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신입사원을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과연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까. 개인적으론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들어 네 번이나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두산 이외 다수의 기업들도 희망퇴직을 직원들에게 강요했지만, 크게 논란이 일지 않았다. 이번 희망퇴직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두산의 박용만 회장이 논란을 진화한 방식도 “신입사원은 희망퇴직에서 제외한다”였다.

필자가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사정을 기업공시를 통해 살펴본 기사를 쓴 이유는 언론이 이번 사태의 한 단면을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단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신입사원마저 ‘불명예퇴직’ 시키는 행태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나,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본질은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행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위기를 맞은 근본적인 원인은 박용만 회장이 주도한 무리한 인수합병이었다. 미국의 건설장비 업체인 밥캣을 인수한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당시 49억 달러의 매각대금 중에서 39억 달러를 빚으로 충당했다. 두산쪽은 ‘그나마 지금은 밥캣 덕분에 이익이 난다’고 항변하나, 이는 한해에 3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나면서도 매년 이자 때문에 적자가 나는 상황에 비춰보면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두산측은 경영위기의 원인을 중국발 건설경기 침체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밥캣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다. 공교롭게도 두산이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하면서 매각한 오비맥주, 버거킹, KFC는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물론 잘못된 경영 판단을 무조건 비판할 순 없다. 시장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산은 잘못된 경영 판단의 책임을 애꿎은 직원들에게만 묻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부족했고, 재벌 가족들은 배당 파티를 벌였다. 

일례로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주)두산에 내는 브랜드 사용료가 올해부터 20%나 비싸졌다.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와 지주회사인 (주)두산과의 거래액은 지난해 2022억원에 달했고, 이런 내부거래를 통해 수익을 낸 (주)두산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연결 재무제표 상으로 지난해 배당성향이 126.6%에 달했다. 이는 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주주들에게 돌려줬다는 의미다. 

이렇게 무리한 배당으로 수혜를 입은 이들은 재벌 가족들이다. 박용만 회장을 비롯한 두산 창업가 가족들은 (주)두산의 배당 가능한 주식의 59.04%를 보유하고 있다. 배당은 기업이 남은 이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행위인데, 두산은 적자의 늪에 빠진 계열사들이 직원들을 내쫓는 마당에도 매년 수백억원의 배당 파티를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업무 관련성이 떨어지는 부동산 거래, 스포츠 마케팅에 수백억원을 쓰는 등 어려운 경영사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안이한 모습들이 다수 있었다. 두산그룹 역시 메이저 골프대회의 후원기간을 5년 연장하고, 영국에서 토니 블래어, 콘돌리자 라이스 등 매년 세계 명사들을 초청해 글로벌 경영 포럼을 여는 등 현실 파악을 전혀 못하는 모양새다.  

두산의 이런 행보에는 역사적 맥락도 있다. 두산이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2000년 12월 공기업 한국중공업의 인수다. 자산 4조원에 영업이익이 매년 1000억원 안팎이던 한국중공업의 지분 36%를 불과 3057억원에 인수한 두산은 3개월 뒤 인원 1124명의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인원 감축과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노조는 파업에 나섰고, 두산은 노조 간부들은 물론 일반 노조원들에게 무차별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걸었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고 배달호씨는 손배 가압류에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었다. 손배 가압류가 낳은 첫 희생자였고, 일반 노조원에게까지 손배 가압류를 건 최초의 기업이 바로 두산이었다. 

   
▲ 2003년 1월18일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경남 마산시 삼각지공원에서 열린 ‘분신노동자 1차 범국민 추모 및 두산재벌 규탄대회’에서 숨진 노동자 배달호의 대형 걸개사진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희망퇴직 사태는 두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고’에 가깝다. 두산이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주력 사업을 변경한 지난 20여년간 한국 사회는 임금인상 없는 성장, 고용 없는 성장으로 불평등이 심화됐다. 젊은 세대에겐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되고, 금수저와 흙수저란 단어가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기업은 성장을 지속했으나, 이익은 재벌들이 편법적으로 사유화했고, 비용 절감의 수단은 과도한 근로시간, 비정규직 양산, 중소기업에 갑질 등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은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비용 취급을 받았다. 그런 한국이 현재 산업 조정기를 맞고 있다. 주력 산업이던 조선, 철강, 기계, 해운은 어느새 한계 상황에 직면했고, 휴대폰과 자동차, 반도체 등의 우위도 불안하다. 구조조정이 곧 인력감축을 의미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의 기간을 늘리고, 파견 범위를 넓히는 ‘고용이 불안한 저임금 노동자의 양산’을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미래다’는 두산의 광고 문구보다 기만적인 일들이 일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대에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답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나마 ‘사실’로서 기만과 싸우는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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