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졸속으로 타결했다는 비판이 연일 제기되는 가운데 30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올해 마지막 수요시위가 열렸다.

일본대사관 앞 도로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집회를 찾은 시민들과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일부 시민들은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집회에 참여했다. 5살 난 아이부터 머리카락이 희끗한 80대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일부 시민들은 집회 주최 측이 나눠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이 담긴 피켓을 들고 앉아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가 시위에 참여해 집회 대열 가장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날 수요시위는 2015년에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추모회와 함께 진행됐다. 올해 별세한 피해자 할머니는 총 9명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할머니를 기리는 촛불점화식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다. 정태효 정대협 생존자복지위원장은 한충은 대금연주자의 추모공연이 끝난 후 별세한 9분의 삶을 일일이 소개했다.

   
 
 
   
▲ 수요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사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효순 할머니의 아들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열 여섯 되던 해 강제로 트럭에 실려간 이후부터 오늘까지 모진 인생을 살아왔는데, 날 잊지 말고 내 원한 풀릴 때까지 기억해달라’고 한 어머니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며 “어머니 약속할게요. 싸워서 이길게요”라고 말했다.

추모사를 준비해 온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일원이라 밝힌 학생들은 발언대에 나와 “우리 고등학생들도 할머니들의 뜻에 동참하고자 올해 학생의 날에 성금을 모금해 소녀상 건립에 함께 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할머니들의 아픈 진실 잊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한금희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부회장도 발언대에 서서 “평화와 인권의 열매를 더 크고 풍성하게 키워내겟다. 올바른 역사를 후세에 알려 전쟁과 폭력, 역사왜곡으로 자신의 사리사욕 채우려는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조하은 자원활동가와 윤홍조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대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고 여성공동체에서도 추모사를 통해 할머니들과 역사를 잊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이화여고 합창단은 노래 공연으로 추모에 함께 했다. 이화여고 학생들은 현재 서울 중구 정동프란체스코 회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를 건립하는 데 다른 고등학교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면서 동참을 제안하는 등 모금에 가장 앞장 섰다. 이화여고 학생 20여 명은 저마다 노란색 색지를 앞에 들고 ‘벗이여 해방이 온다’와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연달아 합창했다. 합창 후 이들이 꺼내 든 노란 색지엔 “굴욕합의 반대한다. 할머니 힘내세요”가 한 글자씩 적혀 있었다.

   
▲ 이화여고 합창단 학생들이 합창 공연이 끝난 후 합의 반대를 말하는 피켓 퍼포먼스를 보였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날 수요시위엔 교복을 입고 온 고등학생들이 눈에 잘 띄었다. 인천 연수여고에서 역사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밝힌 박아무개(17)양은 “동아리원 40명과 함께 왔다”며 “합의는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할머니들의 의견도 안듣고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보기도 힘들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올해 수능을 친 조경호(18)군은 “돈으로만 때우는 듯한 사과인 것 같고 윗사람들만 모여서 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피해자를 위한 회의면 피해자를 모시고 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에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이용수 할머니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저는 끝까지 일본에게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인 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귀가 먹었으면 귀를 뚫고, 눈이 멀었으면 눈을 뜨게 할 것”이라 힘을 주어 발언했다. 이어 이용수 할머니는 “하늘을 간 할머니들도 한을 못 풀고 갔다. 238명 모두의 한 풀어주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나이 88세가 뭐 그리 많나.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다”라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 발언 도중에 “맞습니다”라는 호응이 수차례 터져나왔다.

   
▲ 이용수 할머니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윤미향 정대협 대표의 신호에 맞춰 일본대사관 방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윤 대표는 “평화와 희망의 함성을 질러주자”며 “웃음을 잔뜩 머금은 모습을 보여줘 우리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간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수요시위가 끝나기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의 경과를 보고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함께 하는 국가 간 연대체와 국내 연대체를 조직할 계획을 밝혔다. 또한 평화비 건립을 확대해 전국 각지에 세울 것이며 해외에도 추가로 건립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대표는 전국평화비네트워크를 만들어 앞으로의 수요시위는 전국 각지 평화비가 있는 곳에서 다발적으로 열릴 것이라 전했다.

   
▲ 수요시위가 끝난 후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올해 별세한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가 수요시위 참가자를 대신해 성명서를 낭독하며 집회가 마무리됐다. 집회가 끝나자 별세한 할머니들에게 헌화를 하기 위해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민들은 다섯 명씩 줄을 맞춰 정대협 관계자가 나눠주는 꽃을 들고 차례대로 헌화했다. 일부 시민들은 헌화대 옆에 앉아있는 이용수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를 찾아가 “함께 하겠다”며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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