후보가 현장에 있었는지, 현장의 상황을 지휘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으나 검찰은 김 후보를 단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결국 김 후보는 참사 다음 달 경찰청장 내정자 지위에서 사퇴했지만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일본 오사카 총영사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23일 경주에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석기 후보는 지난 2013년 한국공항공사 사장 공모지원서에 당시 진압을 “용산사고의 본질은 불법폭력시위로부터 경찰이 선량한 시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정당한 법 집행에서 출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북콘서트에서도 용산참사에 대해 “경찰은 당시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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