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경찰에 자진출두하며 박근혜 정부 이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대상은 언론이다. “국가의 폭력진압은 왜 말하지 않습니까?”, “껍데기였던 민주주의마저 죽어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는 기사를 연일 쏟아 내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한 이래 노동자들이 왜 총궐기를 하는지,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왜 반대하는지 보도해야 할 언론은 한 위원장에 대한 마녀사냥식 보도를 쏟아냈다. 종편은 온갖 추측과 왜곡보도를 연일 내보냈으며 한 위원장과 민주노총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웠다. 지상파는 기계적인 중립보도를 취하는 듯 보이면서도 정부입장에 치우친 보도를 이어갔다.   

1. 내용 따지지도 않고 ‘범법자’낙인
보수언론은 시종일관 한상균 위원장을 ‘극렬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TV조선은 10일 메인뉴스에서 한 위원장의 체포소식을 전하며 “범법자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당당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 ‘뉴스를 쏘다’에 출연한 조순형 전 의원은 “(한 위원장이) SNS를 통해 민노총을 총지휘하고 그러는데 통신수단을 차단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한 위원장을 극렬 범죄자의 리더처럼 묘사했다. 

지상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계적인 중립 보도를 하면서도 영장 집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도를 했다. KBS는 지난 10일 뉴스9에서 “한상균 위원장의 도피 생활로 반 년 동안 집행되지 못했던 체포영장이 마침내 집행된다” “한사코 출두를 거부하던 한상균 위원장이, 스스로 걸어 나와 체포된 데는 여론의 압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체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지상파와 종편은 한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가 있고, 이 중 쟁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불법집회를 조직하고 신고하지 않은 도로행진을 했다는 이유로 수배령을 내렸는데 이를 중대한 범죄로 보기 힘들다. 경찰이 집회 자체에 불법낙인을 남발하고 있으며 한 위원장 수배 배경에는 민주노총이 노동시장구조개편에 대해 격렬히 저항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로 보는 시각도 많다.

   
▲ 동아일보 11일 보도.
 

2. 종편식 생중계 
긴박한 배경음악이 흐른다. 앵커와 기자 역시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가며 현장을 중계한다. 경찰이 조계사 진입을 시도하자 종편과 보도전문채널들은 연일 현장상황을 생중계했다.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은 경찰의 체포작전을 지지하며 범죄자를 빨리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이웅혁 건국대학교 교수는 “요즘의 절은 절 같지 않다”며 “어떻게 보면 민주노총 정책기획본부?”라고 말했으며 장성민 앵커는 “투쟁장으로 변했다”고 맞받아쳤다. 

종편의 이 같은 생중계 방식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과잉진압을 부추긴다며 여러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채널A에 출연한 황태순 평론가가 “경찰의 저지선이 뚫려서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갔다면 대통령이 위수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경찰의 민주노총 진입 때는 패널들이 “아 이게 공권력이죠”,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3. 못 배워서 강경투쟁? 도 넘은 왜곡
한상균 위원장은 언론에 노동시장구조개편의 문제점을 짚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언론은 그 대신 한상균 위원장의 과거를 들췄다. ‘한상균이 누구인지 알아보겠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댔지만 실상은 왜곡이 넘쳐났다.

지난 10일 TV조선 이슈해결 박대장은 민주노총의 세력관계를 설명하겠다며 화면 좌측에 권영길 전 의원, 심상정 의원을 놓고 신중앙파로, 그 대척점인 오른쪽에 단병호 전 위원장과 한상균 위원장을 놓고 현장파로 분류했다. 앵커는 “왼쪽(신중앙파)은 배우신 분들이고 오른쪽(현장파)은 현장 노동자 출신이고. 그런 차이가 노선으로 나타난 거 아닌가”라며 현장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앵커는 현장파가 과격성향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신중앙파를 향해서는 "배운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 위원장을 전문시위꾼으로 몰면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보도도 있었다. 이동영 동아일보 사회부차장은 3일 채널A 뉴스TOP10에서 2009년 쌍용차파업에 관해 “한상균 위원장이 극렬한 파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근로자들이 더 빨리 쌍용차 일터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느냐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으며 “(쌍용차가) 기회가 될때마다 당시 해고된 근로자들 고용하는 모습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가 해고노동자를 적극적으로 고용한다는 식의 표현도 어불성설이지만 그나마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마저 사측의 선의처럼 해석했다.

진행자인 김승련 기자는 노동자들이 경찰을 폭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틀었는데, 쌍용차 파업과는 무관한 화면이었음에도 당시 모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4. 세금도둑 한상균?
한상균 위원장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기승전 한상균’ 보도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한상균 체포작전에 들어간 세금을 부각시키는 보도다. 조계사에 은신한 노동자 1명을 체포하는데 1000명이 넘는 경찰을 동원한 사실에 문제가 있지만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조선일보와 TV조선, 매일경제는 한 위원장 체포에 쓰인 세금만 2억6000만 원에 달한다는 보도는 내보냈다. 한 위원장 체포를 위해 출동한 경찰력의 식비, 대기차량 연료비 등을 계산한 것이다. 11일 한국경제는 한술 더 떴다. 일선 경찰의 초과근무 수당까지 더해 “25일 동안 경찰은 최대 5억7449만원의 비용을 썼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빌려 “수사 활동에 전념해야 할 경찰관들이 업무를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보도하며 치안공백마저 한 위원장의 탓으로 돌렸다.

   
▲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5. 조계사가 버린 민주노총? 만들어 낸 각본
보수언론은 한상균 위원장이 은신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조계종과 민주노총의 갈등을 확대하는 보도를 양산했다. 한 위원장이 SNS에 남긴 글을 토대로 조계종을 비난했다고 해석하는가 하면 동아일보는 사실상 오보를 내기도 했다. 조계사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퇴거’를 요청할 것이라는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가 지난달 18일 있었지만 확인 결과 이 같은 퇴거요청은 없었다.

언론은 조계종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0일 사설에서 “우리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종교시설을 치외법권지역으로 규정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12월8일 조선일보 역시 '종교시설도 언제까지 치외법권 지대일 순 없다'사설을 내고 같은 주장을 했다. KBS 역시 지난 10일 “완전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도 종교시설이 범법 피의자의 도피처가 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노동자가 집회를 이유로 수배를 당해야 하는 현실과 경찰의 강경대응 문제를 짚지 않았다. 

   
▲ 조중동은 조계종과 민주노총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6. 잊을만 하면 나오는 민주노총 때리기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전방위적 민주노총 때리기로 이어졌다. 보수언론은 민주노총을 공격할 때마다 써먹던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비정규직 외면한 귀족노조’, ‘대표성 없는 조직’, ‘폭력적 강경노선’이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11일 민주노총을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칭했으며 동아일보는 “노동개혁 막는 수구”라고 불렀다. 

지상파도 ‘민주노총 때리기’에 가세했다. MBC는 지난 10일 뉴스데스크에서 “20년째 고수해온 강경노선으로 대중으로부터 점차 고립을 자초했다”고 보도했다. KBS 역시 민주노총 조합원이 줄어든 사실을 지적하며 “비정규직이나 중소 하청 근로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조선과 동아는 ‘민주노총 20년’을 점검하는 기획기사를 내보내며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탄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례를 살펴보면 조선과 동아의 기획은 사측과 정부의 책임은 외면한 채 오로지 민주노총의 책임을 묻고 있다. 노동시장구조개편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을 저지하려는 쪽은 민주노총이며 그동안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우려가 있는 법안 통과에 쌍수를 든 건 조중동이다. 이렇게나 비정규직을 걱정하는 언론이 정작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농성은 외면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