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실상을 알린 기자가 한일 당국간 종군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정일용 연합뉴스 콘텐츠편집부 부국장(콘텐츠편집부)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십년 동안 피해 당사자에 흡족할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왜 정부끼리 만나서 합의라고 하느냐”며 “반인도적 범죄는 시효가 없는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정 부국장은 “더구나 여기까지 오게 된 첫 문제제기는 한일 정부차원이 아니라 민간분야와 시민사회단체, 언론에 의해서였다”며 “당시 양국 정부 모두 문제라는 인식도 없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고 반문했다.

정일용 부국장은 지난 1990년 김용수 전 연합뉴스 일본지사장과 함께 ‘일제 강제연행 실상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일제 강제연행 연속취재 기사 가운데 그해 5월7일 ‘정글에 버려진 한국인의 울부짖는 모습 생생’ 제하 기사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시로타 스즈코씨가 한국여성 종군위안부 실상을 처음 폭로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기사에서 소위 ‘황군 위안부’였던 시로타씨는 “남양군도 전선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히 짓밟힌 꽃다운 한국인 동료들의 원혼이라도 위로해야겠다는 뜻에서 오랜 악몽을 들춘다”며 “당시 한국여자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로 일본군인 보초의 엄한 감시 속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일본군 병사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때로는 최전방 부대를 순회하며 쉴새없이 몸을 팔았다”고 증언했다. 

   
정일용 연합뉴스 부국장(콘테츠총괄본부 콘텐츠편집부).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 부국장은 “일, 관동군 대지진때 한국인 민간에 할당 살해(1990년 5월10일)”, “100여명이 산채로 콘크리트더미에 생매장(5월14일)”, “일본 삼정광업소 한국인 사망자 명단 일부 밝혀져(5월22일)” 등 10여 건의 기사를 송고해 제22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시로타씨에 따르면 당시 한국인 위안부들에게는 이름대신 고유번호가 매겨져 상대할 여자의 번호표를 들고 위안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병사들은 자기 차례가 오면 그야말로 반광란적인 학대를 하는 바람에 이를 견디다 못한 한국인 여성들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생겼다고 연합뉴스 기사는 소개했다. 특히 “일본군은 패전 소식이 들리자 이렇게 끌고온 여자들을 집단으로 총살한 뒤 달아나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는 시로타씨의 증언도 실려있다. 

정 부국장은 “당시 언론으로서 일제 강제연행이라는 틀 안에 종군위안부를 직접 취재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그 때는 한일 정부가 19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과거를 청산했다고 여기던 때였으나 1990년이 해방 45년이 되던 해여서 주의를 환기시키자는 차원에서 출장을 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0년 이후 언론의 위안부 보도에 대해 정 부국장은 “언론이 당연히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잘못을 바로잡히도록 해야 했지만, 그렇게 했다고 답할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 부국장은 이번 합의와 관련,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책임을 인정했다고 하면 한일 외교장관 공동발표문이 아니라 합의문을 써야 하며, 이는 조약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국회의 동의 역시 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면 일본 역사교과서에 수록하는 것과 같은 당연히 뒤따르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0년 5월7일 연합통신이 일본현지에서 송고한 첫 일본인 위안부 인터뷰 기사.
 

언론 보도에 대해 정 부국장은 “이랬다 저랬다더라 하는 중계보도에 불과하다”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단순 중계방송하듯 전달하고 끝낼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부국장은 “정부가 잘못된 합의를 했으니 올바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국장은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 만이 아니라 미국도 포함되는 과거사 청산”이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조선사람 수만 명도 죽었다. 그 사람들은 대체 누구 때문에 죽은 것인가. 원자폭탄 투하 역시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일간 해결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넣어, 박근혜 대통령이 진두지휘 했다’는 분석이 일리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게만 보상과 배상을 요구할 뿐 미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으니 걱정스러운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일용 연합뉴스 부국장(콘테츠총괄본부 콘텐츠편집부).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일용 국장은 지난 1987년 입사한 뒤 해외국, 사회부, 북한부, 논설위원, 민족뉴스부장 등을 거쳐 2006년 제40대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냈다. 특히 김근 사장 시절 현재의 뉴스통신진흥법 제정을 사실상 주도하기도 했다. 현재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공동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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