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타결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려 수습에 나섰으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29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를 방문한 임성만 외교부 제1차관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로부터 혼쭐이 났다. 이용수 할머니는 쉼터에 들어선 임차관이 인사를 하자마자 “어느 나라 외교부냐. 일본 외교부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날 임차관은 합의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쉼터를 방문했다. 같은 시간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는 자세를 낮추고 앉은 임차관에게 “합의 타결은 가당치도 않다”며 단호히 입장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는 임 차관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역사의 산증인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무슨 짓이냐. 이렇게 고통받는 우리를 왜 두 번 세 번 죽이려 드느냐”고 소리쳤다.

 

 

임차관은 “이번 합의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며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 통감을 밝혔고 아베총리가 내각총리대신으로서 할머니들께 사죄와 반성을 표했다. 정부도 피해자 할머니의 존엄과 명예를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피해자들이 24년을 외친 말이 있는데, 합의는 무슨 합의인가”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들은 임차관이 해명하는 와중에도 “외교부 뭐하는 데냐” “타결이 됐다고 보냐”고 반문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사전에 우리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정부와 정부끼리 뭘(합의를) 했는데, 우리는 타결 안됐다(고 생각한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9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를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오른쪽 부터),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에게 인사하다가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나무람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본 정부의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할머니들은 “소녀상은 아무도 간섭해선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거는 엄연히 역사다. 역사의 표시라. 국민들이 한 푼 한 푼 모아 우리 후세들에게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며 “사죄하면서 (소녀상) 없애라는 건 무슨 심리냐. 자신들의 죄가 없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임차관은 할머니들과의 비공개면담에서 “소녀상 철거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임차관과의 면담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싸움은 끝이 안 났다.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할 때까지 수요집회를 열 것”이라 밝혔다.

이날 오전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는 이광석(43)씨를 비롯한 일부 예술인들이 한일 합의를 비판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이씨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일 굴욕외교를 반대한다” “매국 회담을 중지하라” 주장하며 예술인 공동행동을 제안한 바 있다. 평화재향군인회와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는 한일합의 비판문구를 담은 피케팅으로 이씨와 함께 했다.

   
영하5도를 밑도는29일 오전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노래패 우리나라의 가수 이광석 씨가 노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씨는 정오부터 4시간 동안이나 노래공연을 이어갔다. 이씨는 다섯 살 난 친구의 딸과 함께 소녀상의 다리에 목도리를 두르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이씨는 “예술가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의 억울함들과 함께 하는 노래를 부를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예술인들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노래공연 도중 한 청년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대자보를 들고 소녀상 옆에 섰다. “대충 지은 매듭은 풀어지기 마련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대자보엔 “한일 외교장관회담 소식을 듣고 오늘 방학식을 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며 “회담 결과 속 평화비 이전을 합의하겠다는 것과 전쟁범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소녀상의 친구가 되어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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