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적으로 총선 공동 대응 방침 토론안을 제시했으나 폐기돼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민주노총은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 정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청년연대, 사회진보연대 등 대중적 시민사회단체 20여 개를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총선 공동대응 방침을 제시하며 논의를 이끌었다. 제시안은 실현 가능성이 부족했고 다양한 세력 간 의견을 수렴하지 못해 이는 지난 9일 결국 폐기됐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오는 19일 새로운 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이 진보진영 공동대응을 제기한 까닭은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반민주 기조’를 이번 총선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만나 “노동시장 구조개악, 거짓 경제민주화로 인한 민생파탄, 저임금 불안정 노동 등 현재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한계점에 달한 상태”라며 “현재 야당이 이를 해결할 대안세력이 아님은 판명됐고 진보·노동정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예정돼 있어 지금 시기가 더 중요한 시기”라면서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과 선거개혁 무산으로 진보정치가 숨쉬기도 힘든 실정이라 적극적인 공동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폐기된 토론안은 ‘선거연합정당안’을 포함한 3단계 방침으로 구성됐다. 가장 높은 수준의 연합인 1단계 선거연합정당안은 노동, 진보세력 모두를 포괄하는 공식적 정당을 구성해 보수수구, 자유주의정당, 연합정당과 삼각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동규 정치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은 선거법상 그리스 ‘시리자’와 같은 선거를 위한 연합이 불가능하다. 높은 수준의 선거연합이 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9월2일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양경규 노동정치연대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나경채 진보결집 더하기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민중의소리
 

2, 3단계 안은 좀 더 낮은 수준의 대안이다. 1안이 힘들 경우 ‘부분적 선거연합정당’으로 연대할 수 있는 일부 세력이 정당으로 결합하고 선거 공동기획단을 구성해 나머지 진보진영과 연대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힘들 경우 ‘2016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해 지지할 진보정치세력을 선별한 뒤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이다.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는 ‘선거연합은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 ‘시일이 촉박하다’ ‘꼭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야 하나’ ‘총선 이후를 준비하자’ 등의 이견을 제시했다. 특히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현행 정치관계법은 이중당적을 금지하기 때문에 선거연합정당은 기존 당적을 포기해야 가능한 결과다. 기존 정당으로선 양보가 필요한 부분이다. 진보정당의 결합 가능성이 작은 상황에서 모든 진보진영 단체들이 함께 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면 연합정당을 만드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다. 높은 수준의 연합이 필요한 데 반해 남은 시일은 촉박하다. 정의당은 실제로 민주노총에 “연합정당은 법적·시기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이승철 민주노총 부총장은 “민주노총의 과거 방침이었던 배타적 지지에 대한 반감도 한몫해 연합이나 통합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하다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사태로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한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했다거나 조합원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묵살한다는 비판이 수차례 제기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2월10일 오전 조계사 일주문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양 위원장은 선거 국면의 공동 대응 문제에는 정당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와 정치세력의 문제기 때문에 진보 결집은 진보정당이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면서 “현재로선 아직 총선방침을 못 정한 정당이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진보정당 간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중 공동대응 제안에 적극적으로 소통한 당은 노동당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생각하고 있고 원내정당으로서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흐름에 N분의 1이 되는 방식이 탐탁치 않을 것”이라며 “시민사회계에선 정의당이 공동 대응 자체를 꺼려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는 19일 새로 제시될 안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이 택한 방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노동·정치·연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등 6개 세력 후보에 대한 지지방침을 결정했다. 폐기된 민주노총 토론안의 3단계 방안의 골자가 이와 같다.

양 위원장은 “3단계 안에 대해선 ‘방임으로서 의미 없는 소극적인 안’이라는 문제제기 있었다”며 “마지막 토론안 때 ‘총선공동투쟁본부’ 구성으로 구체화했지만 이것 또한 현실성과 이견 때문에 폐기된 것”이라 지적했다.

노동당 관계자는 “노동당은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느껴 적극 결합할 예정이지만, 과거 민주노동당이 보여줬던 진보통합 흐름은 지금 상황에선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합 움직임이 무산되더라도) 진보 정당 간 후보단일화 논의가 이뤄지거나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선거제도개혁를 함께 주장하는 식의 연대는 이루어질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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