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희망퇴직’의 희망은 실상 절망”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희망퇴직이라는 명목으로 입사 1~2년 차에게도 퇴직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희망퇴직’의 이면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최근 불어닥치는 희망퇴직 바람을 자발적 퇴사의 탈을 쓴 무책임한 구조조정으로 규정했다. 사측이 이익감소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과 재취업 등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스람코리아(이하 오스람)는 이 칼바람을 맞은 곳 중 하나다. 한국 조명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조명장치제조기업 오스람엔 현재 생산직 노동자가 한 명도 없다. 지난해 12월 8일 자로 그나마 남아있던 노동자 43명이 전원 퇴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회사의 퇴사압박에 순순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오스람코리아분회는 퇴직을 처음 권고했던 1년 전부터 고용안정을 주장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지난 8일 우여곡절 끝에 노조는 ‘오스람코리아분회’ 노조 깃발을 내렸다.

미디어오늘은 깃발을 거둔 지 일주일이 지난 후인 지난해 12월 17일 안산역 인근에서 오스람 노조 투쟁을 끝까지 책임졌던 권남규 수석부분회장을 만났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관계자는 이날 하루 전까지 “권 수석 마음고생이 심할 거다. 연락도 닿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권 수석은 일주일 동안 마음을 추스른다며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권 수석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운을 떼며 지난 1년을 이야기했다.

“매년 영업이익 200억이 넘는데… 왜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냐”

지난 2014년 9월25일 회사가 일방적으로 희망퇴직 공고문을 부착했다. 인력조정을 한다는 말은 9월 초부터 나돌았으나 노사협의회는 양측의 협의를 통해 조정해가기로 약속해온 터였다. 당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던 권 수석은 “한국 오스람은 매년 영업이익이 200억 원이 넘고 매출도 1400억 원 이상이 유지됐고 입사 이래 20년 동안 적자가 없었다”며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이 강행될 줄은 몰랐었다”고 말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금속지역지회 오스람코리아분회 조합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깃발을 편 모습. (사진=오스람코리아분회 제공)
 

며칠 새 직원 280여 명 중 49명이 퇴사했다. 권 수석은 “회사를 믿고 여태껏 왔는데 돈 몇 푼 쥐여주고 한 방에 나가버리라 하니 직원들이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다”며 “배신감을 느끼고 회사의 미래를 믿지 못한 직원들이 먼저 그만뒀다”고 말했다. 오스람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3년이었다.

이틀 후 직원 60여 명은 단체로 노조설립을 결의했다. ‘희망퇴직 사태’ 설명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전체 직원 긴급 총회 자리에서였다. 권 수석은 일방적인 희망퇴직의 부당성과 고용불안 문제를 설명했고 직원들이 스스로 “그렇다면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서며 현장에서 노조가입서를 쓴 것이다. 그리고 다음 노조설립총회가 열리는 10월18일까지 전체 직원의 절반에 달하는 115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생산직 노동자가 90% 이상을 차지했다.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오스람코리아분회’가 설립되며 안산 반월공단에서 8년 만에 금속노조 산하의 노조 깃발이 올라갔다.

고용안정 약속받으려 한 노조, 1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섭 못 해

권 수석은 “노조를 세운 후 아무것도 못하고 100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오스람 노조는 ‘고용안정’을 내걸고 싸울 줄 알았지만 막상 부딪힌 가장 큰 벽은 회사의 노조탄압이었다. 회사는 첫 단체교섭안을 받고 4개월 동안 비상식적인 억지주장을 했다. “단체교섭은 저녁 7시 회사 밖에서 노사 교섭위원 각 3명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권 수석은 “하급단체 노사협의회도 근무 중인 오후 2시 회사 안에서 노사 6명씩 12명이 만나 협의한다”며 “교대 근무자인 우리에게 저녁 7시는 교섭하지 말자는 소리와도 같다. 노조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고 말했다.

