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위 공무원에게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새누리당 의원)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그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이주영 장관에 대한 호평이 압도적인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현장에서 어떤 실무자보다 열심이었고 가장 정확한 데이터를 알고 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다시 물어봤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꽉 막힌 데 대해 이 전 장관의 책임은 없냐고. 그러자 그는 “그게 온전히 장관 책임이겠느냐”며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갔다. “장관은 아무 힘도 없다. 그냥 ‘쇼맨’이다.” 

세월호 현장에서 이주영 전 장관은 자세를 낮췄다.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는 애달픈 울부짖음에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고 136일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진도군청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잤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검은색 점퍼와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텁수룩한 수염은 그의 상징이었다. 

이는 경제위기를 자초했음에도 정규직과 노조, 국회 무능으로 화살을 돌리는 경제수장이나 대통령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보신주의에 빠져 책임을 외면하는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 전 장관의 행보는 특기할 만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19일째인 지난해 5월4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종자 가족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쇼’라는 비판이 나왔다. 장관이 동네북을 자처했기에, 대통령은 팽목항 현장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쇼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에서도 그를 높이 평가하곤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자신의 SNS를 통해 “그의 낮은 자세와 묵묵한 모습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이라면 유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이 지난 16일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날도 “구조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전적으로 해수부장관 책임”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는 사고 직후 해경청장이 잠수사 500명 이상이 투입됐다는 ‘허위’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린 것에 대해서도 “실제 구조에 투입된 인원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 전체를 합산해 발표하면서 과장된 것 같다.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 불찰”이라고 했다. 세월호 현장에서처럼 적어도 자기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그뿐이었다. “기억이 안 난다”는 해경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답변은 청문회를 참관하던 유가족을 절규케 했다.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선미에 있던 학생들에게 밑으로(배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는 박상욱 경장(당시 123정 승조원)의 발언은 도마 위에 올랐다.

전직 장관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부하 직원들은 청문회에서조차 ‘책임 없음’을 강변하며 참상의 기억을 부단히 잊고자 했다. 

앞서 여당 추천 특조위원은 모두 불참했고, 요원한 진상규명을 빌미로 보수언론은 ‘청문회 무용론’을 들고 나섰다. 유가족을 떼쓰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정부‧여당‧보수언론의 짬짜미는 앞으로 더 공고해질 것이다. 이 전 장관에 더 이상 감동과 감흥 따위를 느낄 수 없는 이유다.  

그가 현장에서 유가족과 부대끼며 ‘팽목항 지킴이’로 평가받을 순 있다. 하지만 그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이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만약 내가 당에 몸을 담고 있다면 직접 중재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현재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맡은 상황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 중재에 나선다는 것은 적절한 처사가 아니”라고 했다. 유가족이 바랐던 수사‧기소권을 포함한 세월호 특별법 관련해서는 두 손을 놓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11일 선체 수색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이 전 장관은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현 수색작업을 종료하게 되어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실종자 9명을 찾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장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기엔 찜찜하다. 이 전 장관은 ‘정치인’이다. 그것도 ‘친박’ 정치인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평가받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현 정부‧여당은 어떠한 책임도 떠안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책임을 짊어졌는지 불분명하다. 

장관직을 그만두고 그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의원으로 복귀하자마자 친박계 대표주자로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었다. ‘팽목항의 영웅’이라며 보수 언론이 추켜세웠지만 지난 2월 ‘비박’ 유승민 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국무총리 등 정부 요직이 공석일 때마다 그는 핵심 ‘친박’ 인사로서 호명돼왔다.   

   
▲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15일 열린 세월호 특조위 2일차 청문회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은 지난 2월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이주영은) 해수부 장관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염을 깎고 서울로 오면서 ‘팽목항 영웅’이 됐다. 장관직을 사퇴하고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다”며 “이주영 전 장관이 진도에서의 ‘수염’을 팔아 정치를 한다고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김 원장은 “(세월호 침몰사고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직접적인 책임을 해수부 장관과 해경청장이 져야 했다”며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그(이주영)는 장관직에서 물러날 뿐만 아니라, 정치 생명도 다했어야 정상”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5선을 노린다. 그의 지역구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지역에서는 “이주영 욕 봤다”는 동정적 정서가 흐르고 있다. 한 지역 유권자는 “정치인들 몸값 올리려고 장관 하는데 최경환 정종섭에 비하면 이주영은 양반”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는 이도 있다. 창원 성산구에 거주하는 김영희(58)씨는 “세월호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진상규명을 밝히는 데도 장관으로서 역할이 있다는 것”이라며 “특조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데 이주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수염 못 깎고 목욕 못하는 건 지엽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부터 20개월이 지났다. ‘기레기’라고 수모를 겪은 언론이 이 전 장관에게 붙여준 별명은 ‘쇼맨’이 아닌 ‘팽목항 지킴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쓰레하다. 세월호가 아직 바다 속에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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