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후 노조 지도부에 대한 징계 및 해고, 업무방해 형사기소, 손해배상·가압류,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무력화 시도. 이런 전철은 노사갈등이 첨예하고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횡행하는 곳에서 자주 목격되는 광경이다. 

그런데 어디서 봄 직한 익숙한 데자뷔가 언론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공영방송 MBC에서 벌어졌던, 지금도 벌어지고 앞으로도 벌어질 모습들이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악덕기업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지난 14일 MBC 사측은 임금협상 진행 중에 노동조합 상근 집행부 5명 전원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교섭대표 노조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에 공문을 보내 일주일 후인 21일자로 조능희 노조 위원장과 송희원 사무처장, 김혜성 홍보국장, 배성민 정책교섭국장, 이호찬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모두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기간이 종료됐으니 기존 회사 업무에 복귀할 것을 통보한 것이다. 

이에 노조는 “MBC에 노조가 생긴 이래 사측이 조합 상근 집행부 전원에 대해 임기 중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린 것은 초유의 일”이라며 “이는 MBC 내부에서 유일하게 회사의 잘못을 비판하는 조직인 노조를 아예 근본부터 흔들어 기어코 손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22일 해직자를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사측이 노사협상 진행 중에 교섭대표 노조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들의 타임오프 종료를 통보한 것은 지난 2013년 김종국 전 사장 당시 사측과 합의한 2년(연간 1만 시간)의 타임오프 기간 종료를 앞두고 MBC 내 나머지 2개의 복수노조의 개별교섭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MBC본부 노조의 교섭대표권이 상실되면서 타임오프 역시 재배정이 필요하게 됐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22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탄압 중단과 임단협 쟁취를 위한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조법 허점 노린 노조탄압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MBC 내에는 현재 언론노조 MBC본부(조합원 1700여 명)와 함께 부장급 이상 선임자 20여 명으로 구성된 ‘MBC 공정방송노동조합’과 지난 2012년 MBC 파업 기간 이후 채용된 시용·경력기자 등 120여 명이 가입된 ‘MBC 노동조합’이 있다.

사측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표교섭권을 지녔던 MBC본부 노조의 대표교섭 지위가 상실됨으로써 언론노조 MBC본부, MBC 공정방송노동조합, MBC 노동조합 등 세 개 노조와 개별적으로 교섭을 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그동안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호혜적으로 인정해 주던 근로시간 면제를 종료하고 면제자들을 원부서로 복귀시키는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MBC본부 노조 관계자와 노무사 등에 따르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복수노조를 가진 사업장일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하지만, 교섭대표노조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기간 내에 사측이 복수노조의 개별교섭 신청을 받아들이면 기존의 교섭대표 노조는 지위를 잃게 된다.

사실 지난 2010년 1월1일 노조법 개정안이 노동계를 비롯한 각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에서 통과될 때도 교섭창구 단일화와 타임오프 제도가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실제 법 개정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 해지와 함께 복수 어용노조를 통한 민주노조 무력화 시도들이 잇따랐다.

이번에 MBC 사측이 교섭대표 노조에 타임오프 종료를 통보한 것도 현재 노조법이 가진 이 같은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법 제24조에는 노조전임자와 관련해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지 않고 노조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받고 근로시간을 면제받는 타임오프에 대해서도 단협으로 정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사업장별로 조합원 수를 고려해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근로시간면제 한도 이내에서 배정토록 제한하고 있다. MBC는 조합원 규모가 1000명 이상이므로 노조 상근자는 연간 1만 시간의 근로면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MBC는 현재 3년째 단협이 해지된 무단협 상태이기 때문에 단협으로는 노조전임자나 타임오프 시간을 정할 수 없고 사측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노조전임제가 단협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측이 노조와 전임자를 두는 협약을 맺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타임오프 역시 사측이 복수노조 간 차별적으로 시간을 배정하지 않는 한 모든 노조에 타임오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현행 노조법이 노조전임자와 타임오프 협상에서 칼자루를 사용자 측에 줬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어용노조 설립→단협 후퇴·유예로 민주노조 압박 

MBC는 이런 법의 허점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사측에게 있기 때문에 사측에 가까운 노조가 다수노조라면 교섭대표 노조와만 교섭하고, 소수노조일 경우 개별교섭을 통해 다수노조의 대표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다. 

또한 노동부의 타임오프 매뉴얼에 따르면 노조전임자가 전임 기간의 종료 또는 전임자로 선정된 사유가 없어질 때에는 회사의 규정에 따라 원직 등 회사 업무에 복귀해야 하고 이에 불응하면 징계할 수 있다. 노조가 전임자의 급여 지급을 요구하며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 앞 광장에 있는 조형물 ‘스퀘어 M-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가 휴머니즘에 기반해 제도적 틀을 벗어나 막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MBC의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사측과 계약을 맺고 지금껏 여러 기업의 노조 무력화에 앞장서 온 것으로 알려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복수노조를 통한 노조 파괴의 주범으로 꼽힌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발레오만도)는 지난 2010년 직장폐쇄 후 금속노조 지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이후 기업노조는 단협에서 노조전임자 수 감축에 합의하고 징계 사유 확대 등 노동조건 후퇴를 불러왔다.

복수노조의 개별교섭 상황에서 사용자가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 노조에만 격려금을 지급하는 차별도 발생했다. 자동차 부품 생산 기업인 콘티넨탈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는 제1노조인 금속노조와는 단협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반면, 제2노조와는 무분규 임·단협 타결에 따른 격려금 명목으로 5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복수노조 간 차별적인 교섭으로 사용자가 중립유지 의무를 위반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지난 9월 대전지방법원은 “복수노조 상황에서 한 노조에만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사용자가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 노조에만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상대 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쳐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MBC본부 노조는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타임오프 제도가 마련된 취지가 사측이 이를 무기로 삼아 휘둘러대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노조에는 근로시간면제를 주고, 마음에 안 드는 노조에는 뺏으며 조합을 길들이라는 것이 아닐 것”이라며 “이런 제도의 근간부터 흔드는 행위를 언론사이자 공영방송인 MBC에서 앞장서서 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엄중하다”고 규탄했다. 

언론계 관계자들은 노조법의 허점을 파고든 MBC 사례는 언론계의 타 사업장에서도 사측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장영석 언론노조 법규국장(노무사)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MBC를 비롯해 다른 사업장에서도 단협을 해지하거나 무협약 상태를 만든 다음에 노조전임자 관련 사항을 우선 합의하지 않으면, 전임자 없이 조합 활동이 어려운 노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사측이 정말 노조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노조를 인정 안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단협 유예라는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노조를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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