   
 
 
   
▲ 오스람 분회 조합원들이 공장 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한 조합원이 '영업이익 수백억에 최저임금 왠말이냐'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오스람코리아분회 제공)
 

노조가 겨우 합법 쟁의권을 따내 잔업·특근 거부 투쟁과 부분파업을 진행하자 사측은 첫 교섭을 했다. 노조가 설립된 지 132일째인 이듬해 2월26일, 저녁 7시 회사 안에서 노사 양측 각 네 명씩 참여해 처음으로 교섭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이후 5개월 동안 실질적인 교섭은 이뤄지지 못했다. 노조 활동 보장을 위해 임시 노조 사무실을 사내에 마련해줄 것과 노조전임자 1명의 타임오프, 조합비 일괄 공제를 사측에 요구했으나 회사는 거부했고 이 갈등이 5개월 동안 지속된 것이다. 권 수석은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장이 6월 직접 중재를 하며 ‘노측 요구안은 과하지 않다. 사무실에 빈 공간이 많은데 노조에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까지 사측에 전달했으나 지청장이 나가자마자 사측 교섭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말했다. 노조가 제시한 타협안도 거듭 거부당했다. 결국 노조는 공장 부지 안에 ‘천막 임시사무소’를 설치했다.

이후 10월13일 회사가 교섭결렬을 선언한 19차 교섭이 열릴 때까지 노사는 타협을 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오스람 노조는 서울영업부, 독일대사관, 국회 등을 찾아가며 집회·시위를 열었고 사내 집회, 부분파업, 삭발투쟁 등을 감행하며 사측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장과 안산시장 등을 찾아가며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요청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회사의 비타협적인 태도엔 속수무책이었다.

   
▲ 오스람 분회 조합원들이 회사의 노조사무실 제공 거부에 대응해 2015년 6월10일 사내에 임시 천막 사무소를 설치하는 모습. (사진=오스람코리아분회 제공)
 

그러는 동안 회사는 공장폐쇄를 준비했다는 게 권 수석의 주장이다. 전체 4개 라인 중 소켓 전구를 만드는 EL라인이 9월 초 폐쇄됐다. 노측은 갈등이 악화되기 전 10월5일 파업을 풀고 조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회사는 사흘 후 직원들에게 하루평균 3.5시간만 근무하는 단축근무를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그리고 회사는 교섭결렬을 선언하며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고 한 달 후인 11월20일 큰 형광등을 만드는 T8라인을 추가 폐쇄하면서 2차 희망퇴직자를 모집했다.

12월1일 2차 희망퇴직이 완료되자마자 회사는 오스람 안산공장 폐쇄를 공고하고 마지막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돌아갈 공장이 없어진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결국 내부 논의 끝에 12월7일 노조해산을 결정하고 희망퇴직 절차를 밟게 됐다. 1년 동안 구조조정과 생산라인 폐쇄가 번갈아 이뤄지며 결국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전원 회사 밖으로 내몰렸고 한국의 오스람 조명생산이 중단됐다.

노조파괴 시나리오 알려주는 근로감독관, “정부의 역할이 대체 무엇이냐”

노조와 대화를 하지 않는 회사에 대해 노조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권 수석은 말이 통하지 않는 회사보다 정부에 더 많은 화를 터뜨렸다. 권 수석은 “정부가 제 역할을 했다면 상황은 굉장히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노조파괴에 앞장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의 근로감독관이 오스람 인사노무부장을 만나 노조파괴 방법을 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안산 지역의 한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근로감독관이 “동서공업, 유성기업이 금속노조(산하의 본인 사업장 노조)를 기업노조(친기업노조)로 바꾸는 과정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과정에 대한 매뉴얼을 주겠다”고 오스람 부장에게 제시한 것이다. 권 수석은 “노조가 할 수 있는 건 집회를 하고 노동부와 국회를 찾는 항의밖에 없었는데 노동부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면서 “이 밖에도 조정위원회나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보면 억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았으면 노동부가 이렇게 변질되겠냐”고 분을 터뜨렸다.

공권력도 회사의 편이었다. “공장에서 70여 명이 집회를 하는 데 경찰 400명이 투입되질 않나, 합법집회인데도 금속노조 간부를 잡으려고 강력계 형사팀이 와있질 않나. 금속노조 간부 1명이 나를 보러 회사에 왔을 때는 경비가 ‘불법침입’ 명목으로 경찰에 신고해 경찰차 7대가 출동하고 정보과 형사까지 찾아왔던 사태도 벌어졌다.” 권 수석의 말이다.

