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 정윤회씨와 같이 있었다는 소문과 의심을 게재한 것에 대해 법원은 공적 관심의 영역이며, 허위라 해도 사인 여성 박근혜를 비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재판부는 산케이신문 기자가 그 만남에 대한 소문을 허위라고 인지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문제의 7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정씨의 만남을 거론한 누리꾼 등이 박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는 17일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에서 박 대통령의 행적을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국가기관으로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의 구조 활동에 관해서 필요한 모든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따라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통령이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였는가는 당연히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아가 대한민국헌법과 정부조직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지위·의무·권한 등을 고려하면, 대통령은 그 지위 자체가 공적 존재이므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한 직접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된 행위 역시 원칙적으로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의 행적은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이 정씨와 만나느라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산케이신문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소문에 관한 표현 방법과 내용은 부적절하나, 위 소문 내용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대통령의 업무수행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소문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도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17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대통령이 정씨와 만났다는 소문을 두고 재판부는 “허위이므로, 이를 근거로 한 대통령의 업무수행 비판 역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이 곧바로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썼다. 

재판부는 다만 “‘사인(私人)’인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서 △단순히 소문을 적시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씨의 과거 경력이나 이혼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재할 뿐 아니라 정부가 소문의 확산을 막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썼으며 △소문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이라 해도 모두 허위이고 △소문의  사실관계에 대해 별다른 확인도 하지 않고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성에 대한 인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그런 추정과 근거를 설명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산케이신문이) 전달하고자 했던 대상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어떤 남성과 남녀관계라는 소문이 있는 대한민국의 일반적 여성 ‘개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공적 관심 사안을 빙자하여 ‘사인(私人)’ 박○○를 해하려는 의사로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 기사의 핵심인 박근혜-정윤회 만남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허위일 뿐 아니라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로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씨를 만났음을 암시하고 있다”면서 “당일 박 대통령이 정씨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과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것이 모두 객관적 사실과 합치하지 않아 허위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더구나 기사 작성에 있어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인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가토 전 지국장의 기자 경력 등으로 볼 때 한 나라의 국가원수 관련 소문을 기재하면 파급력 어떨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는 소문 내용이 허위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기자가 허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소문을 전달한 것인데도 공적 관심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박근혜 7시간 의혹제기가 무죄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 기자가 아닌 다른 일반인 신분 또는 누리꾼이 온라인에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 만남을 다소 거칠게 묘사하고 과장된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전기철 판사는 지난 16일 해경 123정의 밧줄 전복 의혹과 잠수함 충돌 가능성, 7시간 동안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만남 등을 거론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IT보안전문가 김현승씨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11월 “그시간 박근혜는 정윤회와 진도에서 해경123정 김경일 경정에게 전화해 세월호 뒤집으라 명령”, “박근혜와 정윤회 7시간이 사적으로 무슨 큰 문제인가, 연인 최태민 사위와의 대를 이은 패륜이란 문제 외에는” “××× 박근혜가 모독을 입에 올려?” 등의 표현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

전기철 판사는 이를 두고 “대통령 관련 피고인이 게시한 글도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로서, 피고인은 이에 대하여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게시된 글의 내용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원색적 허위의 적시이고,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아픈 마음에서 비롯된 정당한 의혹제기라는 주장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전 판사는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허위사실의 내용, 표현의 방법,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난해 4월 16일 7시간 만에 중앙재난안전본부를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김씨의 변호인 김용민 변호사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만남을 거론한 것이라면, 김씨는 박 대통령이 현장에서 세월호 전복에 관여했다고 주장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맥락과 취지는 다를 게 없다. 김씨의 역시 공적 관심사인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합리적 추론이나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얘기한 것인 만큼 적어도 정윤회와 관계를 문제삼은 부분은 무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대통령 관련 언급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며 “대통령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을 진행할 때도 산케이 전 지국장 판결을 인용해 항변하게 될 것이라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가토 전 지국장이 거론한 박 대통령-정윤회 만남설 자체를 허위로 판단한 것을 두고 김 변호사는 “그 재판부(가토 지국장 판결)는 사실관계를 섣불리 단정한 면이 있는 반면, 우리 판사는 김씨가 제기한 수많은 의혹을 하나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그런 면에서 가토 판결의 경우 후속사건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월호 특조위에서도 7시간을 조사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법원의 가이드라인의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누리꾼인 김씨에 대해 의혹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죄를 물은 것도 가토 판결구조와 다르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가토 판결은 사실관계를 판단한 뒤 판결을 한 반면, 김현승씨 판결의 경우 판사가 사실관계를 확정짓지 못하고 유죄로 결론 내린 판결”이라며 “김씨가 박  대통령 문제 뿐 아니라 세월호 침몰원인의 의혹을 제기한 것이 거짓이려면, 진실한 침몰원인이 따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상은 조사중이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판단의 여지를 남겨놓았어야지 섣불리 유죄로 결론을 내서는 안됐다”고 밝혔다.

다만 거친 표현이나 욕설이 포함된 글에 대해 변호인과 김씨는 모두 모욕죄를 적용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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