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해 법원이 충격적인 표현으로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할머니들은 정확한 판결을 했다고 평가한 반면, 박 교수는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박창렬 부장판사)는 13일 이아무개 등 9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각 3000만 원씩 2억7000만원 청구) 선고공판에서 각각 1000만 원 씩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책이 위안부 할머니 집단을 표시해 피해자를 특정하고 구체적인 사실 적시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의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일본군 위안부 설치, 모집, 수송,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은 유엔인권소위원회의 각종 보고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 국내외 학술연구결과 등에서 인정되고 있다”며 “위안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동원돼 위안소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과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채 ‘성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말살당한 피해자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지난해 6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열린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 창립기념 심포지엄에서 '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할머니들이 신청한 박 교수 책의 문제된 부분 34곳 가운데 인격권 침해 22곳, 명예훼손 10곳에서 위법성을 인정한 반면 2곳만 기각했다. 명예훼손으로 적시한 주요 표현은 아래와 같다.

-‘기리유키상의 후예’ 위안부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

이를 두고 재판부는 “일반 독자에게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일의 내용이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생활을 위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돼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며 “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가라유키상’, ‘일본인 매춘부’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위 표현은 허위사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재판부는 인격권 침해의 사례들도 제시했다.

-“센디는 위안부를 군인의 전쟁 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로 이해한다…위안부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위안부는 일본군인의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것.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
-기본적으로 (일본)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의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에게 협력한 기억이 그녀들을 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똑같은 손으로 그녀들을 손가락질할 지도 모른다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주관적인 의견표명에 해당한다는 것이 박유하 측의 주장이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재판부는 “긍지, 애국, 협력,동지, 전쟁 수행이라는 표현은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부정하고 가해자인 일본제국에 협력 애국했다고 함으로써 다소간의 과장을 넘어서서 원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에 해당해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격권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며 “박유하는 대학 교수이고, 교수로서 연구결과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학문연구결과의 발표 보다 신중함과 엄격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거나 매춘행위를 했다고 암시하고 일본에 대한 애국행위에 해당한다는 표현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의미로서 명예와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자발적 매춘, 애국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충분한 자료가 제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제국의 위안부 표지
 

특히 박유하가 책을 쓰면서 참고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1~5권을 보면, 오히려 일본군의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에 인용한 증언은 위안부 생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반화하거나 단정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박유하의 이런 표현에 대해 “학문의 자유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돼 할머니들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이날 판결을 들은 할머니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재판을 주도해온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일본제국군의 철저한 위안부, 매춘부, 협력자라 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명예훼손이었다”며 “법원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정확히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안 소장은 “이번 판결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이번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항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조선일보 등과 인터뷰에서 “학자로서 충분히 연구하고 자료를 조사해 썼기에 책 내용 중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책 전체를 읽으면 위안부 할머니들께 나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일부 (듣기) 불편한 이야기만 골라내 비난하는 게 답답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학자들이 새로운 주장과 학설을 내놓기 어렵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박 교수는 “오히려 할머니들을 위해서 쓴 책”이라며 “내용에 대해서는 전부 제가 전부 반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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