권 수석은 “고용안정 찾아내기도 너무 힘든 나라고 노조하기도 정말 힘든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가 자국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노조인정하고 성실하게 교섭하라고 독일 오스람 본사에 서한이라도 보냈다면 사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하고 덧붙였다.

“노동자는 이익에 따라 접고 빼는 숫자다”

지난 2014년 9월 독일 본사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2012~2014년엔 8700명 규모의 구조조정, 2015~2017년엔 78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통해 도합 16500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권 수석은 “전 세계 오스람 직원이 35000명 정도고 43개 정도 기지가 있다”며 “이 구조조정에 한국 생산기지가 포함된 것”이라 말했다. 회사는 올해 마지막 희망퇴직을 공고하며 “한국 오스람은 수입 판매기지로만 역할을 할 것”이라 전했다고 한다.

   
▲ 권남규 수석부분회장이 오스람코리아 노사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로부터 투쟁기금을 받는 모습. (사진=오스람코리아분회 제공)
 

권 수석은 “나도 20년 동안 이 회사에 다녔다. (유사한 직종과 직책으로) 회사에 다시 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이고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거나 생활여건이 굉장히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1차 희망퇴직자 49명 중 재취업된 사람은 3명으로 알려졌다. 46명은 재취업하지 못하고 희망퇴직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권 수석은 전했다. 재취업한 3명조차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하급직원이 되고 월급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희망퇴직이 절망적인 해고가 되는 이유는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이나 퇴사에 따른 위험부담을 근로자가 일방적으로 떠안는 데 있다. 오스람의 경우 제대로 된 교섭 한 번 못하고 결국 150여 명이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권 수석은 “‘매년 영업이익 200억 원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반문해도 사측은 ‘독일 본사의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노조가 결성되고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할 땐 사측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 그는 10년 동안 노사협의회를 통해 “시대가 바뀌고 조명 트렌드가 바뀌니 영업이익의 10%만 재투자해달라고 얘기해왔지만 회사는 10년 동안 제대로 재투자를 안했다”며 “노동자도 제안한 안을 회사 임원이 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묻느냐”고 반문했다.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 독일 오스람의 경영 방침 전환에 한국 판매기지 노동자들은 퇴사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퇴직자들에겐 퇴사 이후의 삶이 더 큰 문제임에도 퇴직금과 위로금 외의 지원은 없었다. 권 수석은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세상에서 이분들이 다 어디로 가겠나. 다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생각하면 암담하다”면서 “앞으로도 이 회사는 직원을 10년, 20년 함께 일한 동료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접고 빼고 할 수 있는 숫자로 볼 것”이라 비판했다.

업계 곳곳에서 희망퇴직 바람, 사측의 '책임있는 태도' 볼 수 있을까

권 수석은 “자본의 힘을 몰랐다”며 오스람 노조의 순진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조합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갑자기 노조를 만들다 보니 준비된 게 없었다”며 “쟁의권을 받아 합법 파업을 하는 데도 ‘근무시간에 파업해도 되는 거야?’라 서로 물을 정도로 순진하고 권리를 몰랐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사회엔 희망퇴직 칼바람이 들이닥친 사업장이 곳곳에 포진돼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조용히 진행되던 희망퇴직 흐름을 수면 위로 올린 신호탄이었다. 은행·보험·카드사를 포함한 금융업, 조선·건설·기계·항공 등 다방면의 산업계와 서비스업계 곳곳에 희망퇴직자들의 대거 퇴사가 예정돼있다. 오스람코리아 또한 여기에 속했던 한 공장이었다.

“나비효과처럼 작은 일들이 모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텐데, 오스람의 일이 노동자들 권리를 또 한 번 뒤로 후퇴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을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며 말을 삼켰다. 권 수석은 반월·시화공단에서 앞으로 노조를 만들어서 싸우면 ‘오스람처럼’ 전원 퇴사하고 공장을 닫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아닐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우려했다.

정명규 오스람코리아 상무이사는 “(노사교섭이나 희망퇴직과 관련해선) 회사입장은 따로 없고 말할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자 질의에도 답신을 하지 않았다. 오스람코리아 본사 인사팀을 통해서도 사측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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