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 같아요.  학교나 사회가 원하는 것이 ‘삼각형’의 모습이라면, 스스로가 삼각형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삼각형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능숙한 사람들일수록 인정받는 거죠.” (장후영 EBS PD) 

많은 이들은 시험 성적이 곧 실력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시험을 잘 보는 사람도, 못 보는 사람도 존재한다. 미국 입시계의 스타라 불리는 로버트 스턴버그는 시험점수가 x값이라면, x=T+E, 즉 T(True Score)값에 더해 E(Error Score)값인 크고 작은 기술들이 더해져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과연 시험에 진짜 실력은 얼마나 관여하는지, 나아가 시험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EBS 다큐프라임의 교육대기획 4번째 이야기 주제는 ‘시험’이다. EBS 교육대기획 ‘시험’(이하 ‘시험’)을 연출한 이미솔‧장후영PD는 이미 교육대기획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26편이 나간 이후, 동어반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교육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교육문제의 근본이 시험이라고 생각한 연출팀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험에 대해 물었다. ‘시험’의 이미솔 PD와 장후영 PD를 10일 서울 도곡동 본사에서 만나 그 생각을 들었다. 

   
▲ EBS 다큐프라임 ‘시험’을 연출한 장후영 PD와 이미솔 PD. ⓒEBS
 

“시험을 보여주는 것이 곧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험’의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는 인도, 중국, 프랑스, 독일의 시험 실제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의 수능 격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방송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여러 형태의 시험을 보다보면 시험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역할이나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닌, 각 사회 형태에 따라 바뀌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인도의 경우, 고교졸업시험은 3000년 간 지속된 카스트제도가 만든 계급을 뛰어넘게 하는 ‘권력’의 역할을 한다. 다큐에 등장하는 나렌드라 자다브 전 푸네 대학교 총장도 시험을 통해 불가촉천민에서 대학 총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카스트제도의 가장 낮은 계급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고교졸업시험 현장에서 커닝도 불사한다. 인도의 학교 창 밖에서는 커닝 페이퍼를 전달해주려는 부모로 가득하다. 

   
▲ 인도의 한 시험장에 수험생의 부모들이 커닝페이퍼를 전달하려고 벽에 오르는 모습. 사진= EBS '교육대기획- 시험' 화면 갈무리
 

중국의 ‘가오카오’는 한국의 수능 시험과 비슷하다. 1000만여 명이 응시하는 가오카오는 이틀 동안 10여년의 교육성과를 평가한다. 중국의 수험생 부모들은 수험을 돕기 위해 학교 주변으로 이사와 자식을 돌보기도 한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가면 또 다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새로이 권력을 주거나 무언갈 결정짓지 않는다. 학생들 역시 시험이라고 해서 특별히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시험을 이를 통해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는 정도로 여긴다. 

이미솔 PD는 중국과 유럽의 시험을 촬영하며 “처음에는 시험이 단순한 인재를 뽑아내는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시험은 사회제도, 사회 분위기와 완전히 맞물려있는 하나의 문화였다”며 “어떤 사회를 대표하는 시험이, 곧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 나라의 시험을 보여주는 것이, 곧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PD들은 6부작의 다큐멘터리 중 가장 공을 들인 것이 1부라고 전했다. 장후영PD는 “제작진의 주장을 강조하기보다 각 나라의 시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1부에 여러 나라의 사례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이라는 것이 각 나라마다 가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제작진이 말하지 않고도 네 나라를 보여주면서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며 “내레이션 형식으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지 않게 느껴질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시험'에서 공개한 프랑스 '바칼로레아' 2015년 철학 시험 문제.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가?", "나는 내 과거로부터 만들어지는가?"라는 문제가 나왔다. 사진=EBS '시험' 화면 갈무리
 

“시험은 기술에 불과하다”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험에 대해 고민하던 두PD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시험에 대한 가치를 과대평가해온 것은 아니었냐는 생각에 미쳤다. 2부의 제목이 ‘시험은 기술이다’인 이유다. 이 PD는 “시험은 기술이라는 말 자체가 시험은 불완전하다는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험의 본질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좋은 문구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 PD는 “시험은 기술이다’라고 썼지만, 정확히 말하면 ‘시험은 기술에 불과하다’가 우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맞는 것 같다”고 까지 말했다.

미국의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인 ‘Test Wiseness’라는 과목이 엄연히 존재한다며 시험에는 이 기술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미국으로 가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를 만난 이 PD는 다큐 제작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스턴버그 교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적 석학이어도 시험이라는 것에 개인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던 스턴버그 교수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저도 어렸을 적 시험 때문에 악몽을 꾼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 점이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이미솔 PD)

   
▲ 미국의 석학 로버트 스탠버그 교수는 시험에 관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백했다. 사진=EBS '시험'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에는 미국의 석학뿐 아니라 한국에서 시험을 봐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 본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수연 토익 스타강사, 일명 ‘삽자루’ 우형철 수학강사, 수능 만점자 박준성씨 등 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이 있다며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들의 입을 빌린 이유는, 결국 시험은 실력을 100% 반영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장후영PD는 시험에 목을 맬 만큼 가치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란다. 장 PD는 “시험에 그만큼의 가치가 없으니 시험을 보지말자고 하기보다, 평가의 기준을 다양하게 고려하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자는 거다”며 “누군가를 낙오시키려고 보는 시험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수험생들이 무언가를 얻어가는 형태의 시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시험’은 교육문제의 근본인 시험에 대해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시험을 보여주고, 많은 수험생들의 일상을 비추긴 하지만 강한 주장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시험에는 실력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수많은 연구를 보여줄 뿐이다. 장후영 PD는 이에 “교육문제를 오래 고민했지만 해법을 제시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나라의 시험을 들여다보니, 시험이 우리가 가치를 부여한 것처럼 권위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여러 사례를 만나게 됐어요. 사실 시험이라는 것에 과도하게 목숨을 걸지 않았나, 이게 뭐라고 이 정도까지 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도 ‘힐링’이 되기도 했고요. 이걸 보시는 분들도 이러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미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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