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 이틀째 되던 날, 점심을 먹고 복도를 지나는 도중이었다. 두 유가족이 복도 의자에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밥 먹었어?”
“먹었지.”
“거짓말.”
“대충 집어넣었어, 한 끼는 먹어야지. 약 먹어야 하니깐.”
“‘대충’ 먹었다고 말해야 먹은 거더라.”

짧은 대화가 처음엔 이해 가지 않았다. 이내 태연하게 먹은 밥이 죄스러워졌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밥 한 끼 제대로 먹는 것이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쉬는 시간엔 자주, 화장실 칸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국회에서 열리지 못한 청문회였고, 증인들은 대답을 회피하고 잘못을 전가하는 모습만 보였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밥을 먹지 못했고, 울거나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눈물 흘리는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 유가족.
 

증인들의 무성의함과 무책임함에 유가족들의 한마디가 터지면 청문회장은 곧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청문회 이틀째인 15일 오후에도 그랬다. 이호중 특조위원이 김석균 전 해경청장에게 “왜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 인력수를 500여 명이라고 부풀려서 발표했냐”고 지적했다. 김 전 청장은 이 위원의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며 “500명을 투입했다고 했지, 직접 잠수했다고는 안 했다”는 식의 답을 내놓았다. 

바로 “말장난 하냐!”는 고성이 날아왔다. 청문회장은 쉰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다.
“배 안에 있는 애들한테도 550명 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 명씩 데리고 나올 줄 알았다고!”
“얘들이 헬리콥터 왔다고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알아! 잠수사도 왔다고 안심을 했는데!”
“초동대응 10분만 빨리했어도 애들 다 살았어!”
“안심했던 애들이 다…!”

청문회를 하는 3일 내내 증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계속해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는 첫날 이를 지켜보다 못해 자해했고 그와 배우자는 병원에 실려 갔다. 청문회 도중 곳곳에서 “혈압이 오른다”며 눈물범벅의 얼굴로 청문회장을 나가는 이들도 보였다. 뻔뻔한 대답을 넘어 고압적인 태도까지 보인 증인들은 또 한 번 유가족들을 자극했다. 

가해자는 또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년8개월 후인 지금에서야 열린 청문회에서까지 무성의한 답변을 하는 증인들이 첫 번째 가해자라면, 두 번째 가해자들은 건물 밖에 있었다. 청문회가 열리는 명동 YWCA 건물 맞은편에는 ‘어버이’라는 이름을 쓰는 단체의 회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특조위를 향해 “세금 도둑”, “대통령이 참사를 일으켰냐”라며 욕설까지 퍼부었다. 

   
▲ 15일 오후 YWCA 건물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특조위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보수단체 회원들 50여 명은 칼바람에도 1시간 가량을 그렇게 특조위와 유가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한 회원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다고 트집을 잡는데 어떤 대통령이 고등학교 수학 여행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느냐, 그 학교 교장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당시 YWCA 건물 앞에는 4.16연대가 피켓시위를 위해 집회신고를 해둔 상태였다. 보수단체의 신고 없는 집회에 경찰들이 출동했다. YWCA 측에서 소음이 심하니 마이크 소리를 줄여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경찰들이 음향기기에 손을 대려고 하니 보수단체 회원들은 “왜 간첩들을 놔두고 우리에게 불법이라고 하냐”, “대한민국을 뒤흔들려는 특조위를 해체시켜야지 왜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느냐”며 경찰에게 욕설을 계속했다.   

보수단체 회원들 맞은편에 서 있던 한 시민은 “시민으로서 창피하다”며 “어버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너무나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 유가족은 “왜 부모들만 이렇게 아파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를 지켜보는 기자 역시 답을 알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610일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해자를 만났을까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2차 청문회에는 더 이상의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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