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박효종 위원장)의 심의가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을 점점 더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청 환경의 변화로 시청자들은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기준으로 내려지는 심의와 이어지는 징계가 일선 PD들의 과감한 창작 시도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많은 현직 PD들은 심의위에서 의결 대상이 되는 일이 잦아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종합편성채널 예능PD인 A씨는 “최근에 방송심의의 기준이 높아진 것인지, 다른 프로그램 PD들 사이에서도 심의가 잦아졌다고 느낀다는 말을 한다”며 “몇 년 동안 비슷하게 해온 건데 최근에만 유독 지적받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송심의 의결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12월3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방송심의 의결현황’에 따르면, 2015년에 내려진 총 심의건수는 1303건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총 심의건수는 2012년 968건, 2013년 1083건, 2014년 1182건, 2015년 1303건으로 해마다 늘어왔다. 

총 심의건수가 해마다 늘어난 이유에는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심의가 늘어난 데에도 있다. 2013년에는 종편 보도교양 부문에 내려진 심의가 총 125건이었지만 2014년에는 총 232건, 지난해엔 총 235건으로 2013년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다. 물론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종편 보도프로그램의 정치적 편향이나 비전문적인 패널 편성의 이유 등이다. 

하지만 현장 PD들은 심의제도가 방송프로그램의 새로운 문화를 쫒아오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꼰대’ 심의다. 대표적으로 JTBC ‘선암여고탐정단’의 동성 키스신이 경고 조치를 받았고, ‘마녀사냥’에 대한 반복적인 징계조치를 받았다.  

   
▲ 지난해 2월25일 JTBC드라마 '선암여고탐정단'은 동성 키스신을 방영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았다. 사진= JTBC '선암여고탐정단' 화면 갈무리
 

심의위가 ‘마녀사냥’에 적용한 규정은 제35조(성표현) 제2항과 제4조(등급분류기준)제1항 위반으로, ‘경고’(벌점 2점)과 ‘시청등급 조정 요구’조치를 받았다. 한 지상파 현직PD B씨는 “그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성과 관련해 자유로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걸로 알고 있다. 제재 받은 사항은 프로그램을 그만해야 안 할 수 있는 사항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B씨는 지상파에서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이 ‘통신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권고’ 제재를 받은 것도 대표적 지체 현상으로 꼽았다. 심의위는 ‘마리텔’에 방송심의 규정 제52조(방송언어) “방송은 바른말을 사용해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제재했다. 

B씨는 “심의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생방송을 그대로 방송으로 옮기는 방송 특성상 방송 특성을 조금 이해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무한도전’ 이후 자막이 예능프로그램의 재미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아졌는데, 무조건 정제된 방송용어를 사용하라는 것은 예능PD에게 재미를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 MBC의 '마이리틀텔레비전'은 인터넷방송을 그대로 방송에 옮긴다는 컨셉으로 자막 역시 'ㅋㅋㅋ'등 인터넷용어를 사용하다가 방송통신심의위에서 '권고'제재를 받았다. 이후 '마리텔'에서 'ㅋㅋㅋ'자막은 '크크크' 등으로 바뀌었다. 사진=MBC '마이리틀텔레비전'화면 갈무리
 

이에 안주식 PD연합회장은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은 그 새로운 것 자체가 기획의도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인데, 심의위원들의 비방송적이고 개인적인 잣대로 잘라댄다”며 “이런 심의가 계속된다면,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은 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회장은 “아예 견제가 없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심의위원의 방송 전문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다면 지적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라며 “하지만 현재 심의위원들은 방송 전문가로서 방송을 심의하겠다는 목적으로 와있다기보다 정치 등 다른 목적으로 와있다는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기준 없는 심의, “그저 피하자는 생각만”
“문제는 심의위에서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품위를 유지하지 않았다’ 이런 식인데 심의위에서 싫어하는 것을 목록으로 뽑아준다면 모를까,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그 다음에 뭐가 또 걸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또 다른 예능PD인 C씨는 심의위의 심의 가운데 기준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C씨는 최근 1~2년 사이에 새로운 시도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회가 변한 줄 알고 이것저것 시도했었는데, 최근 1~2년 사이 다시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며 “능력 있는 PD들 가운데 더 자유로운 방송환경을 찾아 떠나가는 것이 이해가 간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만한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심의에 걸린 PD가 각 회사 내에서도 경위서를 쓰거나, 인사위원회에 회부되는 점도 현직PD를 위축되게 만든다. 특히 최근 KBS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경고나 주의를 받으면 KBS가 해당 실무진을 인사위에 바로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사내 규정을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방통위 경고를 3번 이상을 받으면 인사위에 회부됐다. 

   
▲ ⓒiStock
 

10대와 20대를 타겟으로 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현직PD D씨는 “심의위에 불려가게 되면 경위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위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며 “특히 12월이 되면 강화되는 ‘방송언어’ 규정 때문에 자막 등에서는 재미 요소를 좀 줄이고, 다른 방면에서 재미 요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직PD들이 심의위원들의 결정에 불만이 많은 이유에 대해 이재진 한양대학교 언론학과 교수는 “심의위의 규정이 ‘품위유지’ 등 추상적이고 적용 범주에 특별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물론 정치적 공정성의 문제도 있지만, 비정치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객관적이고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며 “무조건 틀에 맞춘 심의보다 방송 내에 발휘된 창의적인 측면을 좀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교수는 “이번 3기 심의위원에는 여성위원들이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심의위원 구성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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