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테러조직 ‘알누스라 전선’ 추종자로 보도된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32)가 테러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테러 추종 혐의가 수사단계에서 입증되지 않았을뿐더러 A씨에 대한 구속 기소도 정당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A씨는 지난달 18일 충남 아산의 거주지에서 출입국관리법 및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사문서위조, 테러조직 추종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A씨는 2007년 위조된 여권으로 입국해 제조공장 등에서 일하며 타인 명의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체포 당시 “국제테러단체 ‘알 누스라’를 추종한 혐의로, 국내 불법체류 중인 인도네시아인(32)을 검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A씨가 ‘알 누스라’ 깃발을 들고 찍은 영상과 알 누스라 상징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을 게재하는 등 테러단체를 지지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 집에서 발견된 ‘보위 나이프’라 불리는 도검과 M16 모형 소총, 이슬람주의 서적 다수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 2015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 관련기사. 당시 대다수 언론은 경찰의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A씨를 'IS 추종자'로 보도했다.
 

그러나 테러단체 추종 행위는 구체적인 혐의로 입증되지 않았다. A씨는 지난 14일 구속기소 됐으나 기소 혐의는 불법체류와 여권 위조에 따른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문서위조 및 행사, 전자금융법 위반 등과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이다.

실제로 체포 당시 경찰의 테러 혐의 주장에 대해 “뚜렷한 혐의도 없이 테러단체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수사 내용을 공개하고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경찰은 A씨가 알 누스라 지지 사진을 올린 이유나 테러를 모의한 정황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테러 혐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단순 테러단체 추종만으로는 테러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검찰의 구속 기소가 비상식적이라는 비판도 팽배하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활동가는 “위조 여권이나 불법체류, 타인 명의 통장 사용 등의 이유로 이주민이 구속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면서 “보통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불법체류자’는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후 본국으로 강제추방된다. 행정절차로 처리하면 될 문제에 형법을 적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구속이든 기소든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오랫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에 힘써온 황필규 변호사는 “타인 명의의 통장을 쓰거나 위조여권을 쓴 경우는 출입국관리소에서조차도 불법체류나 강제퇴거 사유로 판단하지, 형사절차로 가져가거나 사문서위조 혐의로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테러추종 행위는 있으니 조사를 더 해서 부각시키려 했으나 나오는 건 없고, 조금이라도 문제 될 혐의를 묶은 것(기소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 2015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귀빈식당에서 열린 '테러방지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등 원내지도부가 참석하고 있다. 이날은 A씨가 체포된 날이다. ⓒ민중의소리
 

이같은 상황이 테러방지법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삼열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소장은 “‘과일깎는 칼 발견됐다고 테러를 모의했다’고 하는 수준이다.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속임수 수준의 보도자료를 낸 것”이라며 “프랑스 테러 사태 직후고 (체포 후) 김무성 의원(새누리당 대표)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테러방지법을 굉장히 많이 말했던 것을 볼 때 테러방지법을 위해서 언론플레이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 소장은 “입이 있어도 말 잘 못 하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한 것이라면 사회의 취약한 약자를 악용하는 대단히 개탄스러운 사건”이라며 “언론들도 너무나 성의 없이 국정원의 생각을 받아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자국민의 인권이 달린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인권변호사가 A씨를 접견하기 위해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사관 관계자는 “내 소관이 아닌 일을 묻지 말아 달라”고 답하며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인권변호사도 12월 초 접견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 2015년 11월 18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경찰이 프랑스 파리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것으로 파악한 인도네시아 국적의 불법체류자로부터 압수했다는 관련 증거품이라며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A씨는 서대문경찰서에 구금돼있다 지난달 27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됐다. 경찰청은 경찰 수사 당시엔 A씨의 의사에 따라 변호인이 선임되지 않았으나 영장실질심사에는 국선변호인이 변론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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