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천주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 대부분이 전면 무효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과 달리 불교계에서만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에 의문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기습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한 이후 종교계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연쇄적으로 발표했다. 기장총회(12월29일), 예장통합 총회(1월4일), 천주교주교회의(1월4일) 등 보수적 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마저도 이번 합의에 목소리를 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 가장 큰 종교교단의 하나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조계종은 오는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내놓을지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윤효원 조계종 홍보팀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는 13일 예정돼 있는 신년 기자회견에 담을 내용을 보고 중이며, 확정하고 있는 단계”라며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견해를 담을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을 말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다른 종교 교단은 대부분 입장을 내놓은 것에 비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윤 팀장은 “다른 교단이 입장을 낸다고 우리도 바로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중이며, (여러) 의견을 담고 하느라 바쁘기도하며, 우리는 (결정) 단계가 다르다”라고 답했다.

윤 팀장은 “우리도 고민하고 있으며 검토, 성안 중”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 윤 팀장은 “우리가 눈치보고 하지 않는다”며 “언론 입장에서 왜 이리 늦느냐고 하는 것은 언론 입장이지만 우리 차원에서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조계종 중앙종무기관 및 산하단체 종무원의 시무식을 열었다. 사진=조계종
 

다른 홍보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여러 의견 수렴하는 과정에 있고, 종단의 공식적 입장은 아직 결정이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총회장 최부옥 목사‧교회와사회위원장 김경호 목사-이하 기장총회)는 그 이튿날인 29일 가장 먼저 성명을 내어 “위안부 문제 법적 책임 배제된 합의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라고 비판했다. 기장 총회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의 가해국으로 자인하고 법적 책임에 성실히 임하라”며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를 그치고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한 외교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기독교 교단 가운데 보수적으로 평가받아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약칭 예장 통합)도 독도영토수호 및 동북아평위원장 유종만  목사와 총회 인권위원장 김성규 목사의 명의로 지난 4일 공식 입장을 내어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규탄했다. 예장 통합은 성명에서 이번 합의를 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참여와 그들의 정의를 구현하지 못했고,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지 못하므로 외교적 담합”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은폐와 축소를 넘어 기억의 말살의 위험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약속했다는 것 역시 이번 합의의 의도와 양국 정부의 역사관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근거”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합의”라며 “‘기억과의 투쟁’을 제어하고 기억의 성찰을 위한 상징들을 말살하려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장통합 총회의 조상식 사회봉사부 실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발표한 성명을 9일자로 발행된 기독공보에 싣고, 이후 후속조치도 논의중”이라며 “오는 3월 2일 (총회 차원에서)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한 뒤 오후엔 관계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천주교도 주교회의 이름으로 입장을 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4일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 명의로 성명을 내어 이번 합의를 두고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간의 기본권을 한일 양국의 현안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와 외교의 논리만으로 환치시킨 결과물”이라며 “종군위안부의 인권을 또다시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폐기 대책위원회 소속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촛불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교회의는 “법적 책임을 회피했기에, 진정한 회개와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종군위안부에 관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은 인류의 양심과 역사적 경험을 거스르는 위험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아직도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계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치에 의한 인권말살 정책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배상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교회의는 소개했다.

주교회의 “한일 양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외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도 지난 4일 저녁 열린 시국미사에서 전주교구의 김창신 신부(노동자·이주사목담당)가 이번 합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이분들의 인권을 돈 몇 푼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라며 “돈 줄 테니까 위안부 소녀상 같은 것을 치워버리라는 요구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우리 정부와 대통령, 여당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냐”고 반문했다. 김 신부는 “이번 합의문은 그 자체로 월권이며 원인무효”라며 ”현재 우리는 일본통치의 식민지가 아닌 박근혜 통치의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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